
생태수업 시간에 지혜학교 학생이 디자인한 밭.
2025년 9월부터 광주 광산구에 있는 대안학교 지혜학교에서 생태수업을 맡게 되었다. 지혜학교는 지혜와 사랑을 실천하는 지성인을 기르는 학교다.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가르친다. 지혜학교에서는 생태교육과 철학교육이 필수다. 이 무거운 짐을 내가 맡게 됐다.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임을 안다. ‘재밌지 않을까’ 생각하며 왕복 2시간 거리의 수업을 덜컥 받아들였다.
첫 수업은 설레면서도 두려웠다. 수업할 때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지겨워하는 아이들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 걱정이 앞섰다. 학생들은 중학교 1, 2학년생으로 총 6명이다. 광주와 경기도 등 여러 지역에서 모인 친구들이다. 아이들은 굉장히 예의 바르고 총명해 보였다. 독특한 점이 있다면, 학생들이 쉬는 시간만 되면 교무실로 모여든다는 것이었다. 이것저것 간식을 먹거나, 학생과 선생님이 격의 없이 함께 수다를 떠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에서 교무실은 선생님에게 빼앗긴 휴대전화를 찾으러 가던 무서운 공간이었는데 말이다.
아이들에게 농사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봤다. 대부분 농사를 힘들고 괴로운 일로 생각했다. 부모가 수박 농사를 짓는다는 한 학생은 “농사는 지겹다”고까지 했다. 농사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음을 새삼 깨달았다. 이 수업을 통해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농사에 관심을 갖게 된다면 좋겠다는 소망을 품게 됐다.
본격적인 수업은 밭 디자인으로 시작했다. 5평 남짓한 밭을 어떻게 꾸밀지 아이들과 함께 구상했다. 퍼머컬처(지속 가능한 농업)에서 배운 내용을 소개하자, 아이들은 다소 놀란 눈치였다. 그저 줄 맞춰 작물을 심는 밭만 떠올렸던 모양이다. 도화지는 배추, 무, 마리골드, 한련화, 심지어 장미까지 뒤섞인 각양각색의 그림으로 가득 찼다. 예상치 못한 아이들의 아이디어에 나 역시 감탄했다.
실제 밭은 진흙투성이였다. 아마도 비닐 농사를 오래 해온 탓일 것이다. 늦여름 더위 속에서 아이들은 땀을 뻘뻘 흘리며 비닐을 걷고 흙을 다졌다. ‘힘들다’ ‘덥다’는 투덜거림 속에 결국 7m 길이 두둑 두 개가 완성됐다. 투덜대던 아이들도 막상 일을 끝내고 나니 뿌듯한 표정이었다. 쉬는 시간에는 선생님이 사온 아이스크림을 함께 먹으며 잠시 숨을 돌렸다. 땀에 젖은 얼굴 위로 웃음이 번졌다.
이어 비닐을 치고 토종 청방배추 모종을 심고 토종 조선무 씨앗을 뿌렸다. 흙 상태가 좋지 못해 선택한 현실적인 방법이다. 청방배추 모종을 심긴 했으나, 어쩐지 불안하다. 모종 상태가 좋지 않은 채 왔기 때문이다. 자닮에서 만든 친환경 농약을 치기로 했으나 그 전까지 잘 버텨줄지 걱정이다.
흙을 만지고 씨앗을 심는 일은 단순히 작물을 키우는 데 그치지 않는다. 아이들과 함께 땀 흘리며 밭을 일구다보면, 서로의 마음도 조금씩 열리고 자연에 대한 태도도 변한다. 언젠가 아이들이 ‘농사는 힘든 일’이라는 인식을 넘어, 흙 속에서 기쁨과 배움을 발견하길 바란다. 그것이 내가 지혜학교에서 바라는 가장 큰 수확이다.
글·사진 박기완 글짓는 농부
*2022년 12월부터 ‘농사꾼들–전남 곡성 편’을 연재해온 박기완 작가의 연재를 마칩니다. 그간 수고하신 박 작가와 사랑해주신 독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조희대 “그릇된 사법개편은 국민 피해”…여당 사법 개혁안 공개 우려

“차 버리고 걸어왔다” 서울시 제설 늑장 논란…한강버스도 운항 중단

쿠팡 손배소 하루새 14명→3천명…“1인당 30만원” 간다

폭설 내리던 4일 밤, TBS는 왜 교통상황을 전하지 못했나

양주 14병 털어먹고 신나게 뛰놀더니 화장실서 ‘기절’…어느 라쿤의 ‘불금’

조희대 “오늘 법원장 회의서 내란전담재판부·법 왜곡죄 의견 들어볼 것”

김혜경 여사, ‘우리들의 블루스’ 정은혜 작가 전시 관람

김현지 “김남국과 누나·동생 사이 아냐…난 유탄 맞은 것”

박나래, 상해 등 혐의로 입건돼…매니저에 갑질 의혹

불수능 만점 광주 서석고 최장우 학생 “최고 경제학자가 꿈”















![[단독] 세운4구역 고층 빌딩 설계, 희림 등과 520억원 수의계약 [단독] 세운4구역 고층 빌딩 설계, 희림 등과 520억원 수의계약](https://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500/300/imgdb/resize/test/child/2025/1205/53_17648924633017_17648924515568_20251204504031.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