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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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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들의 학교 운동장은 ‘남의 것’

서울 5개 중학교 점심시간 ‘운동장 점유’ 확인해보니…남 60명 질주할 때 여 2명 구석에서 배드민턴
등록 2025-08-22 13:19 수정 2025-08-27 09:12
2025년 7월16일 낮 서울 광진구 광양중학교 운동장에서 여학생들이 점심시간에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진수 선임기자

2025년 7월16일 낮 서울 광진구 광양중학교 운동장에서 여학생들이 점심시간에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진수 선임기자


2025년 7월16일 낮 12시31분.

1분 전, 점심시간 종이 치기 무섭게 서울 광진구 광양중학교 운동장 축구 골대 근처가 아이들로 북적였다. 남학생 8명이 한쪽 골대에서 공을 차고, 또 다른 남학생 16명 무리가 운동장 한가운데서 골대 없이 축구를 했다. 1명이 공을 몰고 나머지는 공을 막으며 놀았다. 점심도 뒷전이었다. 남학생 30여 명이 운동장을 차지하고 공을 쫓는 동안, 운동장을 둘러싼 달리기 트랙에서 고등학교 1학년 여학생 5명과 남학생 1명이 10여 분 피구를 했다. 다른 학생들은 운동장을 지나 식당으로 향했다.

운동장 ‘피크타임’은 점심식사가 대략 끝나가는 오후 1시께부터였다. 남학생 40여 명이 누가 누구인지도 모르게 뒤엉켜 공을 뺏고 다시 빼앗고 패스하고 슈팅하며 운동장을 뛰어다녔다. 축구공이 날아다니고, 아이들은 한여름 뙤약볕 아래 땀을 뻘뻘 흘리며 공과 상대방, 자신의 움직임에만 집중하는 듯 보였다. 운동장 한가운데서 소리치고 웃는 아이들은 모두 남학생이었다.

 

여학생들에겐 정말 운동장이 없었다

소녀에게는 운동장이 없다. 정말일까. 한겨레21은 2025년 7월4~18일 광양중을 비롯해 서울 시내 중학교 다섯 곳의 운동장을 점심시간에 누가 점유하는지 살폈다. 초등학교는 점심시간에 운동장에서 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담임교사의 방침에 따라 다르고, 운동장에서 놀 수 있는 시간은 2교시와 3교시 사이 긴 쉬는 시간 20분 정도다. ‘오늘은 나가서 놀아’라고 담임교사가 허락할 때 아이들이 다 같이 나가서 논다. 따라서 자발적인 운동장 사용량을 살펴보기에 적절하지 않았다. 고등학교의 경우 각종 수행평가 제출 및 중간고사, 기말고사 일정 등 각자의 학업 일정에 따라 점심시간을 사용하는 패턴이 달라서 장기간 관찰해야 경향성을 파악할 수 있다고 교사들이 전했다. 중학교는 다르다. 운동장을 가장 자유롭게, 또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시기다. 그래서 중학교 운동장을 살폈다.

결과는 소녀에게는 정말 운동장이 없었다. 있지만, 남의 것이었다. 7월4일 서울 강서구 ㄱ중학교의 점심시간 한가운데인 낮 12시40분부터 20분 동안 살펴보니, 운동장에서 뛰는 학생 60여 명은 모두 남학생이었다. 운동장 한편에서 배드민턴을 치는 2명만 여학생이었다. 스코어는 60 대 2.

7월18일 서울 은평구 구산중학교. 낮 12시40분 남학생 19명이 축구 골대 앞을 점유했고, 10분 뒤인 12시50분 축구 골대 앞에서 뛰는 남학생은 28명으로 늘었다. 이때까지 여학생은 운동장에 없었다. 20분 뒤인 오후 1시10분, 종목과 구성이 조금 다양해졌다. 남학생 11명이 두 그룹으로 나눠 배구를, 남학생 31명이 두 그룹으로 나눠 축구를, 남학생 2명이 캐치볼을 했다. 이때 여학생이 보이긴 했다. 운동장을 바라보는 스탠드석에서 여학생 4명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남학생이 가장 많은 오후 1시10분을 기준으로 스코어를 매겨보면 44 대 0.

낮 최고기온 36도로 이른 폭염이 찾아온 7월10일 서울 중랑구 용마중학교 점심시간에는 학생들이 운동장으로 많이 나오지는 않았다. 그래도 점심시간 시작 15분 뒤인 낮 12시35분 남학생 14명이 운동장에서 움직임이 많은 축구보다는 배구를 했다. 2분 뒤 여학생 1명이 나와서 배구를 하던 남학생 무리와 함께 공을 주고받았다. 스코어는 14 대 1.

2025년 7월10일 서울 중랑구 용마중학교에서 학생들이 운동장으로 뛰어오고 있다. 김진수 선임기자

2025년 7월10일 서울 중랑구 용마중학교에서 학생들이 운동장으로 뛰어오고 있다. 김진수 선임기자


“끝에서 끝 달리는 게 너무 재밌다”면서 끼지 못하고

점심시간에 비가 내린 7월15일 찾아간 서울 성북구 ㄹ중학교는 비가 올 때는 운동장 사용이 제지돼서 체육관 사용 현황을 살펴봤다. 체육관은 그래도 여학생이 제법 있었다. 전교 학생 수가 911명인 ㄹ중은 1학년과 2~3학년이 점심시간을 나눠 운영한다. 2~3학년 점심시간 시작 종이 울린 지 15분이 지나자 체육관이 북적북적해졌다. 낮 12시25분, 남학생 13명과 여학생 1명이 농구 골대에서 함께 농구를 하고 있었다. 체육관 나머지 절반에서는 남학생 8명과 여학생 3명이 배구를 했다. 낮 12시40분. 남학생 9명이 농구를 하고 12명이 배구를, 여학생 4명이 배구를 했다. 21 대 4. 가장 나은 점수지만 패턴은 비슷하다.

왜 여학생들은 운동장으로 뛰어들지 않을까. 이유를 물었다. 은평구 구산중학교에서 점심시간에 스탠드에 앉아서 이야기하던 4명의 여학생은 “굳이 점심시간까지 뛰고 싶지는 않아요” “저는 원래 땀 나는 걸 별로 안 좋아해요” “얘네가 안 하니까 저도 안 해요” “가끔 배구를 하고 싶을 때는 운동장 가장자리나 체육관에 가서 해요”라고 말했다.

땀 내며 뛰는 것에 즐거움을 느끼는 아이들은 어떨까. 구산중 방과후클럽 여자축구팀에서 축구를 하는 최보미(14)양은 “점심시간에 운동장에서 친구들 4명 정도랑 배구를 하는데 가운데서 축구를 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이미 남자애들이 다 쓰고 있어요. 그리고 제가 지금 축구를 하지만 남자애들이 더 잘하긴 하니까, 같이 하기는 좀 쉽지 않아요.” 같이 운동하다가 금방 관두기도 한다. 성북구 ㄹ중학교 체육관에서 10분 정도 남학생들과 농구를 하다가 뒤로 빠진 이아무개(15)양은 “남자애들이 너무 잘해서요. 저는 보통 10분만 같이 해요”라고 말했다.

광양중 방과후 스포츠클럽 축구부에서 뛰고 있는 최보윤(15)양은 “다른 학교랑 경기해서 이길 때 쾌감도 너무 좋고, 축구를 하면서 운동장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달리는 게 너무 재밌다”고 말했다. 그런 보윤양이지만 점심시간에는 “여기 스탠드나 벤치에 앉아서 구경한다”고 말했다. 염서진(15)양도 “남자애들끼리 재미로 하는 거라서 딱히 끼지 않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아이들은 ‘눈치’라는 말을 많이 했다. 서울 용마중 거점학교 축구교실 ‘킥키타카’에서 축구를 하는 김민서(14)양은 “사실 운동장에 축구 하러 가면 이미 하고 있는 남자애들 눈치가 보인다”고 말했다. 민서양의 말에 같이 축구를 하는 김태연(14)양도 “아 그거 진짜 공감. 진짜 남자애들 눈치 보여”라고 말했다. 그래서 민서는 축구가 하고 싶을 때 학교가 아니라 학교에서 집에 가는 길에 있는 용마산 초입 공터에서 공을 찬다. “학교에서는 1학년이라서 2~3학년 눈치가 보이는 것도 있어요.” 아이들이 덧붙였다.

 

여학생들이 많이 쓰는 단어 ‘눈치’

강다연 용마중 ‘킥키타카’ 담당 교사는 “학교마다 조금씩 다를 수 있는데 남학생들은 (운동장을 쓰려는 여학생들을 보고) ‘우리가 공 차고 있는데 왜 여기로 들어오지’ 이러면서 여자애들을 낯설게 쳐다보고, 다른 여학생들은 ‘(쟤네) 남자애들이랑 이야기하려고 축구 한다’고 수군대는 분위기도 있다”며 “‘남자애들이 운동하는 것은 이상하지 않고 여자애들이 운동하는 건 운동 말고 다른 이유가 있을 거야’라는 편견이나 시선이 모두가 운동장을 함께,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걸 막는 것 같다”고 말했다.

2025년 7월 관찰한 서울 시내 다섯 개 중학교 운동장의 성별 점유 상황은 ‘2023 국민생활체육조사’에서 나타난 여자 청소년의 신체 및 체육 활동 경향과 매우 유사하다. 이원미 한국체육대 교수가 2023년 만 10살 이상 국민 9천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23년 국민생활체육조사’에서 청소년 617명의 응답자료만 추출해 분석한 바에 따르면, 성별에 따라 체육시설 이용 빈도에 차이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여자 청소년은 ‘공공체육시설’과 ‘자가 및 기타체육시설’을 남자 청소년보다 많이 이용하고, 남자 청소년은 ‘학교체육시설’을 여자 청소년에 견줘 많이 이용하고 있었다. 남자 청소년의 학교체육시설 이용률은 62.6%로 여자 청소년의 45.8%보다 16.8%포인트 높았다. 여자 청소년의 자가 및 기타체육시설 이용률은 16.3%로 남자 청소년(4.1%)에 견줘 12.2%포인트 높았다. 남학생은 ‘학교 운동장만으로도 충분할 만큼’ 다른 체육시설이 크게 필요하지 않다는 뜻도 된다. 이원미 교수는 이 결과를 두고 “여자 청소년이 공공체육시설, 학교체육시설을 이용해야 가능한 종목인 축구, 농구 같은 단체 종목보다는 개인이 참여할 수 있는 종목에 치우치고 있다는 점과 연결된다”며 “여학생이 체육시설 이용에서 공공 및 학교체육시설에서 주변화되는 현상으로 나타날 수 있어 균형 있는 배치가 필요하다”고 자신의 논문에서 분석했다.

 

‘남녀 반반 운동장’ 하는 곳 있는데 왜 못해?

여학생이 운동장에서 소외되는 현상은 어떻게 바뀔 수 있을까. 답은 광양중학교 아침 운동장에 있었다. 광양중 아침 운동장은 점심 운동장과는 풍경이 달랐다. 7월16일 아침 8시 광양중 운동장은 여학생과 남학생이 반반씩 운동장을 나눠 쓰고 있었다. 교육감배 스포츠클럽 축구 예선전이 한창이어서 남자축구팀, 여자축구팀 모두 경기 대비 훈련이 한창이었다. 점심시간에는 스탠드나 벤치에 앉아서 ‘누가 잘하는지’ 구경하던 여학생들이 아침 시간에는 대회를 준비해야 하니 워밍업부터 패스·드리블 등 각종 훈련을 하며 대회를 준비했다. 누구의 시선도 신경 쓰지 않았다.

광양중에는 2024년 방과후 학교스포츠클럽 여자축구부가 처음 생겼다. 축구선수 출신인 홍성현 체육교사가 “여학생, 남학생 할 것 없이 공 차는 즐거움을 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여자축구부를) 꾸렸는데 아이들이 많이 참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학교 1학년 때는 여자축구부가 없어서 축구를 못했던 최보윤양은 “지난해부터 훨씬 행복해진 것 같다”고 말했다. “원래 축구 보는 걸 좋아해서 보러만 다녔거든요. 근데 제가 좋아하는 걸 직접 하고, 경기해서 이기기도 하고, 친구들이랑 약속해서 연습하고 이런 게 너무 좋아요.”

 

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류석우 기자 raint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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