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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혹 지난 여성기자, 나는 왜 뒤늦게 풋살팀에 뛰어들었나

‘체육 문외한’으로 살다 ‘팀스포츠’ 처음 겪은 40대 여성 기자의 좌충우돌 체험기
등록 2025-08-28 15:32 수정 2025-09-01 08:36
2023년 5월6일 한겨레신문사 여성 기자로 구성된 풋살팀 ‘공좀하니’가 실내 풋살장에서 다른 팀과 연습경기를 펼치고 있다. 독자 제공.

2023년 5월6일 한겨레신문사 여성 기자로 구성된 풋살팀 ‘공좀하니’가 실내 풋살장에서 다른 팀과 연습경기를 펼치고 있다. 독자 제공.


“이해가 안 간다, 이해가 안 가….” 서울 강북의 한 대학교 오르막길을 오르며 생각했다. 지치고 힘든 퇴근길, 집과 반대 방향으로 한 시간 달려와 언덕 위 풋살장을 향해 꾸역꾸역 올라가고 있는 나란 사람은 대체 뭘 하자는 것인가? 저녁 8시가 다 됐는데 밥도 못 먹고, 노트북 가방은 풋살화와 운동복으로 불룩하다. 그런데 풋살화 끈을 질끈 묶을 때쯤엔 웃음이 난다. 가슴이 뛴다.

 

“엄마 집에 언제 오냐”는데 해도 되나?

“풋살 같이 할 동료를 찾습니다.” 2023년이었다. 회사 후배들이 보낸 전체메일에 40대 중년의 가슴이 뛰었다. 덜컥 “나도 하고 싶다”고 답메일을 보냈다. 연습에 참여하고서야 알았다. 40대 기혼 여성, 애 둘에, 심각한 과체중 상태로 덜컥 풋살을 시작한 사람은 나뿐이었다. 나보다 선배 그룹은 주로 단장·감독 등 리더 그룹으로 자리했고 나와 같이 ‘필드’를 뛰는 동료들은 대부분 젊은 후배였다.

내 처지가 우스웠다. 20~30대 때는, 아니 10대 때는 뭘 하고 이제 와서 뒤늦게 이런 걸 한다는 말인가? 일하고 애 보느라 몸이 두 개라도 부족할 지경인데 평일 저녁과 주말에 시간을 내어 풋살 연습을 하겠다니? 그것도 집 앞에서 하는 게 아니라 이렇게 멀리멀리 이동해서! 풋살 연습이 끝나고 집에 가면 자정이 넘으니, 내가 직장인인가 운동선수인가? 애들은 집에 언제 오느냐고 보채는데 내가 지금 운동할 때가 맞나?

한겨레신문사가 여성 풋살팀 ‘공좀하니’를 처음 만든 2023년, 마침 한국기자협회가 제1회 여성기자 풋살대회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렇다, 붐이 인 것이다. 그동안 기자협회는 오랜 기간 남성만을 위한 축구대회를 열었고 여성 기자들은 응원단으로 동원되곤 했다. 그런데 이제 언론사마다 하나둘 여성 풋살팀을 조직하기 시작했다! 발제와 취재, 마감 압박에 시달리며 강도 높은 노동을 이어가는 전국의 여성 기자들이 분연히 떨쳐 일어난 것이다. 우리도 공을 차겠다! 이 이야기는 그 흐름에 몸을 던진 40대 여성 기자의 자기 고백이다.

 

응원단 동원되던 여성 기자들이 드디어

선택 직후는 후회의 나날이었다. 연습 참여부터가 문제였다. 우리가 빌릴 수 있는 저렴한 풋살장은 모두 서울 외곽에 자리했다. 일주일에 두 번이라도 연습하려면 평일에 업무를 마치고 저녁 7~8시쯤 한 번이라도 모여야 했는데, 근무지~풋살장~집 이동 시간이 세 시간은 넘어가곤 했다. 회사 근처에서 모여보려고 서울 마포구의 한 어린이 풋살장을 빌려본 적도 있다. 매우 좁은 그곳에는 남자화장실만(그것도 남성 소변기만!) 있을 뿐이었다. 여자 어린이들은 풋살장의 고객이 아니라는 설계자의 단호한 의지가 엿보였다.

가장 큰 문제는 몸 상태였다. 간신히 업무를 마무리하고 뛰어가면 몸풀기를 할 때부터 몸에서 삐거덕 소리가 났다. 온종일 앉아서 일하며 운동하지 않고 살다가, 갑자기 시동을 거니 여기저기에서 탈이 났다. 마음은 저만큼 앞서가니 무리해서 뛰다가 넘어지고 발목을 삐고 다쳤다. 동료들도 계속해서 다쳤다. 축구 경험이 거의 없는 동료 대부분이 공을 다루는 법부터 뛰는 법까지 배워야 했다. 남성 기자들이나 남성 코치가 와서 훈련을 지도하기도 했다. ‘남자들은 다 이런 걸 아나, 다들 기본은 하네.’ 코치를 받을 때마다 고마우면서도 부러웠다.

2023년 4월9일 일요일에 작심하고 모인 ‘공좀하니’ 풋살팀. 이날은 남성 축구선수 출신 감독에게 지도를 받았다. 독자 제공

2023년 4월9일 일요일에 작심하고 모인 ‘공좀하니’ 풋살팀. 이날은 남성 축구선수 출신 감독에게 지도를 받았다. 독자 제공


운동, 체육, 스포츠… 생각해보면 이런 단어는 어릴 때부터 나와 상관없는 거라 생각하며 살아왔다. 나는 ‘공부를 열심히 하는 모범생 여자아이’니까, 공부만 하면 되니까 체육 시간에 잘 못하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고까지 생각했던 것도 같다. 100m 달리기는 전교에서 가장 느린 수준이었고 내리막길이 무섭다며 자전거도 타지 못했다. 어떻게 달리는지, 어떻게 넘어져야 하는지 알 기회가 없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경험이 없는 것은 ‘팀스포츠’임을 풋살을 하면서야 깨달았다. 맞아, 나는 팀 동료들과 호흡을 맞추며 경기를 해나가야 하는 방식의 팀스포츠를 해본 경험이 없구나! 학창 시절에 즐겨 했던 고무줄놀이도 나만 잘하면 그만이었다. 상대가 있던 운동은 배드민턴 정도였을까. 축구와 풋살 같은 팀스포츠는 아예 다른 세계였다. 상대를 보고, 패스하고, 돕고, 상대를 위해 움직여주는 일이 필수였다.

팀스포츠를 하는 누군가를 보며 ‘부럽다’고 생각한 것은 풋살을 시작하기 한 해 전, 2022년이었다. 당시 가족과 함께 미국에서 지낼 기회가 있었는데 4살 딸아이가 너무도 자연스럽게 지역의 축구 프로그램에 들어가 ‘4살 여자축구팀’의 일원이 된 모습을 본 것이다. 한국에서 여자 어린이들이 축구를 하고 싶어 한다면 (여자 어린이가 ‘축구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기회를 만나기도 어렵지만) 이렇게 자연스럽게 동네에서 ‘또래 여성팀’을 조직할 수 있을까? 내가 나고 자란 1980~1990년대 우리 동네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어린 시절 자연스럽게 축구·농구 등 팀스포츠를 접할 수 있는 미국인들은 자녀를 낳은 뒤, 다시 동네의 ‘팀 코치’로 자원봉사하는 일 역시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딸아이의 ‘4살 여자축구팀’ 코치 역시 자원봉사에 나선 여성(팀원의 어머니)이었다. 그는 세 딸의 엄마였고, 세 딸 모두 축구에 진심이었다. 4살 막내딸을 위해 축구팀 코치로 나선 엄마를 위의 두 딸은 자랑스러워하며 적극 도왔다. 축구장에 나와 아이들의 자세를 봐주고, 동선을 알려주고, 공을 못 차서 상심한 아이들에게 격려하기까지!

2022년 10월13일 미국의 한 지역 ‘4살 여자축구팀’에 들어간 딸이 리그가 끝난 뒤 트로피를 들고 자원봉사 코치(선수 중 한 명의 어머니)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임지선 기자

2022년 10월13일 미국의 한 지역 ‘4살 여자축구팀’에 들어간 딸이 리그가 끝난 뒤 트로피를 들고 자원봉사 코치(선수 중 한 명의 어머니)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임지선 기자


여기서 잠깐 미국에서 동네 축구 프로그램에 들어가는 절차를 알아보자. 지역마다 차이는 있지만 내 경우 카운티(각 주의 자치를 위한 소규모 행정구역)에서 직접 스포츠 프로그램과 경기장 등 공원 운영을 담당(Parks and Recreation Department)하고 있었다. 온라인 누리집에 들어가면 사계절 프로그램이 상세하게 안내돼 있다. 등록 기간을 잘 지켜 아이의 나이에 맞게 프로그램을 선택해 참여하면 된다.

야외에서 축구 하기 딱 좋은 계절인 봄·가을 프로그램은 3~5월, 8~10월에 진행된다. 성인 축구 리그부터 3살을 위한 축구 기초반까지 쭉 갖춰져 있다. 어린이들의 경우 만 3살과 만 4살의 축구 기초반이 개설됐고, 경기를 뛰고 싶은 아이들은 만 4~14살 ‘유소년 축구 리그’(Youth Soccer Leagues)에 참여할 수 있다. 3개월 비용은 해당 카운티 주민일 경우 만 3살 기초반이 80달러(약 11만원), 4~11살 축구 리그가 100달러(약 14만원)다.

 

한 달 3~4만원이면 뛸 수 있는 미국 환경

딸아이를 축구 리그에 접수하며 가장 놀란 점은 개설된 프로그램에 성별 차이가 없다는 것이었다. “우리 애가 여자인데 축구팀 참여가 가능한가요?”를 물을 필요가 없었다. 여자아이의 참여도가 높으니 4~5살부터 고교팀까지 여성축구팀이 활발하게 구성됐다. 한번에 5~6팀이 축구를 할 수 있는 드넓은 공원에는 언제나 여성팀들의 경기와 남성팀들의 경기가 어우러졌다. 여자아이라고 해서 유니폼, 축구화, 축구용품을 구매하는 데 어려움도 없었다. 코치는 직접 축구공 모양의 머리끈을 만들어서 팀원들에게 나눠줬고, 누군가는 축구공 모양 쿠키를 구워와 딸의 동료들에게 먹였다.

부러웠다. 만 4살 딸이 축구팀 동료들과 뒤엉켜 여성 코치의 지도 아래 일사불란하게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내 어린 시절과 비교됐다. 나는 저런 식의 팀스포츠를 해본 적이 있던가? 여성 지도자의 훈련 아래 여성 동료들과 얼싸안으며 뜨거운 공기를 만끽한 적이 있던가? ‘체육’은 나와 상관없는 교과인 양 살아온 40년 세월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아들을 꼭 낳아야 하는데 못 낳은 맏며느리가 낳은 세 딸 중에 둘째로 태어나 자라며 들어온 말들이 떠올랐다. 공차기를 같이 할 아들이 없어서 아쉽다는 아빠, 뭔가 좋은 성과를 낼수록 ‘왜 고추만 안 달고 나왔냐’고 아쉬워하는 친척들…. 누구보다 그런 말들에 반발했으면서도 결국 순응하며 ‘공차기’를 멀리하고 살았던 것이 내 인생이었다.

2022년 9월24일 미국의 한 지역 ‘4살 여자 축구팀’이 연습을 하고 있다. 임지선 기자

2022년 9월24일 미국의 한 지역 ‘4살 여자 축구팀’이 연습을 하고 있다. 임지선 기자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의 풋살팀 도전은 굉장한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몸은 삐거덕거렸고, 연습시간을 지키느라 맨날 허덕였으며, 업무 스트레스와 가족에 대한 미안함 사이에 쩔쩔맸고, 무엇보다 내 실력이 그리 크게 팀 전력에 도움이 되지 못했다. 공만 보고 뛰느라 옆 동료와의 협업을 잘 해내지도 못했고 연습경기나 실전에서 중요한 기회가 올 때 기가 막히게 기회를 놓치곤 했다. 그런데도 패스 한 번, 슛 한 번에 “선배, 공 차는 감각이 있는데요!” “힘이 좋아서 공격수를 하면 되겠어요”라는 동료들의 격려를 들을 때면 어마어마한 에너지가 치솟았다.

 

59년 만에 열린 여성 기자 전용 체육대회

한겨레 여성 풋살팀 ‘공좀하니’는 2023년 7월1일 경기도 파주 국가대표트레이닝센터(NFC) 실내풋살장에서 열린 제1회 기자협회 여성회원 풋살대회를 최종 4위로 마쳤다. 당시 대회를 소개한 기사는 “이번 대회는 기자협회 창립(1964) 59년 만에 처음 열린 여성 기자 전용 체육대회였고, 공좀하니는 ‘한겨레신문’ 창간(1988) 35년 만에 처음 결성된 여성 풋살팀이었다. 사정이 다를 바 없는 신생 열두 팀이 출사표를 냈고, 반세기 만에 해금된 미지의 전장에서 한겨레는 기적 같은 이야기를 썼다”고 기록했다. 나도 잠시 그 기적에 동참했고 그래서 행복했다. 내 후배들은 이런 기쁨을 나보다 더 어릴 때, 더 자연스럽게 느끼며 성장하길 바란다.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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