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7월10일(현지시각) 캐나다 토론토에 있는 요크 라이언스 스타디움에서 여자축구 노던슈퍼리그(NSL) 오타와 래피드 FC 소속 이민아가 AFC 토론토를 상대로 드리블하고 있다. 이민아 제공
중앙선 부근에서 공을 잡은 선수가 골대를 향해 쇄도하자 수비수 네 명이 순간 일제히 물러섰다. 선수는 그 공간을 놓치지 않았다. 뒤늦게 다가온 수비 두 명을 순간적인 방향 전환으로 떨어뜨렸다. 뒤에 있던 다른 수비 두 명이 황급히 막아서는 순간 선수는 반박자 빠르게 슈팅했다. 공은 골키퍼의 손이 닿지 않는 골대 아래 구석으로 빨려 들어갔다. 선수는 두 손을 불끈 쥐고 위아래로 흔들었다. 캐나다의 수도, 오타와를 연고로 하는 오타와 래피드 FC 의 공식전 첫 득점이었다. 득점의 주인공은 한국에서 온 이민아(34)다.
2025년 4월, 캐나다에서 노던슈퍼리그(NSL)라고 불리는 여자축구 프로리그가 출범했다. 리그 시작부터 벌써 이민아를 포함해 3명의 한국 선수(추효주·홍혜지)가 뛰고 있다. 참여하는 팀 개수가 6개로 적지만, 만만치 않다. “경기해보니 스피드랑 힘이 한국이랑 달라요. 수비나 공격 전환 속도도 빠르고 키도 크고 다리도 길다보니 처음엔 많이 걸리더라고요. 이제 좀 어떻게 해야 할지 알 것 같아요.” 2025년 7월24일 한겨레21과 한 전화 인터뷰에서 이민아가 말했다.
이민아는 지소연 등과 함께 2010년 20살 이하(U20) 독일월드컵에서 3위라는 성적을 낸 ‘황금세대’의 일원이다. 2012년 A매치에 데뷔한 뒤 83경기에서 17득점을 기록한, 한국 여자축구를 대표하는 선수 중 한 명이다. 2012년 인천현대제철 레드엔젤스 WFC에 입단하며 WK리그 대표 미드필더로 자리매김한 그는 2018년 일본의 아이낙 고베 레오네사로 이적하며 국외 리그로의 도전을 선택했다. 첫 시즌 14경기에 나와 5득점을 기록했지만, 시즌 막판 햄스트링 부상을 당한다. 두 번째 시즌 4경기 출전에 그친 이민아는 2020년 한국으로 돌아왔다.
이민아는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2024년엔 스페인 레알 베티스로 이적을 추진했지만 막판에 무산됐다. 2025년 캐나다 여자축구 프로리그 NSL로의 이적 소식을 알렸다. “사실 유럽 축구를 한번은 경험하고 싶어서 계속 알아봤어요. 그러던 와중에 캐나다에서 저에게 표현을 적극적으로 해주고 하다보니 마음이 기울었어요.”
생소한 환경이었지만 끝내 이민아를 움직인 건 발전에 대한 열망이었다. “저도 선수치고 나이가 적은 편이 아니라 두렵기도 했어요. 그런데 동시에 축구선수로서 은퇴할 때까지 발전하고 싶었어요.”
캐나다에서의 하루는 단조롭다. 아침에 일어나서 출근해 오전 훈련을 한다. 구단에서 점심을 먹고 집으로 오면 오후 3시 정도다. 휴식을 취하다가 저녁을 먹으면 하루가 끝난다. “할 게 많이 없어요. 한국에 있을 때는 맛집이나 분위기 좋은 카페도 다니면서 기분 전환을 했는데, 여기는 카페 메뉴 한국만큼 맛있지 않더라고요.” 이민아가 웃으며 말했다. 그는 현재 오타와 인근에서 남편과 함께 살고 있다.
캐나다에서 여자축구에 대한 열기와 관심은 한국보다 크다. “캐나다에선 여자축구 자체가 인기 종목이에요. 여자들도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축구를 하고, 성인이 돼서도 취미로 하는 사람이 많아요. 그러다가 잘하면 선수도 하죠. 일단 축구를 하는 여성 자체가 많아요.” 오타와 래피드 구단의 홍보 전략도 한국보다 뛰어나다고 이민아는 말했다. 홈경기엔 보통 7천~8천 명 관중이 오고, 원정경기 중엔 1만 명이 넘는 관중도 들어왔다고 했다.
“올해 처음 생긴 리그인데… 이렇게 인기가 많은 것을 보면 부럽기도 하고 대단하기도 하죠. 기본적으로 홍보가 잘되는 것 같아요. 구단에서 선수들을 동원해 아이들을 위한 일일 축구교실을 열고, 시즌 시작 전엔 ‘오픈 트레이닝’이라고 해서 공개 훈련을 한 뒤에 팬들과 만나기도 하거든요. 팬들을 대상으로 하는 행사가 많아요.”

2025년 6월21일(현지시각) 캐나다 오타와의 티디(TD) 플레이스 스타디움에서 여자축구 노던슈퍼리그(NSL) 오타와 래피드 FC 소속 이민아가 캘거리 와일드 FC와 경기하고 있다. 이민아 제공
일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가 일본에 있을 땐 WE리그(일본의 여자축구 프로리그)가 출범하기 전이었지만, 한국의 WK리그와는 달랐다. 경기 시간은 늘 주말 저녁이었고, 경기장엔 많은 팬이 있었다. 무엇보다 구단은 팬들을 대상으로 한 행사를 많이 진행했다. 캐나다처럼 일본에서도 어린 선수들을 대상으로 한 일일 축구교실 같은 행사를 많이 했다. 말만 실업리그였지 실상은 프로 같았다고 이민아는 회상했다.
“너 한국에서 공격만 했지?” 일본에 처음 갔을 때 팀 동료는 이민아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실제로 이민아가 한국 인천현대제철에서 뛸 때 일방적으로 몰아붙이는 경기가 많았다. 그만큼 팀 간 격차가 컸다. “한국에 있을 때 공격을 많이 한 게 맞아요. 수비는 거의 안 했거든요. 제가 우승만 하고 온 것을 아니까 (팀 동료가) 그런 말을 한 거예요. 그런데 일본은 달랐어요. 1등이랑 10등이랑 경기해도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예요. 그래서 재밌었어요.”
일본에 진출한 뒤 깨달은 건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점이다. 그는 WK리그도 많이 바뀌어야 한다고 했다. 먼저 꺼낸 방책은 ‘강등제 도입’이었다. 그러나 강등제가 생기려면 하위 리그가 생길 만큼 팀이 많아져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이민아도 이런 점을 지적한 뒤 조금 더 근본적이고 냉정한 이야기를 털어놨다. “사실 WK리그 풀이 작잖아요. 경쟁이 그렇게 치열하지 않아요. 더 경쟁하고 치열하게 싸워야 경기 템포도 빨라지고 전환도 빨라지거든요. 지금의 WK리그는 여유가 많아요. 치열하지 않죠.”
그는 인터뷰 내내 여러 차례 WK리그의 ‘템포’가 빠르지 않다고 지적했다. 티브이(TV) 중계를 해주지 않거나 평일에 경기하는 것 등도 문제지만, 이민아는 치열한 경기가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민아의 다음 목표는 무엇일까. “저보다 신체 조건이 좋은 선수들을 상대했을 때 대처하는 법을 발전시키고 싶어 이곳에 왔어요. 시즌도 남았고, 충분히 좋은 리그로 더 발전하고 있지만 더 도전해보고 싶기도 해요.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어요. 아직은 고민 중이에요.”
그는 은퇴 이후의 삶은 준비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마디 덧붙였다. “캐나다에 와서 보니까 어떤 선수는 축구를 하면서 디자이너도 같이 하고 다른 선수는 의사더라고요. 크리에이터를 하는 선수도 있고요. 축구 하나만 하는 게 아니에요. 그런 걸 보면 대단한 것 같기도 하고요. 되게 멋있고 좋은 것 같아요.”
사실 그도 이전에 축구를 하면서 다른 영역에 도전한 적이 있었다. 자신의 이름을 걸고 운영했던 유튜브 채널이다. 구독자도 6만 명이 넘고 100만 조회수가 넘은 영상도 여럿 된다. 그러나 2022년 영상을 마지막으로 개점휴업 상태다. 이민아에게 캐나다 브이로그를 찍어서 올릴 생각은 없는지 물었다. “운동하고 집에 와서 그거 하기가 쉽지 않은데… 참, 게으름 병에 걸려서 다시 마음먹고 해볼게요!”
류석우 기자 raint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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