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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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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스트링 부상, 그녀는 더 단단해졌다

【WK리그 명장면②】덕후 3인방이 소개한 2023~2025년 3개 시즌 여자축구를 사랑하게 만든 명장면들
등록 2025-08-22 11:08 수정 2025-09-01 16:58

여자축구가 시시하다고? 박진감이 없다고? 여자축구를 제대로 보면 피치(경기장) 위에서 누구보다 치열하게 뛰고 구르며 한계에 도전하는 선수들의 희로애락을 강렬하게 느낄 수 있다. 한국 여자축구를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지켜본 이들이 2023년부터 2025년까지 세 번의 시즌을 보며 한국 여자축구 최상위 리그 더블유케이(WK)리그에서 놓쳐서는 안 될 명장면을 뽑았다.

2025년 8월1일 경남 창녕군 창녕스포츠파크 축구경기장에서 인천디자인고 한 선수가 슈팅 연습을 하고 있다. 창녕(경남)=김진수 기자 jsk@hani.co.kr

2025년 8월1일 경남 창녕군 창녕스포츠파크 축구경기장에서 인천디자인고 한 선수가 슈팅 연습을 하고 있다. 창녕(경남)=김진수 기자 jsk@hani.co.kr


수원시설관리공단 여자축구단 선수 출신으로 WK리그 해설을 하면서 거의 모든 경기를 애정과 비판을 담아 지켜봐온 권예은 해설위원, 누구도 기록하지 않던 여자축구를 카메라로 기록하다가 2025년부터 한국여자축구연맹이 운영하는 WK리그 커뮤니티 ‘더블유케이 로그’(WK LOG)를 운영하게 된 이윤성씨, 어느 날 우연히 여자축구 경기를 보다가 ‘여축’(여자축구 덕후들은 여자축구를 ‘여축’이라 줄여 부른다)에 입덕해 WK리그의 팬이 되고 팬심으로 제1호 여자축구 문화전문지까지 펴낸 김나은 우만컴퍼니 대표가 ‘여축’을 사랑하게 만들 명장면들을 1·2부 나눠서 소개한다. ―편집자

 

5. 언제? 2024년 4월18일
누가? 화천KSPO vs 서울시청 아마조네스
어디서? 서울 상암월드컵경기장 보조경기장

 

2024년 5월15일 세종시민운동장에서 열린 화천KSPO와 세종 스포츠토토의 WK리그 11라운드 경기에서 뛰고 있는 화천KSPO 소속 위재은의 모습. 이윤성 제공

2024년 5월15일 세종시민운동장에서 열린 화천KSPO와 세종 스포츠토토의 WK리그 11라운드 경기에서 뛰고 있는 화천KSPO 소속 위재은의 모습. 이윤성 제공


늦게 핀 위재은이 더 아름답다

 

2024년 4월18일 서울 상암월드컵경기장 보조경기장에서 열린 서울시청 아마조네스와 화천KSPO의 WK리그 6라운드 경기. 전반 37분 한 선수가 갑자기 경기장에 주저앉았다. 0 대 1로 뒤진 상황에서 동점골을 넣은 화천KSPO의 위재은이었다. 오른쪽 다리를 몇 번 움직여본 위재은은 걸어서 경기장을 빠져나갔지만 다시 들어오지 못했다. 햄스트링 부상이었다.

부상은 위재은을 멈추게 한 적이 없다. 고려대 시절 전국체전 결승에서도 전방 십자인대와 반월판 파열이라는 중상을 입었지만, 1년6개월의 재활 끝에 복귀해 2017년 열린 전국여자축구선수권대회에서 13골을 터뜨리며 우승 트로피를 안겼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강재순 감독의 두터운 신임 속에 혹독한 재활을 거친 위재은은 2주 만에 복귀해 5월2일 열린 수원FC위민전에서 측면과 중앙을 넘나들며 1 대 1 돌파와 뒷공간 침투, 세컨드볼 연결로 팀 공격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위재은의 투혼은 화천의 젊은 자원들에게도 영감을 줬고, 팬들에게는 ‘언제나 포기하지 않는 선수’라는 믿음을 심어줬다. 부상은 걸림돌이 아니라 더 단단히 일어설 수 있는 발판임을 증명한 그의 다음 목표는 WK리그 챔피언 트로피다. 아직 20대인 위재은의 발걸음은, 이제 막 또 다른 전성기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이윤성 WK로그 운영자

 

6. 언제? 2024년 5월2일
누가? 인천현대제철 레드엔젤스WFC vs 창녕WFC
어디서? 인천 남동아시아드 럭비경기장

 

2024년 5월2일 인천 남동아시아드 럭비경기장에서 열린 인천현대제철 레드엔젤스WFC와 창녕WFC의 2024 WK리그 9라운드 경기 모습. 유튜브 ‘iTOP21sports’ 채널 갈무리

2024년 5월2일 인천 남동아시아드 럭비경기장에서 열린 인천현대제철 레드엔젤스WFC와 창녕WFC의 2024 WK리그 9라운드 경기 모습. 유튜브 ‘iTOP21sports’ 채널 갈무리


팬들이 승리보다 간절히 바라는 건

 

신인 이은영의 간절함이 돋보인 경기다. 창녕WFC 소속 이은영은 리그 1위를 지키던 강팀 인천현대제철 레드엔젤스WFC를 상대로 전·후반 90분 내내 지치지 않고 뛰었다. 공격수지만 측면과 중앙에서 볼 수급을 담당했고 백방으로 뛰어다니며 팀의 기회를 만들려고 노력했다. 공격뿐 아니라 수비에도 적극 가담했다.

이은영은 2024년 신인 드래프트 1순위로 창녕WFC(2023년 시즌 8위)에 지명돼 WK리그에 데뷔했다. 신인임에도 개막전부터 선발 출전해 데뷔골을 넣었다. 그러나 이후 지속되는 팀의 패배와 풀타임 출전 속에서 점점 지쳐가는 듯 보였다. 그렇게 시즌이 한창 진행되던 2024년 5월2일, 이은영은 WK리그 9라운드에서 1위팀인 인천현대제철과 만났다.

인천현대제철이 한 골 앞선 후반 9분, 이은영은 측면에서 돌파한 뒤 수비수 한 명을 제쳐내고 동료에게 정확한 패스를 내줬다. 그러나 슈팅은 상대 수비수에 막혔고, 공은 뒤쪽으로 흘렀다. 이제 막 운동장 절반을 전력으로 뛰어온 이은영은 쉴 틈도 없이 흐르는 공을 향해 몸을 던졌다. 패배의 무력감 대신 승리에 대한 간절함과 투지가 돋보이는 장면이었다.

그의 간절함을 90분 내내 느낄 수 있었기에, 승리 뒤 환하게 웃는 상대 선수들 사이에서 그가 잔디와 흙으로 엉망이 된 모습으로 묵묵히 고개를 숙이는 모습을 보며 슬펐다. 축구에선 승리도 짜릿하지만, 패배가 예상되는 경기를 뒤집기 위해 모든 것을 쏟아붓는 선수의 간절함이 팬의 마음을 더 크게 울린다. 그런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한 경기였다.

 

김나은 우만컴퍼니 대표

 

7. 언제? 2024년 12월12일
어떤? WK리그 신인 드래프트 현장
어디서? 서울 올림픽파크텔 아테네홀

 

 

2024년 12월12일 ‘2025 WK리그 신인 드래프트’에서 1차 지명된 인천현대제철 김명진, 창녕WFC 도윤지, 서울시청 우서빈, 경주한수원 강은영, 화천KSPO 천세화, 수원FC위민 이수인, 세종스포츠토토 김지현. 한국여자축구연맹 제공

2024년 12월12일 ‘2025 WK리그 신인 드래프트’에서 1차 지명된 인천현대제철 김명진, 창녕WFC 도윤지, 서울시청 우서빈, 경주한수원 강은영, 화천KSPO 천세화, 수원FC위민 이수인, 세종스포츠토토 김지현. 한국여자축구연맹 제공


 

불안과 걱정, 설렘과 떨림의 드래프트 현장

 

드래프트가 시작되기 전, 홀 안에는 숨소리마저 조심스러운 긴장감이 감돌았다. 이름이 호명될 때마다 환호와 박수가, 때로는 안도의 한숨이 들렸다.

2024년 12월12일, 서울 올림픽파크텔 아테네홀에서 열린 2025 WK리그 신인 드래프트는 유난히 특별했다. 골키퍼가 1순위로 지명되는 전례 없는 순간이 있었고, 연령별 대표팀을 거친 실력자들이 상위 지명에 이름을 올렸다.

1순위로 인천현대제철에 간 김명진은 2025 시즌 선발과 교체를 포함해 모든 경기에 출전했고, 수원FC위민의 이수인도 경고누적 한 경기를 제외한 모든 경기에서 뛰었다. 서울시청 우서빈도 모든 경기 선발로 뛰었고, 신예의 무덤이라 불리는 경주한수원에서 엄민영은 15라운드 데뷔 이후 꾸준히 선발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창녕WFC로 간 선수들도 강한 경쟁력을 보여주고 있다.

나에게 드래프트는 늘 특별하다. 2012년 나도 1순위로 수원에 지명됐지만, 현장에 가지 못한 채 집에서 긴장과 걱정 속에 발표를 기다렸다. 그래서일까, 매년 이 순간을 누구보다 기다리고 그 기대는 2024년에도 틀리지 않았다. 무대 위에서 이름이 불린 선수들의 떨림과 눈빛, 그리고 그들이 시즌 속에서 보여주는 성장은 WK리그가 계속 진화하고 있음을 증명한다. 이제 남은 건 이 치열한 경쟁 속에서 시즌 마지막 날 누가 우승컵을 들어 올릴지 지켜보는 일이다.

 

권예은 해설위원

 

8. 언제? 2023년 11월25일
누가? 인천현대제철 레드엔젤스WFC vs 수원FC위민
어디서? 인천 남동아시아드 럭비경기장

 

2023년 11월25일 인천 남동아시아드 럭비경기장에서 인천현대제철 레드엔젤스WFC 선수들이 11연패 시상식 직후 인천 가정여자중학교, 가림초등학교 선수들과 함께 찍은 단체 사진. 이윤성 제공

2023년 11월25일 인천 남동아시아드 럭비경기장에서 인천현대제철 레드엔젤스WFC 선수들이 11연패 시상식 직후 인천 가정여자중학교, 가림초등학교 선수들과 함께 찍은 단체 사진. 이윤성 제공


11개의 서로 다른 별

 

2023년, 인천현대제철은 리그 최강이라 불리던 수원FC위민과 벌인 챔피언결정전 1차전에서 1 대 3으로 패배했지만, 2차전에서 다득점으로 경기를 뒤집으며 우승했다. 11번째 우승이라는 진기록을 달성했을 때 먼저 마주한 건 축하보다 차가운 시선이었다. ‘노잼 리그’, ‘어우현’(어차피 우승은 현대), ‘적당히 해야지’ 같은 말이 이들의 성취를 예정된 결말처럼 치부하며 가치를 깎아내렸다. 하지만 내가 지켜본 11년은 결코 당연하지도, 쉬운 길도 아니었다. WK리그는 단일 리그 체제에서 매년 8개 구단이 치열하게 맞붙는다. 외국인 선수 영입, 유망주 발굴, 전술 다변화로 상위권 판도는 해마다 요동쳤고, 인천현대제철 역시 늘 ‘강자’라는 이름의 부담과 압박을 안고 있었다.

인천현대제철은 매번 같은 방식으로 승리하지 않았다. 비야와 따이스 같은 주득점원이 떠나고, 베테랑들이 서서히 정점에서 내려오던 시기에도 팀은 진화했다. 점유율 중심의 빌드업 축구에 더해, 빠른 선수들을 활용한 강한 압박과 전환 공격을 혼합했다. 핵심 선수의 국외 진출과 부상, 감독 교체라는 변수를 이겨내는 과정에서 팀은 더 단단해졌다. 그러나 예전처럼 다득점으로 손쉽게 경기를 풀어가던 모습은 사라졌다. ‘5패’라는, 현대제철과 어울리지 않는 성적표를 받아든 채 리그 3위, 4위까지 밀려났고 중요한 순간 세 차례의 무승부로 10연패의 역사가 무너지는 듯 보였다.

하지만 하늘이 간절함을 알아줬을까. WK리그 최종전에서 1, 2위였던 화천KSPO와 수원FC위민의 맞대결이 2 대 2 무승부로 끝났고 리그 3위였던 인천현대제철은 서울시청을 상대로 6 대 0 대승을 거두며 극적으로 1위를 탈환하고 챔피언결정전에 직행했다. 이민아, 장슬기, 김혜리, 강채림 같은 스타들이 주목받았지만, 그 뒤에는 벤치 멤버들과 구단 스태프의 묵묵한 헌신이 있었다. 부상에서 돌아와 팀을 살린 선수, 경기장 밖에서 끝까지 응원하며 분위기를 지킨 서브 멤버들까지. 이 무명의 조각들이 모여 거대한 역사를 완성했다.

 

이윤성 WK로그 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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