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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량제 봉투 사재기 마세요…수급 차질 없어요”

물량 부족하지 않은데도 곳곳서 ‘품귀’ 현상 …종량제 봉투 가격 가격인상 당장 못해
등록 2026-03-26 09:53 수정 2026-03-26 10:10
2026년 3월24일 서울 시내 한 마트에 판매중인 다양한 크기의 종량제봉투. 연합뉴스

2026년 3월24일 서울 시내 한 마트에 판매중인 다양한 크기의 종량제봉투. 연합뉴스


“마트에 갔다가 사람들이 종량제 봉투를 뭉텅이로 집어가는 걸 보고 ‘포모’(FOMO, 나만 뒤처진다는 두려움)가 와서 나도 한 묶음 집어 왔어요.”

서울 영등포구에 사는 이아무개(28)씨는 최근 마트를 찾았다가 “이미 집에 충분한” 종량제 봉투를 한 묶음 더 사 온 사정을 전했다. 미국·이스라엘-이란 전쟁 여파로 석유를 원료 삼아 만드는 비닐 가격이 오르리라는 전망이 전부는 아니었다. ‘다른 사람들의 움직임’이 불안을 촉발했다. 광범위한 제품 원료가 되는 석유 특성 탓에 불안의 대상이 되는 품목은 늘고 있다.

이씨는 2026년 3월25일 한겨레에 “석유를 원료로 쓰는 제품이 생필품 중에도 정말 많다. 가격이 오를까 봐 걱정”이라고 했다. 온라인 커뮤니티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페트병 생수, 화장지, 샴푸, 물티슈, 기저귀 등을 짚으며 ‘물가 폭등 대비 미리 사둬야 할 물건 탑 12’ 등으로 소개하는 글들이 지속해서 오르고 있다.

 

불안→사재기→부족→다시 불안 ‘악순환’

 

미국과 이란 전쟁 여파로 비닐봉지 등 석유를 원료 삼아 만드는 제품 가격이 오를 것이라는 공포감이 ‘사재기’ 현상으로 이어지고, 그에 따른 부족 현상이 불안을 재촉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정부와 업계는 수급에 당장 차질이 없다는 입장인데, 시민들 사이에는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가라앉지 않는다. 이런 분위기를 틈타 업체들이 가격을 올리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을 비치는 이들도 적지 않다.

경기도 파주시 누리집에 ‘종량제 봉투 가격 인상 계획이 없다’는 안내문이 올라와 있다. 파주시 누리집 갈무리

경기도 파주시 누리집에 ‘종량제 봉투 가격 인상 계획이 없다’는 안내문이 올라와 있다. 파주시 누리집 갈무리


최근 사재기 움직임이 가장 먼저 촉발된 종량제 봉투의 경우, 당장 전체 물량이 부족하지 않은데도 곳곳에서 ‘품귀’ 현상이 벌어진다. 서울 서대문구에 사는 박아무개(46)씨는 “종량제 봉투를 사려고 보니 음식물용 외에는 이미 모두 팔렸더라”며 “주변 편의점으로 향했지만, 그곳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걱정되는 마음에 그냥 남아있는 50ℓ짜리 종량제봉투 1묶음을 1만2500원 주고 사 왔다”고 했다.

서울 동대문구에 사는 김아무개(27)씨도 “유튜브를 봐도 ‘중동 전쟁 때문에 플라스틱 수급이 어려워져 봉툿값이 오른다’는 이야기가 계속 나오니까, 나도 지금 빨리 사둬야 하나 싶다”며 “물티슈, 샴푸, 세제 등 생필품들도 석유가 원료로 쓰여 값이 오를 수 있다는 인터넷 글이 많이 돌아 불안하다”고 했다.

언론 매체, SNS 등이 과도한 우려를 퍼뜨리고 있다는 불만도 나온다. 서울 종로구에서 마트를 운영하는 ㄱ씨는 “뉴스에서 ‘비닐봉지 대란’ 이야기가 계속 나와서 그런지 종량제 봉투를 4~5묶음씩 사가는 손님이 부쩍 늘어 어제 들여놓은 물량이 오늘 오전 모두 동났다”며 “정말 물량이 달리는 상황이 오면 정부가 알아서 대응할 것 같은데 언론 등에서 괜한 불안을 부추기는 것 같다”고 했다.

 

“원가 변동만으로 봉투값 못 올려”

 

실제 경기 파주시 등 일부 지방자치단체들은 ‘종량제봉투 가격 인상 계획이 없다’는 공지를 누리집 등에 띄우며 시민 불안 잠재우기에 나섰다. 종량제 봉투 가격은 각 기초자치단체의 조례로 결정하는데, 일시적인 원가 변동으로 쉽게 가격을 올릴 수 없는 구조라고 한다. 파주시 관계자는 “시의회 심의를 거쳐 조례를 개정해야 하는 종량제 봉투 가격을 단순히 원가 변동만으로 올릴 수는 없고, 현재 계약 업체의 공급 단가 인상도 없어 절대 가격 변동을 검토할 단계가 아니”라며 “최악의 경우 수급이 불안정해져도 일반 봉투에 스티커를 부착하거나 무상 수거하는 등 다양한 대안이 있다”고 말했다.

석유가 쓰이는 제품은 ‘일단 쟁이고 보자’는 분위기가 번지며, 일부 업체가 이를 틈타 가격을 올리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이 제기되기도 한다. 경기도 의정부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이아무개(43)씨는 “원래 소형 비닐봉지를 장당 28원에 사다 썼는데, 다 떨어져서 새로 주문하려고 보니 여러 온라인 주문처가 ‘품절’ 처리를 해 뒀거나 장당 가격을 48~50원까지 올린 상태였다”며 “(전쟁으로 인한 원자재 부족 여파가) 이렇게나 빠르게 (생산 단가에) 영향을 주진 않았을 것 같다. 사람들이 급히 찾는다고 하니 일단 가격부터 올리고 본 게 아닐지 의심된다”고 말했다.

정인선 기자 ren@hani.co.kr 정봉비 기자 b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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