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희 여사 공천 개입 의혹’의 핵심 인물인 명태균씨가 실질적으로 운영한 업체 미래한국연구소가 2022년 3월 대선을 앞두고 윤석열 당시 후보에게 유리한 여론조사 결과를 만들기 위해 표본 600명만 조사한 뒤 2천 명을 조사한 것처럼 조사 내용을 ‘뻥튀기’한 정황이 확인됐다.
2024년 10월17일 한겨레21이 입수한 녹음 파일 내용과 취재를 종합하면, 명씨는 2021년 9월29일 여론조사 작업을 진행하던 미래한국연구소 직원 강혜경씨에게 여론조사 결과를 조작할 것을 지시했다. 이때는 윤석열 후보와 홍준표 후보 등이 한창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되기 위해 경쟁하던 시점이다. 명씨는 이날 오후 3시33분 여론조사 표본이 600개가량 조사됐을 시점에 강씨에게 전화를 걸어 “스톱하고, 연령별하고 지역별하고 다 맞춰갖고, 여성하고 맞춰갖고, 곱하기 해갖고 한 2천 개 만드이소”라고 지시했다. 명씨는 이후 “(600개가량 조사하는 데) 돈 얼마 들어갔어요?”라고 물었는데 강씨는 “40만원 정도 들어갔어요”라고 답하니 “그럼 됐어요. 보고서 바로 해요”라고 말했다. 자동응답시스템(ARS) 조사 기준으로 1천 명을 조사할 때 통상 100만원 이상이 들어간다는 점을 고려하면, 40만원은 1천 명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규모다.
앞서 뉴스토마토가 보도한 강씨와 명씨의 같은 날 오후 4시50분께 통화 녹취록을 보면, 명씨는 강씨에게 “윤석열이를 좀 올려갖고 홍준표보다 한 2% 앞서게 해주이소”라며 “그 젊은 아들 있다 아닙니까? 응답하는 그 개수 올려갖고 2~3% 홍(준표)보다 더 나오게 해야 됩니다”라고 강씨에게 지시했다. 뉴스토마토가 보도한 녹취록을 통해 여론조사 결과를 윤석열 후보에게 유리하게 조작한 정황을 알 수 있었다면, 한겨레21의 녹음 파일을 통해서는 표본을 600개만 조사해놓고 2천 명이 응답한 것처럼 속인 구체적인 여론조사 결과 조작 과정이 드러난 것이다.
명씨가 여론조사 문항과 방식에 대해 구체적으로 지시한 정황도 있다. 한겨레21이 확보한 녹취 파일을 들어보면, 명씨는 2022년 2월28일 강씨에게 여론조사를 지시하며 구체적으로 “연령별 가중치 나중에 줘서 하라” “사전투표할 거냐, 후보 누구냐, 정당 지지율 3개만 물어라”라고 말했다. 2022년 2월 말은 제20대 대선을 열흘 정도 앞둔 시점이었다.
미공표 여론조사도 공직선거법 준수해야
명씨가 결과를 조작한 여론조사는 이 밖에도 더 있을 가능성이 크다. 강씨는 한겨레21과 한 통화해서 “2021년 9월29일 조사뿐만 아니라 결과가 조작된 여론조사가 더 있다”고 말했다. 명씨의 지시로 미래한국연구소가 2021년 5월14일부터 2022년 3월8일까지 진행한 비공표 여론조사는 모두 14건, 대선 면밀조사는 9건이다. 이 결과는 모두 언론이나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에 공표되지 않고 각 대선 후보들에게 개인적으로 보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여론조사 기관이 정당의 의뢰를 받아 미공표 여론조사를 진행하는 경우가 있긴 해도, 미래한국연구소가 의뢰자도 알 수 없는 미공표 여론조사를 했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이상한 일”이라며 “의뢰자가 없는데 자기 돈을 들여서 여론조사를 진행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관계자는 “공표된 여론조사뿐만 아니라 미공표 여론조사도 공직선거법을 준수해야 한다. 준수하지 않을 경우, 고발 조처나 과태료가 부과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언론에 공개되지 않은 23건의 여론조사뿐만 아니라, 언론을 통해 공표된 여론조사 결과에도 미심쩍은 부분이 있다. 명씨가 지시한 여론조사 결과가 다른 여론조사 기관의 조사 결과와 결이 다르게 나타났기 때문이다. 미래한국연구소는 2021년 4월18일부터 2022년 3월2일까지 피플네트웍스리서치(PNR)에 의뢰해 58차례 여론조사를 진행했는데, 이 가운데 2차례만 이재명 후보가 지지율 1위로 나타났다. 나머지 56차례는 윤석열 후보가 1위를 하는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백분율로 환산하면 96.6%의 승률이다. PNR은 미래한국연구소가 주로 여론조사를 의뢰했던 기관이다.
하지만 같은 기간 한국갤럽의 정기조사를 보면, 20번 가운데 윤석열 후보가 7번, 이재명 후보가 11번 1위를 나타냈고, 2번은 동률로 집계됐다. 한국갤럽 조사에서 윤석열 후보의 승률은 35%였다. PNR과 같이 ARS로 조사한 리얼미터 정기조사와 교통방송(TBS)의 의뢰로 한국사회여론연구소가 한 정기조사에서 윤석열 후보의 승률은 각각 88.8%, 65.1%였다. 여기서 1위, 승률은 오차범위 안에서 앞서는 경우도 포함해 계산했다.
조사 결과를 하나씩 살펴보면, 김건희 여사의 허위 경력 문제가 불거졌던 2021년 12월 말 대부분의 언론에서 윤석열 후보에 대해 비판적인 기사를 쏟아냈다. 이런 분위기는 여론조사에도 반영돼 2021년 12월30일 여론조사에서 이재명 후보가 윤석열 후보를 앞서는 결과가 연이어 나타났다. 아시아경제가 의뢰해 윈지코리아컨설팅이 시행한 여론조사에서 이재명 후보는 대선 후보 지지율 32.8%를 기록해, 25.4%를 기록한 윤석열 후보를 7.4%포인트 앞섰고, 조원씨앤아이(시사저널 의뢰) 여론조사와 알앤써치(아시아투데이 의뢰)의 여론조사에서도 이재명 후보가 윤석열 후보를 근소하게 앞서는 것으로 나왔다. 2022년 1월2일 등록된 리서치뷰(유피아이뉴스 의뢰)와 리얼미터(오마이뉴스 의뢰)에서도 이재명 후보가 윤석열 후보를 앞선다.
하지만 같은 시점인 2021년 12월30일 미래한국연구소가 의뢰해 PNR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윤석열 후보(41.8%)가 이재명 후보(40.3%)를 여전히 1.5%포인트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틀 뒤인 2022년 1월1일 등록된 여론조사(미래한국연구소·뉴데일리 의뢰, PNR 조사) 결과에서도 윤석열 후보는 40.9%로 이재명 후보(40.3%)를 오차범위 내에서 앞섰다.
국민의힘 대선 후보 경선이 한창이던 2021년에도 미심쩍은 여론조사 흐름을 볼 수 있다. 2021년 9월 윤석열 후보의 고발사주 의혹 사건이 보도되면서 윤석열 후보의 지지율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전까지 윤석열 후보에게 큰 차이로 뒤지던 홍준표 후보가 윤석열 후보를 따라가고 있었다. 2021년 9월 말에서 10월 초 교통방송 여론조사는 물론, 보수 성향인 데일리안이 의뢰해 여론조사 기관 공정이 조사한 여론조사에서도 홍준표 후보가 앞섰다. 그러나 미래한국연구소가 의뢰한 PNR의 여론조사에서는 9월11일 한 차례를 제외하곤 모두 윤석열 후보가 앞서는 결과가 나왔다.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공표된 여론조사 결과가 조작됐을 가능성에 대해 “불가능하진 않지만 너무 위험한 일”이라고 입을 모았다. 역시 익명을 요구한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결과를 조작하거나 표본을 조작하는 건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여론조사심의위원회가 들여다본다면 100% 걸릴 만한 것이다. 리스크가 아주 크다”며 “불법적인 행위가 없었어도, 질문이나 질문 문구에 따라서도 결과가 차이 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미래한국연구소와 PNR은 어떤 방법으로 결이 다른 여론조사를 계속 생산할 수 있었을까. 우선적으로는 표본을 윤석열 후보에게 유리하도록 뽑았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특정 지역, 특정 세대에 국한하지 않고 각 지역과 연령별 대표성을 띠는 표본을 조사해야 하는데, 윤석열 후보 지지층이 많은 지역이나 세대, 집단을 임의로 다수 넣어서 조사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미래한국연구소는 이렇게 표본을 조작한 전력이 있다. 미래한국연구소는 2019년 4·3 재보궐선거에서 성별·계층·거주지 등이 확인되지 않은 임의의 전화번호 데이터 19만 개 등을 여론조사에 활용했고, 2022년 6월 지방선거에서도 자체 보유한 데이터 3만8천 건 등을 여론조사에 활용해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2021년에는 재보궐·지방선거 여론조사 표본 대표성 미확보 등 이유로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로부터 3차례 경고를 받았고, 2019~2022년 중앙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4차례 고발당했으며, 과태료 처분과 경고 처분도 각각 1차례, 3차례씩 받았다.
불법적인 방법이 아니지만 윤석열 후보에게 유리하고 이재명 후보에게 불리한 구도의 질문을 넣은 정황도 보인다. 미래한국연구소는 2022년 1월 윤석열 후보의 배우자인 김건희 여사가 서울의소리 이명수 기자와 한 통화 녹취록이 보도된 것과 관련해 “이재명 후보의 통화도 공개해야 하지 않느냐”는 엉뚱한 설문 항목을 포함하기도 했다.
채윤태 기자 chai@hani.co.kr·곽진산 기자 kjs@hani.co.kr·김완 기자 funnyb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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