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가려지는 듯했던 ‘출생의 비밀'은 2세에게 불현듯 찾아왔다. 그리고 어느덧 3세마저 영향이 이어졌다. 아프면서도 이유를 몰랐던 참전군인의 자녀가 자신과 똑같은 병명을 아버지 병원 기록에서 찾았다. 혹은 선천성 기형을 가진 3세 자녀를 낳았다. 혹은 자기 자신도 태어날 때 선천적 기형아였음을 뒤늦게 알았다. 이유 없이 아픈 줄 알았던 몸엔 사실 명징한 이유가 있었다. 모든 시작점은 60년 전 베트남전쟁에서 살포된 고엽제였다.
“드럼통에서 (고엽제를) 퍼다가 수시로 바닥에 뿌렸어. 하룻밤이면 풀이며 아름드리나무까지 다 죽지. 그렇게 독한 거를 아무도 말 안 해줬어. 보초 서고 있으면 그냥 비행기로 공중에서 뿌리는 거야. (고엽제가) 위험하다고, 대피하라고 누가 말이라도 해줬으면….”
허주예씨 아버지는 베트남전 참전군인이다. 보직은 일반 소총수. 장애물 제거 목적으로 고엽제를 직접 통에 담아 뿌렸다. 위험성은 잘 몰랐다. “쓰라니까 썼”고 “그래도 별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귀국 뒤 손발 저림과 통증으로 잠 못 드는 밤이 이어졌다. 고엽제 후유증인 말초신경병 증세였다. 가족들이 “보훈병원에 가보라”고 권했지만 그는 극구 사양했다. 수많은 죽음을 목격한 베트남과 더는 얽히고 싶지 않아서였다. “나는 문제가 없어. 어떻게든 혼자 이겨내볼게.”
‘나는 문제가 없다.’ 이 말은 고엽제 피해를 드러내는 핵심 문장이다. 고엽제와의 연관성을 모르거나 베트남 전쟁 트라우마로 과거 일을 그저 외면하고 싶기에, 혹은 유전병에 대한 두려움으로 피해를 외면한다. 그러다 진실은 벼락같이 찾아온다. 아픈 3세를 만나서야, 외면할 수 없는 병의 고통에 당면해서야.
주예씨의 셋째 아이는 신장과 항문 없이 태어났다. 3년에 걸쳐 긴 수술과 재활치료를 받아야 했다. 최근엔 렌페닝 증후군을 진단받았다. X염색체 변이로 머리가 작게 태어나는 희귀질환이다. 국내에선 사례를 찾기 힘들다. 아이에게선 척추이분증도 확인됐다. 발달 과정에서 신경관이 다 닫히지 않아 척추 뼈 일부가 노출되는 선천성 기형으로 , 법이 인정하는 고엽제 2세 후유증이다. 차세대 염기서열 검사에서도 유전자 변이가 확인됐다.
“처음엔 저도 의심을 전혀 안 했어요. 집에서 고엽제 얘기 들어본 적도 없었고요. 그러다 작년에 고엽제 후유증 관련 방송을 보고 싸해서 검색해봤더니 ‘척추이분증'이 (후유증으로) 나온 거예요. 아버지가 월남 다녀왔으니까 맞을 수도 있겠구나….”
고엽제는 적군 식량 파괴 등의 목적으로 미군이 쓴 다이옥신계 제초제다. 불순물로 포함된 티시디디(TCDD)라는 맹독성 화학물질이 신체 세포를 광범위하게 공격해 전신의 암과 기형아 출산을 유발한다. 잠복기 20년이 지나 세계 곳곳에서 제초제를 쓴 농민과 베트남전 참전군인의 집단 발병 사례가 보고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가장 피해가 컸던 베트남에선 최근까지 3세 피해자 3만5천 명에다 4세 피해까지 2천 명이 확인됐다.
미국도 2018년부터 척추이분증을 가진 참전 군인 3세 사례가 언론에 다수 보도됐다. 미국 비영리단체인 선천성 기형아연구소(Birth Defect Research for Children)는 월남 참전군인 3세의 기형 사례만 300건 이상 확보했다고 2019년 언론에 밝히기도 했다.
정작 미군 다음으로 많은 군인(32만 명)을 파병한 한국은 고엽제 피해 유전 사실을 없는 셈 취급한다. “지역 병원에선 고엽제 얘기만 꺼내도 일단 부정하고 봐요. 한 번은 청주의료원에 진료 보러 갔더니 의사가 ‘고엽제 후유증 그런 건 다 지어낸 얘기다. 참전자들 예우해주려고 국가가 만든 거다’ 그러더라고요. 그러면 환자는 또 (병명 찾느라) 시간을 허비하거든요.” 주예씨가 말했다.
기저질환을 고엽제와 무리하게 연관 짓는다는 의심 어린 시선도 있다. 그러나 주예씨는 “그러고 싶은 사람은 없다”고 말한다. “처음엔 저도 피해자 집단에 속하고 싶지 않았어요. 6살 때부터 말초신경병 증세가 있었고 오빠는 심장과 위장 질환이 있는데도요. 아이가 이 정도로 아프지 않았으면 저는 계속 그렇게 했을 거예요.”
주예씨 같은 사람들이 모여 2024년 7월 ‘고엽제 2세 3세 피해자 연대'(이하 ‘피해자 연대’)가 만들어졌다. 고엽제 2세 지원법이 마련된 건 1998년이지만, 2세들의 집단적 움직임은 최근에야 시작됐다. 나이가 들수록 몸에서 고엽제 후유증이 도드라지고, 심지어 자녀에게서도 희귀병이 나타나자 뒤늦게 고엽제와의 연결고리를 발견한 것이다. 현재 2세 회원만 156명. 지난 26년 동안 법으로 인정된 고엽제 2세(211명)의 74%에 달하는 인원이다.
“고엽제 후유증이 유전된다는 사실도 모르는 분이 여전히 많아요. 2세를 넘어 3세까지 그 피해가 확대됐는데도요. 저희가 이 모임을 만들고 알리기 시작한 이유예요.” 한겨레21과 만난 피해자 연대 회원들이 입을 모았다.
그러나 유전병 피해자 낙인 때문에 동참을 꺼리는 이들이 많다. 최근 주예씨는 선천성 기형아 부모들과 교류하다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베트남전 참전군인의 후손임을 알게 됐다. 그러나 고엽제 연관성을 인정하는 이는 없었다. ‘다행히 우린 건강하다’ ‘한 아이만 아프고 다른 자녀는 괜찮다’며 유전 가능성에 거듭 선을 그었다.
“저도 처음엔 부정하고 싶었어요. 지금은 ‘조금만 더 일찍 알았더라면’ 생각해요. 그랬으면 좀더 이른 나이에 건강 관리를 했겠죠. 아이를 셋 낳는 대신 다른 미래를 계획했을 거고요. 많은 게 달라졌을 거예요.“ 주예씨가 말했다.
원주·청주·천안·인천=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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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고엽제 후유증 인정 받으려 1만5천장 병원기록 봤다”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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