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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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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대통령도 아는 것(!)

등록 2024-08-31 15:27 수정 2024-09-06 14:27
서울 종로구의 한 성매매 의심 업소 입구. 박준용 기자

서울 종로구의 한 성매매 의심 업소 입구. 박준용 기자


불법 성매매에 대해 고발하는 글을 쓰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반박이 있다. 크게 두 가지인데, 하나는 여성들이 자발적으로 성을 판매하는데 왜 구매자인 남성들만 비판하느냐는 주장이다. 여성들에게 ‘누가 (성매매하라고) 칼 들고 협박했냐’(누칼협)는 논리다. 다른 하나는 남성의 성적 욕구는 본능이어서 이를 해소할 대상이 있어야 하기에 성매매를 합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들은 그래야 성범죄가 줄어든다는 주장도 덧붙인다.

인신매매로 인해 강제로 성매매하는 여성도 있지만, 자발적으로 성매매를 하는 여성도 물론 있다. 그런데 그 ‘자발성’이라는 게 어디에서 나오는지 살펴야 한다. 성매매는 자신의 신체를 매개로 인격과 존엄을 침해당하는 일이기 때문에 어떤 여성도 사회구조적 압박 없이 이 산업에 뛰어들지 않는다. 개인이 쉽게 해결할 수 없는 절박한 생존 문제로 말미암아 어쩔 수 없이 내몰리는 경우가 많다. 이런 여성들에게 ‘누칼협’이라는 말을 던지는 건 개인의 고통은 스스로 해결할 일이지 사회가 개입할 일이 아니라는 주장이 될 수밖에 없다. 정말 그런가.

지난호 표지이야기에서 성매매 업소 18곳을 찾은 한겨레21 탐사팀이 직접 확인한 것처럼, 성매매는 불법이 된 지 20년이 됐는데도 합법이나 다름없을 만큼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다. 심지어 이번호 표지이야기를 보면, 성매매 여성의 출근 정보를 실시간으로 알려주고 대리 예약도 해주는 성매매 알선 플랫폼인 ‘키스방 알리미’까지 등장했다. 이렇게 남성들이 손쉽게 ‘성적 욕구를 해소’할 수 있는 환경이 확인되는데, 두 번째 주장대로 성범죄는 줄어들었는가. 유감스럽게도 그렇지 않다. 2024년 8월 현재 한국 사회에서 가장 뜨거운 쟁점이 된 불법합성물(딥페이크) 성착취 범죄가 그렇지 않은 이유를 보여주는 생생한 사례다.

한국의 남성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나 인공지능(AI) 등 디지털 기술의 진보에 발맞춰 이른바 ‘지인능욕’ 행태의 성착취 범죄를 오래도록 반복해왔다. 2016년 소라넷 사이트에서 그랬고, 2017년 텀블러와 2018년 트위터에서 그랬으며, 2019년에는 텔레그램에 ‘엔(n)번방’을 만들어서 그랬다. 무엇보다 불법합성물 성착취 범죄는 학교나 직장, 군부대 등 일상의 공간에서 마주하는 가족과 친구, 동료 등을 성적으로 대상화하면서 이들의 인격과 존엄을 파괴하는 행위다. 그러니 이 범죄는 곧 인간관계의 기반이 되는 사회적 신뢰를 붕괴시키는 행태이기도 하다.

성범죄의 기반이 되는 여성에 대한 성적 대상화는 남성들의 문화가 만들어낸 사회구조적 산물이다. 원하면 손쉽게 성매매를 할 수 있고, 남성들이 모여 있는 어느 커뮤니티(온·오프라인을 막론하고)에 가든 손쉽게 성매매 후기를 듣거나 읽을 수 있고 심지어 성매매를 권유받기도 하며, 성적 욕구는 본능적이라는 명제로 어떤 행위도 정당화할 수 있다고 여기는 문화가 그것이다. 그러니 불법합성물 성착취 범죄는 ‘일부 남성’의 책임이라고 말할 수 없고,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처럼 “위협이 과대평가되고 있다”고 말해서도 안 된다.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고 선언했던 대통령마저 불법합성물 성착취 범죄의 심각성에 대해 말하고 있지 않은가. 그걸 이제야 알았나, 싶긴 하지만.

이재훈 편집장 nang@hani.co.kr

 

*‘만리재에서’는 편집장이 쓰는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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