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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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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투리 설

등록 2024-02-08 15:12 수정 2024-02-09 16:13
걸죽한 경상도 사투리가 쏟아지는 드라마 <모래에도 꽃이 핀다>. ENA 제공

걸죽한 경상도 사투리가 쏟아지는 드라마 <모래에도 꽃이 핀다>. ENA 제공


옛날 고등학교 1학년 교실. 학급회의 시간에 모여서 연극 프로그램을 짜고 있었습니다. 누군가의 제청으로 연극 등장인물 중 하나로 ‘칠덕이’가 추가됐습니다. ‘칠덕이’는 당시 드라마에 나오던 어리숙한 인물로 청소년 사이에 인기몰이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학우 한 명이 아까부터 이렇게 외쳤습니다. “칠덕이 아니라 칠득이라니깐!” 그 말을 알아듣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으’와 ‘어’를 구분하지 못해, 칠득이를 칠득이로 부르지 못하는 서부경남 태생의 한계였습니다. 그나마 알아듣지 못하는 이가 다수(한 명 빼고 다)라는 것에 위안이 됐습니다.

고향을 탈출한 뒤 사투리를 떨구려 노력했지만 성공적이진 못했습니다. 자신이 얼마나 어와 으를 구분해 발음하는지는 생각도 안 하고, 오랜만에 내려가서 탄 버스간은 너무 시끄러워서 ‘동네 챙피’했습니다. “나, ‘요’자 하는 사람이야” 하는 생각으로 ‘이걸로 주세요’의 끝을 올렸습니다. 서울 사람으로 알아준다면 고맙겠는데, 서울 사람만 경상도 사람임을 알아봐줬습니다. 서울에서 택시를 탄 뒤 “남대문요” 하고 한마디 했는데 택시기사가 “경상도에서 오셨나봐요”라고 했습니다.

이제는 가족도 모두 다른 곳으로 떠나고, 왕래하는 가까운 친척도 없어 고향에 가도 모텔방에서 자는 신세입니다. 고향 지역어를 다룬 ‘사투리사전’을 펼쳐봤습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마르셀이 마들렌을 베어먹었을 때처럼, 단어를 발음하자 옛날 기억이 생생하게 떠올랐습니다. ‘뒤벼리’(지명)라고 하자 강을 따라 난 길이 떠오르고, ‘새벼리’(지명)라고 하자 소풍 가던 날 아침의 공기가 느껴집니다. 물론 세월의 각색이 한몫합니다.

떠올리기 싫은 기억도 따라옵니다. 여성차별적 지역어가 거리낌 없이 사용되고, 권위적인 위압감도 함께합니다. 아마 경상도말로 교과서가 쓰인다면 모음 체계 자체가 바뀌어야 할 겁니다. 그런 모든 문제의식 가운데 살려야 할 사투리 중심으로 표지이야기를 꾸몄습니다. 특히 한국어의 한계를 좁히려 안달이 난 듯한 국어사전의 편협함이 넓어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손고운 기자가 만난 곽충구 교수가 전하는 사투리 채록을 위해 사람을 선정하는 기준이 인상적입니다. “마을 토박이이면서, 교육을 너무 많이 받지 않았고, 발음 때문에 치아 건강도 좋아야 하고, 외지 경험이 없어야 한다.” 비슷하게 류석우 기자가 만난 이명재씨는 “보통 지역말을 조사하러 배운 사람을 찾아가지 않아요. 정말 어렵게 이 땅을 지키면서 살아온 사람들의 언어를 듣고 기록하는 거예요. 문화적·경제적·사회적으로 소외된 분을 많이 만나게 되고 그들의 언어와 문화를 만나게 돼요”라고 말합니다. 그들을 기억하기 위해서 사투리를 살려야 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임경석의 역사극장이 이번 회로 100번째를 맞이했습니다. <한겨레21>에서는 숫자를 적어 표시하지 않아서 모르고 지나칠 뻔했는데, ‘기록자’인 역사학자의 습관 때문에 알게 됐습니다. 100번의 마감, 고생 많으셨습니다. 200번도 만났으면 합니다.

더불어 이번호는 1500호입니다. 1년에 50호를 더하기 때문에, 창간일에 50씩 맞게 들어가는데, 올해는 창간일 3월16일보다 한 달이 일찍 왔습니다. 양력과 음력을 맞추기 위해 음력에 윤달을 넣는 것처럼, 세월이 깊었습니다. 30년입니다. 알려드린 대로 30주년 기념호를 위해 명절마다 찾아가던 퀴즈큰잔치를 미뤘습니다. 사투리 만끽하는 설 되기를 바랍니다.

구둘래 편집장 anyone@hani.co.kr

 

*‘만리재에서’는 편집장이 쓰는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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