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뇌가 기억하지 못하는 과거를 나의 휴대폰은 알려준다. 2023년 1월13일 우리 가족은 서울의 한 식당에서 조카들의 생일을 축하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누구보다 큰 목소리로 “생일 축하합니다” 노래를 불렀다. 가장 씩씩한 목소리의 어머니가 이날로부터 불과 20일도 되지 않은 날들만 살리라고 누구도 생각지 못했다. 2024년 1월13일 구글 포토는 이날의 사진과 영상을 ‘1년 전 그날의 추억’으로 편집해 보여준다.
어머니 생전에 농담 삼아 “우리 집에 사는 독거노인”이라고 불렀다. ‘따로 또 같이’ 산다고 생각했는데, 코로나19 유행으로 재택근무를 하면서 달라졌다. 난생처음 어머니와 동네 산책을 다니고, 봄이면 가까운 공원에 꽃을 보러 갔다. 10여 년 전부터 미뤄뒀던 일도 했다. 어머니와 같이 시설 좋은 병원에 건강검진 받으러 갔다. 단둘이 호텔 뷔페에서 식사도 했다. 그렇게 어머니의 버킷리스트를 채우듯 2022년 연말을 맞았다. 재택근무 기간에 어머니는 점심엔 샐러드, 저녁엔 한식을 차려주셨다. 오십 줄 아들은 “내 인생에서 가장 잘 먹고 지내는 때”라고 말했다. 평생 자신이 음식을 잘 못한다고 생각해온 어머니는 돌아가시기 전날 “이제 조금 음식이 되는 것 같다”고 하셨다. ‘공무도하가’ 같은 이별을 하고, 새삼 ‘이상한 1년’이었음을 깨닫는다.
이별을 모른다고 생각하진 않았는데, 진정한 의미의 상실을 모르고 살았음을 깨닫는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죽거나 맞는 장면을 도저히 못 본다는 사람들의 마음을 짐작해도 정말 알지는 못했던 것 같다. 이젠 정말로 못 보는 장면이나 이야기가 생겨버렸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3일간 딸에게 돌아온다는 영화 <3일의 휴가>는 영원히 보지 못할 것이고, 누군가 사고를 당해 심폐소생술을 받는 장면도 보지 못한다. 거리에선 내가 노인과 살던 사람이었음을 깨닫는다. 저 멀리 어머니 같은 어르신이 보이면 문득 눈물이 고인다. 눈을 떼지 못하고 다가가 손잡고 싶다.
팔순의 어머니는 오십의 아들 곁에 그렇게 머문다. 50년을 소리 없이 내 인생에 장단을 맞춰주고, 내 여행의 목격자가 되어준 이가 없으니 인생이 허언증 같아져버렸다. 내 유년을 기억하는 유일한 목격자도 사라져버렸다.
독거노인과 따로 또 같이 산다고 생각했지만, 진정한 의미의 혼자인 정적을 모르고 살았다. 늦은 밤 작은 소리에도 소스라치고, 잠자리에서 갑자기 엄습하는 고립감에 심호흡한다. 이런 시간을 앞으로 20년, 30년이면 견딜 수 있을까. 불안이 닥치면 일어나 거실 청소라도 한다. 몸을 움직여야 불안이 간신히 수습된다. 어쩌면 엄마가 떠난 그날을 20년 동안 살지도 모른다. 비로소 ‘독거’도 뼈저리게 무섭다. 부양의 의무가 사라진 자리가 너무 허무해서 앞으로는 무엇을 위해 사나 막막하다.
동생, 조카들과 어머니께 새해 인사를 드리러 갔다. 추모공원에서 가족들 소식을 전하는데 눈물이 흐르지 않았다. 이렇게 슬픔의 시간표는 매정하다. 벌써 1년, 시간은 산 자의 편이라 눈물이 요동칠 힘을 잃어가고 있다. 미안하고 미안하다. 마지막 순간 곁에 있어주지 못해 너무나 미안하다. 아직도 늦은 마감을 마치고 돌아오는 깊은 밤이면 어둠 속에서 흐느낀다. 어머니와 60년을 함께 살지 못해 원통하다. 오늘도 휴대폰이 알려주는 추억 속에서 어머니가 경정공원의 화사한 벚꽃처럼 웃고 있다. 살아라, 살아라 하신다. 이미자를 너무도 좋아한 동백 아가씨 우리 엄마.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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