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의 한 신도시 중학교에 근무하던 ㄱ교사의 삶은, 2022년 10월부터 완전히 바뀌었다. 담임을 맡은 반의 한 학생이 한부모가정 친구를 향해 비하 발언을 하고 특정 친구를 따돌려서 훈육했는데, 이에 반감을 품은 가해 학생과 학부모가 교사를 아동학대로 신고했기 때문이다. 학생과 학부모는 녹음기를 준비해 훈육 과정에서 특정 단어가 나오도록 유도한 뒤, 그 단어로 아동학대 신고를 했다. 2023년 8월9일 ‘무혐의’로 재판 절차가 끝나기까지 1년 가까이 고통받은 그는 극단선택을 시도하기까지 했으나 구조대원의 도움으로 살아날 수 있었다. 그는 “한순간에 범죄자가 되고 인생이 무너질까 너무 두려웠다. 교사에겐 학교폭력을 일으킨 학생을 훈육할 자격이 없으니 ‘앞으론 흐린 눈으로 살자, 앵무새처럼 수업만 하자’ 같은 다짐을 했다”고 당시에 대해 설명했다.
2023년 7월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의 교사가 숨진 사건 이후, 대한민국이 시끄러웠다. 전국 교사들은 대규모 집회를 여러 차례 열어 교권 보호 대책을 마련하도록 촉구했고, 9월 ‘교권보호 4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학교 현장에서 체감할 만한 변화는 있었을까? 8월 <한겨레21>과 인터뷰했던 ㄱ교사에게 12월13일 다시 연락해 현 상황에 대해 물었다.
—학부모 보복이라든지 개인적 문제가 없는 상황인가.
“없었다. 현재는 잘 지내고 있다.”
—서이초 사건 이후 교권보호 4법이 통과됐고, 분리지도(특정 학생이 수업을 방해해 다른 학생의 학습권을 침해할 경우, 교실 내 다른 좌석이나 교실 밖 등 특정 장소로 분리해 지도할 수 있는 조치)도 가능해졌다. 이런 조치들로 학교 현장이 변했다고 느껴지나.
“전혀. 하나도 체감이 안 된다.”
—어떤 점에서 그런가.
“특정 학생을 분리하면 ‘수치심’ 등 문제가 있기에 솔직히 그렇게 하는 선생님은 거의 없다. 교권보호 4법도 여전히 교사를 아동학대 신고로부터 지켜줄 수 없다.”
—그럼 정당한 지도에 대해서도 학부모가 교사를 아동학대로 신고하는 일이 여전히 발생하는가.
“그렇다. 최근에도 바로 옆 학교 선생님이 정당한 훈육을 하다가 아동학대 신고를 당했다. 나도 들은 건데, 오히려 학부모 사이에 방법이 공유된다더라. ‘아동학대는 신고해도 무고죄에 해당 안 된다’ 이런 요령이 있다고 한다.”
—서이초 사태로 드러난 일명 ‘진상 학부모’ 문제는 여전한가.
“이 부분은 확실히 체감하는 변화가 있었지만 바람직한 변화는 아니었다. 원래 대부분의 학부모는 자녀와 더불어 교사를 존중해준다. 그런데 서이초 사건 이후, 원래도 괜찮으셨던 학부모들이 전화하실 때 굉장히 조심스러워하는 식으로 바뀌었다. 반대로 원래 그렇지 않았던 학부모들은 여전히 이런 문제를 신경 쓰지 않는다.”
—최근 ‘교사의 정당한 생활지도와 교육활동’은 아동학대로 처벌받지 않도록 하는 법안(아동학대범죄처벌특례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하지만 교권보호 4법이 학교 문제의 근본 해법이 될 수 없듯, 아동학대법 개정도 근본적인 문제 해결책은 못 되지 않나.
“그 부분은 그래도 조금 기대하고 있다. 아동학대로 신고되고 나서의 절차는 비슷하게 겪겠지만, 법안이 교사들에게 심리적 안전장치가 돼줄 수 있다.”
—개인적으로 어떻게 해야 학교의 근본 문제가 개선될 것으로 보는가.
“학교에서 인성 교육을 강조해야 할 것 같다. 최근 교육 트렌드는 ‘자존감 높이기’라서 중학교 신입생들이 학교의 훈육을 경험하면 굉장히 당황한다. 훈육 자체가 나쁜 게 아니라 ‘나쁜 훈육’이 있는 것인데, 아이들에게 제대로 인성 교육과 훈육을 하는 학교 환경이 됐으면 좋겠다.”
손고운 기자 songon1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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