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산에 늙은 사람들이 한 명도 안 보이지예?” 지리산 대피소의 온라인 예약제가 실시된 지 얼마 안 됐을 때 산에서 만난 중년 남성분이 억울하다는 듯이 말했습니다. “노인은 산에 오지 말라는 거라고 하대요. 가끔 만나는 나이 드신 분들은 손자한테 시켜서 예약했다고 하대예.”
지리산을 아무런 준비 없이 종주할 수는 없습니다. 땀을 잘 흡수할 등산복과 등산화도 챙겨야 하지만, 잘 곳을 예약하고 끼니별로 잘 계산해 먹을 것을 싸가지고 올라가야 합니다. 잘 곳은 대피소로 한정됐고, 식당은 없습니다. 정해진 길로 걸어야 하고 정해진 시간 안에 이동해야 합니다. 산에서 군기가 도시보다 더 셉니다. 가끔 걸린 ‘우측통행’이 좀 우습긴 하지만요.
국립공원 누리집에 따르면 1998년 대피소 사전예약제를 처음 실시했는데, 초기에는 예약 없이 방문하거나 ‘노쇼’가 많았지만 2013년 입산시간 지정제를 시행하면서 정착됐다고 합니다. 앞의 중년 남성과 같은 민원이 빗발쳐서, 예약이 아이돌 콘서트 티켓 예매에 맞먹는 성수기에는 ‘추첨제’ 방식으로 바뀌기도 했습니다.
정식 명칭이 보편화하기 전 대피소는 ‘산장’이라고 불렸습니다. 산장 하면 산행의 피곤함을 푸는 편안한 공간일 것 같지만, 전혀 그런 곳이 아니기에 ‘대피소’라는 군사용어 같은 건조한 단어가 정착됐을 것입니다. 대피소에 가본 사람은 알겠지만, 머리를 감을 수도 이를 닦을 수도 없습니다. 슬금슬금 샴푸를 쓰는 사람들도 봤지만 원칙적으로 모든 화학약품의 사용을 금지합니다. 물 자체가 귀합니다. 벽소령 대피소의 경우 밑으로 200m는 내려가야 물을 받을 수 있고 그마저도 쫄쫄거립니다. 화장실도 미생물을 이용해 자연발효를 하는 터라 파리, 모기가 들끓고 냄새도 심합니다. 대피소에 든 사람들이 ‘파는 물품이 너무 적다’ ‘왜 가족방이 없냐’ 등 민원을 제기한다지만 지리산은 ‘최소한’으로 지내는 곳입니다. 헐벗기 때문에 삼가는 마음이 더합니다.
지리산에 간 지는 여러 해 전이지만, 그때도 이미 지리산의 접근 방법에서 여러 이점을 봤습니다. 수배 시절 엄마보다 더 그리워 지리산을 갔던 정지아 작가는 1990년 무렵 노고단까지 화엄사 뒷길로 9㎞를 하염없이 걸어가야 했답니다.(<마시지 않을 수 없는 밤이니까요>) 그 뒤 노고단까지 도로가 난 것은 1999년입니다.(당시 백지연 아나운서가 ‘여기는 노고단’이라는 광고를 했습니다.)
1489호 표지이야기 ‘2023 지리산의 마음’은 지리산의 덕을 여러 겹으로 담았습니다. 학살의 비극, 생명사상, 공동체, 다양성 등. 지리산에 가장 어울리지 않는 것이 ‘개발’입니다. 케이블카 설치가 여러 곳에 예정됐고, 골프장도 짓는다고 합니다. 정중앙의 벽소령 밑으로는 도로를 낸다고 합니다. 개발론자들은 케이블카가 장애인·노인에게 ‘평등’한 접근권을 선사한다고 합니다.(그렇게 장애인·노인을 생각한다면 도시 시설의 접근권을 높여야 합니다.) 하지만 지리산은 인간이 최소한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백무동의 운무, 세석평전의 철쭉, 장터목의 바람을 맞으면 다 느껴지지만, 그냥 사람은 이곳에서 객이기 때문입니다.
구둘래 편집장 anyone@hani.co.kr
*만리재에서는 편집장이 쓰는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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