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42년 <매일신보> 빈대약 광고. 문화곤충연구
병원에 가기로 결심한 것은 참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상처는 허벅지 뒤쪽에 나란히 있었습니다. 목을 한껏 젖혀도 상처는 보이지 않을 정도의 크기였지만, 가려움증은 확실했습니다. 만져지는 상처 위로 더는 긁을 수 없을 정도로 고름이 맺혔지만 가려웠습니다. 식당 의자에 앉자마자 상처의 원인을 알 수 있었습니다. 상처의 흐름은 의자 끄트머리에 정확히 맞춰졌습니다. 의자에 숨어 있다 나온 ‘무언가’가 한 짓이었습니다. 최대 8명까지 거주할 수 있는 미국의 홈스테이, 어디에서 뭐가 나타나도 이상하지 않은 집이었습니다.
‘유학생 보험’을 들긴 했지만, 병원은 갈 일이 있어도 가지 않는 게 불문율이었습니다. 의사는 그 자리에서 신기한 듯 상처를 보고, 구글링해본 뒤 “베드버그네요”라고 말했습니다. 약을 발라주는 것도 아니었지만 청구액은 100달러 정도였습니다. ‘베드버그’라는 진단명의 대가였습니다. 가로로 나란한 상처가 ‘특징적’으로 베드버그를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빈대는 혈관을 잘 못 찾아서 이동하며 물기 때문에 상처가 나란히 난다고 합니다.
이후 베드버그는 일본인 유학생의 방에 출몰했습니다. 그 유학생은 침대의 ‘베드버그’ 사진을 찍고, 집주인에게 환불을 요구한 뒤 집을 나갔습니다. 그전에 뜨거운 물로 빨래하기 위해, 모든 의류와 이불을 들고 다운타운의 빨래방을 찾아갔습니다. 베드버그가 우리말로 ‘빈대’라는 것을 이번에 알았습니다. 말만 들었지 실체는 알 수 없던 빈대를 머나먼 타국에서 만난 것입니다. 그러니 지금 빈대 출몰 사태가 무섭습니다.
이번호 ‘빈대’ 글을 기고한 신이현 한국방역협회 기술연구소 소장이 보낸 자료 사진에는 빈대를 죽이는 약 광고 사진이 있습니다. 글 내용이 재밌어서 옮겨봅니다. “사람은 침식이 제일이다. 잠 못 자면 입맛도 업(없)고 병난다. 여름에 잠 못 자게 하는 빈대 잘 죽이기로 고명한 신성당 빈대약은 하로밤(하룻밤)에 알, 색기(새끼)까지 몰사 전멸시킨다. 한 마리가 약을 뭇처(묻혀) 집으로 가면 다른 빈대까지 몰사 전멸한다. 참 귀신가치(같이) 신기하다. 하여간 써보오. (…) 빈대약이 다른 대(데)는 업(없)다. 잇서(있어)도 잘 안 죽는다 한다. 그런대(데) 이것만은 정말 신효하다. 절대 보증하오.” 과장과 비방이 귀엽게 버무려졌고, 광고 문구 위에는 ‘빈대’와는 전혀 상관없는 ‘서양 여성’의 얼굴이 들어가 있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변한 건 별로 없는 듯합니다.
더 과거로 돌아가도 사람 사는 게 비슷합니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운다’는 속담이 있는데, 역사 속에서는 빈대로 들끓는 절을 태우고 스님들이 떠났다는 이야기가 ‘폐사지’(없어진 절)에는 많이 전승돼 내려온다고 합니다. 그런데 빈대 때문에 절을 태운 이유는 ‘종이 부역’을 못 견뎌 스님이 절을 떠났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닥나무로 종이를 만드는 일에 불경을 만들어본 스님이 전문가였기에, 조선시대 종이산업의 중심에 사찰이 있다는 글을 본 적이 있습니다.(‘스님, 닥종이 좀 만들어주십시오’) 스님도 과로는 못 견딘 것입니다.
빈대로부터 시작한 ‘민생’ 이야기였습니다. 신이현 소장에 따르면 빈대를 집에 들이지 않는 게 최선이고, 의심되는 옷과 가방은 비닐로 싼 뒤 가정용 건조기 60℃ 온도에서 2시간 돌리라고 합니다. 해충이 돌아오는 것도 ‘그것’ 때문이라고 합니다. 항온동물과 달리 생체리듬이 외부에 자극되는 변온동물에게 가장 중요한 게 온도라고 하지요. 11월 어느 하룻밤에 모기 10마리를 잡은 날, 문득 앞으로 살날이 어떠할지 무서워집니다. 기후위기 대응이 ‘민생’일 터인데. ‘민생’을 강조하는 정부는 일회용 컵 사용 규제마저 되돌렸으니….
구둘래 편집장 anyone@hani.co.kr
*만리재에서는 편집장이 쓰는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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