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마 안부를 묻지 못했다. 수년 전 발달장애 아이를 돌보는 경험을 기록하기 위해 의사, 치료사, 부모 등 다양한 집단의 사람들을 인터뷰하러 다녔다. 그중 내 아이 또래를 키우는 몇몇 엄마와는 한두 번 만나고도 꽤 친해져서 가끔 연락을 주고받았다. 그러던 차에 발달장애 아이를 키우는 유명 웹툰 작가와 특수교육 교사의 갈등이 보도됐다. 이 사건에서 공론화해야 할 부분이 분명히 있긴 했지만, 문제는 자폐성장애 아이의 행동을 곧바로 학교폭력이나 성추행 등으로 해석하는 뉴스가 파다했다는 점이다. 다수의 언론 보도에서 자폐성장애인은 통제 불가능한 위험한 존재로 그려졌고, 발달장애 아이를 비장애 아이와 같은 공간에서 교육하는 것의 문제 제기로까지 이어졌다.
쏟아지는 뉴스를 보며 내가 만났던 엄마들이 얼마나 화날까보다는 얼마나 막막할까 싶었다. 장애 혐오는 차치하고라도, 발달장애에 대한 예상보다 훨씬 큰 무지가 드러난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 발달장애에 대한 이해가 어느 정도 공유됐다면, 이번처럼 악의적인 보도나 여론은 쉽게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이른바 ‘문제행동’은 발달장애를 지닌 사람이 자기 의사를 적절히 표현할 수 없거나 자기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때 보일 수 있는 행동이다. 흔히 ‘돌발행동’ ‘과잉행동’이라 하지만 이는 비장애인의 ‘직관’을 반영하는 용어들이다. 장애를 다루는 특수교육이나 심리학 분야, 각종 치료·훈련 현장에서는 ‘도전적 행동’이나 ‘어려운 행동’이라 한다. 여기서 ‘도전적’ ‘어려운’이란 표현은 장애인 당사자를 둘러싼 사람들이 그 행동의 원인과 의미를 파악하고 그에 맞춰 대응하는 게 쉽지 않고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함을 암시한다.
실제 발달장애 아이들이 다니는 치료실은 그 시행착오가 이뤄지는 공간이다. 치료실에는 아동 발달에 도움이 될 만한, 여느 아이라면 좋아할 만한 장난감과 교구가 마련돼 있다. 그러나 치료실을 찾은 ‘그’ 아이가 언제 치료사에게 마음을 열지, 어떤 장난감에 손을 뻗을지는 알 수 없으며, 여러 번의 시도와 격려가 필요하다. ‘누구나’ 좋아할 것만 같은 칭찬이나 포옹 대신, ‘그’ 아이에게 좋은 보상이 될 수 있는 물건이나 음식, 활동을 찾기 위해 세심한 관찰과 계획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발달장애 아이를 둔 엄마들은 내게 치료실에 가는 가장 큰 이유가 아이의 마음을 오해하지 않는 사람을 만나게 해주고 싶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갑자기 울거나 소리 지르는 아이의 행동을 곧바로 거부나 공격으로 평가해버리지 않고, 그러한 반응의 원인을 이해하고 아이와 긍정적 관계를 맺기 위해 계속 노력하는 사람을 치료실 바깥에선 만나기 어렵다는 것이다. 사람의 행동과 마음에 대한 직관적 해석이 멈춰진 공간이라야, 발달장애 아이는 제각각의 방식으로 소통을 시작하고 ‘어렵지 않은’ 행동을 배우고 연습하며 사회 구성원으로 자랄 수 있다.
자신과는 ‘다른’ 아이와 관계 맺기 위해 본능적인 반응 너머의 상호작용을 끊임없이 시도하는 치료사들과 엄마들이 있다. 이들 외에 더 많은 사람이 발달장애를 지닌 사람에게 한 박자 늦게 반응할 수 있으려면 어떤 준비와 노력이 필요할까, 얼마나 오래 걸릴까, 아득해지는 나날이다.
장하원 과학기술학 연구자
한겨레 인기기사
한덕수 권한대행 탄핵정국을 ‘농단’하다
[단독] “국정원, 계엄 한달 전 백령도서 ‘북 오물 풍선’ 수차례 격추”
얼큰하게 취한 용산 결의…‘나라를 절단 내자’ [그림판]
여고생 성탄절 밤 흉기에 찔려 사망…10대 ‘무차별 범행’
[단독] 권성동 “지역구서 고개 숙이지 마…얼굴 두껍게 다니자”
끝이 아니다, ‘한’이 남았다 [그림판]
‘아이유는 간첩’ 극우 유튜버들 12·3 이후 가짜뉴스·음모론 더 기승
받는 사람 : 대통령님♥…성탄카드 500장의 대반전
육사 등 없애고 국방부 산하 사관학교로 단일화해야 [왜냐면]
‘김예지’들이 온다 [똑똑! 한국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