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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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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1시간만이라도…초능력이 생긴다면 말이야

등록 2023-11-04 09:58 수정 2023-11-10 14:24

초인적인 힘,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있거나 시간을 되돌리는 능력, 순간이동, 일반인 수준을 뛰어넘는 시력과 청력 등 대중문화에서 볼 수 있는 초능력의 종류는 다양합니다. 최근 디즈니플러스 드라마 <무빙>, 제이티비시(JTBC) <힘쎈 여자 강남순>에선 초능력자들이 주인공입니다. 실재하진 않지만 초능력은 친숙한 소재입니다.

‘내게 만약 초능력이 생긴다면?’이라는 생각을 저도 해본 적이 있습니다. 연령대마다 달랐습니다. 10대와 20대 때는 시간을 되돌리거나 멈추는 능력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한두 시간을 되돌리거나 멈추게 한다면 시험에서 더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을 테니까요. 그 시기엔 입시와 취업이 주요 과제라 든 생각이었습니다.

최근에는 다른 능력을 상상했습니다. 타인이 겪는 심리·정서적 고통을 다른 사람이 똑같이 느끼도록 하는 초능력이 생겼으면 합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고통에 빠진 이를 보기 어려워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공감 능력이 너무 발달해서, 혹은 공감 능력을 발휘하지 않아서일 수 있겠습니다. 이유야 어찌 됐건 주변의 외면과 거리두기, 당사자를 비난하는 행위는 고통에 빠진 이에게 또 다른 고통을 안깁니다. 지금 한국 사회의 일부 구성원이 10·29 이태원 참사를 대하는 태도이기도 합니다.

참사가 일어난 시각에 현장에 있었던 김초롱씨는 인터뷰에서 ‘이해’라는 단어를 여러 번 강조했습니다. 참사 현장에 있었기에 느끼는 아픔도 컸지만, 그 아픔을 이해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주변과 사회의 반응도 그에게 고통을 안겼다고 했습니다. 어쩌면 참사 당사자들의 치유와 회복을 방해하는 건 사회일지도 모릅니다.

남은 사람이 느끼는 괴로움을 단 1시간이라도 고스란히 느끼게 되어, 책임을 회피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적극적으로 2차 가해를 하는 이들이 그 슬픔과 괴로움을 이해할 수 있다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요. 터무니없는 상상이라는 걸 알면서도 머리에서 지우기 어려웠습니다.

초롱씨는 300쪽이 넘는 책 <제가 참사 생존자인가요>(아몬드 펴냄)를 “개인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고통에 관한 내용”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누구든지 재난을 겪을 수 있다”고요. 사회적 참사든, 다른 개인적 비극이든, 살면서 어떤 방식으로든 큰 고통과 절망에 빠질 수밖에 없을 텐데 그때 자신의 책이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됐으면 한다고 했습니다.

어쩌면 어떤 초능력이 생기면 좋을지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것만큼이나, 자신에겐 어떤 종류의 비극과 재난도 닥치지 않으리라 여기는 것이야말로 현실성 없는 생각이 아닐까요. 인터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불현듯 그런 의문이 들었습니다.

서혜미 기자 h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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