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사람은 말이 없어서, 산업재해로 숨진 노동자의 가족들은 억장이 무너지는 소리를 종종 들어야만 했다. 죽은 사람이 지나치게 일 욕심이 많아서 사고가 났다거나, 부주의로 목숨을 잃었다는 어이없는 이야기였다. 2021년 세상을 떠난 배전공 김다운씨나 2018년 충남 태안화력발전소 하청노동자로 일하다 숨진 김용균씨의 가족도 그랬다. 매년 800여 명. 산재 사망은 하루 2명꼴로 일어난다. <오늘도 2명이 퇴근하지 못했다>(한겨레출판 펴냄)는 왜 이렇게 많은 사람이 일터에서 죽으며, 왜 이렇게 많은 사람이 그 문제를 알지 못하는지 파헤친다.
<한겨레> 기자로 노동 분야를 담당하며 매일 벌어지는 재난 현장을 취재해온 저자 신다은은 ‘선진국’ 구호에 가려진 일터의 위험한 시스템과 멀쩡하게 출근했다 돌아오지 못한 수많은 죽음을 추적한다. 산재 사망의 구조적 원인을 각 분야로 나눠 설명하고 산재 사고 사망자의 조사자료가 외부로 잘 알려지지 않는 이유도 살핀다.
2021년 4월22일, 경기도 평택항에서 하역노동을 하다 300㎏ 무게 컨테이너 날개에 깔려 숨진 이선호씨 이야기로 책은 시작한다. 산업안전보건법을 보면 현장에 안전관리자와 지게차 신호수가 있어야 했지만 현장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의 부친은 평택항에서 작업반장으로 일했다. 현장을 잘 아는 아버지는 회사를 향해 “니들 (안전관리자 일당) 10만원 아낀다고 우리 아 죽었다”고 절규했다. 산업안전보건법, 중대재해처벌법도 필요하지만 ‘재해현장 보존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그는 말했다. 산재 사고 현장 훼손은 수시로 벌어졌다.
이선호씨의 사건 판결문에는 ‘관리 감독 의무를 해태했다’는 말이 10번이나 등장했다. 피고인들은 모두 집행유예를 받았다. 아버지의 노력으로 사건 진상이 그나마 밝혀진 경우인데도 그랬다. ‘구조’가 원인이라며 책임자 처벌이 불충분할 때 경각심도 잃게 된다. 안전을 배제한 마구잡이 지시, 복잡한 고용형태, 이해하기 힘든 사고 과정에다 시민들의 무관심까지 겹쳐 산재 사고는 외면받는다. 이렇게 ‘구조화된 위험’은 개선되기는커녕 나쁜 상황만 축적한다.
산재 사고는 다음 다섯 가지 경우에 증폭된다. ①회사의 안전수칙이 효율적 업무방식과 충돌할 때 ②기업 간 소통이 부족할 때 ③안전에 투자할 돈과 시간이 부족할 때 ④안전에 관한 설명이 부족할 때 ⑤안전에 대한 역량과 이해가 부족할 때다. 기업이 생산효율에 목숨 걸고 안전을 경영의 중심에 두지 않을 때 노동자는 ‘자연스럽게’ 죽는다고 저자는 말한다. 책을 읽다보면 산재는 일부러 하청노동자를 위험한 작업장으로 내몰아서 ‘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산업구조 맨 아래에 있는 노동자부터 차곡차곡 ‘죽게 내버려두는’ 신자유주의 시스템이 만들었음을 알게 된다. 더 이상의 죽음을 막으려면 위험한 산업현장을 공개적으로 드러내고, 경고하고, 거부해야 한다.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원칙과 달리 움직이는 ‘현장’의 진실을 드러낸 것이다. 위험한 현장의 진실을 경고하며 개선을 요구할 때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잃거나 무시당하기 일쑤다. 사망·부상 재해 건수를 0으로 만드는 ‘무재해운동’은 오히려 산재를 은폐하는 구조로 이어졌다. 이 어이없는 운동은 2018년 정부가 나서서 공식적으로 폐지했지만 산재 위험을 감추는 분위기는 현장의 잔재로 남았다.
더군다나 기업별 재해자 수 등 산재 관련 정보는 점점 접근하기 어려워지고 있다. 정부가 법인 명예훼손 등을 이유로 자료 제출을 기피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영국, 프랑스 등은 형이 확정된 기업의 과거 사고 이력과 확정된 형의 내용을 누리집에 공개한다. 산재 자료를 공개하지 않고 사회적 소통도 부족한 현실은 노동자를 위험한 현장으로 바짝 다가가게 한다.
한 사람의 죽음은 한 세계가 사라지는 것이다. 산재 희생자와 가족의 삭제된 세계를 복원하는 한편, 구조화된 재난의 진실을 밝히는 논증이 맞물렸기에 책은 공감과 이해를 더한다. 복잡한 산재에 대한 총체적이고 분석적인 단 한 권의 책을 찾는다면 적절한 선택일 것이다. 어느 이름 없는 노동자의 죽음을 지나치지 않으려는 시민 연대의 첫걸음으로도 손색없다.
이유진 선임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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