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표현도 ‘표현의 자유’에 해당할까? 혐오표현 찬반 논쟁에서 중요한 참조가 되는 책이 번역돼 나왔다. 미국시민자유연맹 회장을 하고 미니애폴리스와 뉴욕에서 변호사로 일하다가 지금은 뉴욕 로스쿨 교수인 네이딘 스트로슨의 <혐오>(아르테 펴냄)다. 옮긴이는 혐오표현을 지속적으로 연구한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와 주디스 버틀러의 <혐오발언> 등 관련 자료를 꾸준히 번역·연구한 유민석(서울시립대 철학과 박사수료)씨다. 한국어판은 홍 교수와 스트로슨 교수의 대담과 옮긴이들의 해제를 실어 원서보다 더욱 풍부한 내용을 담았다.
스트로슨은 홀로코스트(나치의 유대인 대학살) 생존자의 딸로서 혐오표현에 반대하지만, 검열만큼은 안 된다고 주장한다. 혐오표현 또한 ‘표현의 자유’에 해당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저자는 ‘혐오표현금지법’에 역기능이 많다고 설명한다. 검열은 개혁운동을 저지하는 강력한 무기였고, 권력자나 당국의 주관적 기준에 따른 집행이 불가피해 소수자 집단을 침묵시키는 데 사용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게다가 혐오적 발화자를 영웅으로 만들 우려까지 있다. 평등권 운동이야말로 표현의 자유에 기대어 성장했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인데, 자유를 존중해온 미국법 전통을 향한 자긍심이 느껴지기도 한다. 저자는 ‘탐탁지 않거나, 불온하거나, 두려움을 주는 생각’을 잠재우려 할 때 자유와 민주주의가 훼손된다고 말한다.
미국에서 혐오표현 찬반 논란이 불붙은 계기는 1977년 벌어진 ‘스코키 사건’이었다. 주민 다수가 유대인이거나 홀로코스트 생존자인 일리노이주의 작은 마을 스코키에서 신나치주의자들이 반유대인 시위를 하려고 표현의 자유를 주장했다. 법원은 표현의 자유를 규정한 수정헌법 제1조에 따라 집회 허가를 결정했다. 스트로슨은 이 결정의 즉각적인 수혜자는 나치겠지만, 궁극적 수혜자는 모든 사람이라고 옹호한다.
혐오표현금지법이 있는 독일 등 유럽에서 오히려 극우가 세를 불렸다는 점을 예로 들며 저자는 혐오표현금지법의 실효성을 문제 삼는다. 그리고 대안으로 ‘대항표현’을 제시한다. 혐오표현 사상을 반박하고, 교육 환경을 만들고, 차별 발언자의 반성 표명을 이끌어내자는 얘기다. 혐오표현금지법보다는 차별금지법이 선행돼야 한다고 저자는 말하는데, 이는 차별금지법으로 더 많은 사람이 일자리와 학습 기회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뜻밖에도 저자는 나 자신을 향한 혐오표현에 대한 면역력을 기르고, 타자를 향한 혐오표현에는 민감하게 반응하라고 심리학적 조언을 곁들인다. ‘좋은 스트레스’가 개인의 회복 탄력성을 증진한다는 얘기인데, 그 또한 미국식 자기계발서의 일화처럼 들리지만, 혐오 발화자의 권력을 해체하고 맞받아치자는 주디스 버틀러의 철학적 입장과도 연결돼 생각거리를 던진다.
이유진 선임기자 frog@hani.co.kr
멀리 오래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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