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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민 30년

등록 2023-09-28 09:24 수정 2023-10-01 21:42
일러스트레이션 슬로우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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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오십에 ‘평사원’인 것은 틀림없이 경기도민이라서다. 일찍이 20여 년 전 일본이 한국을 아직 앞서던 시대, 어느 신문의 국제면에서 준엄한 ‘경고’를 읽었다. ‘출퇴근 시간이 길수록 승진이 느려진다.’ 서울시민은 그냥 지나쳤을 기사가 아직도 뇌리에 또렷이 박혀 있다.

타이베이행 비행기 시간보다 긴 출퇴근 시간

최근 주민등록등초본이니 가족관계증명서니 하는 것을 발급할 일이 많았는데, 이 공문서는 의외로 나도 정확히 기억 못하는 내 ‘과거’를 알려준다. 내 출생신고가 늦었다든가 하는 것인데, 내가 경기도로 이사한 아니 전입한 날짜가 정확히 나와 있다. 1994년 8월5일 우리 가족은 서울특별시 사당동을 떠나 경기도 과천을 지나 인덕원을 거쳐 안양시 동안구 평촌동으로 국도를 타고 ‘하방’했다. 주택 100만 호 공급이란 정부 시책에 부응해 1기 신도시 평촌의 세입자가 된 것이다. 올해로 서울로 출퇴근(통학)하는 경기도민 생활 30년째를 맞이했다.

그동안 내가 읽어야 할 책은 모두 지하철 4호선에서 읽었고, 내가 봐야 할 뉴스의 8할은 5호선에서 봤다.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를 보면서 지하철 풍경이 전혀 낯설지 않았다. 그 시절, 지하철에서 잠깐 한눈팔면 바로 <나의 해방일지> 주인공 가족이 내리는 그 역까지 갔다. 그렇게 30년을 ‘추앙해주는’ 애인 하나 없이 꾸역꾸역 왕복 3시간 출퇴근을 반복했다. 1기 신도시에서 살다가 2기 신도시로 이사했고, 3기 신도시에 살 꿈을 꾸니 어느새 20대 대학생은 50대 회사원이 됐다. 지하철 4호선에서 과로사하지 않은 것으로 감사한 일일까. 가끔 혼자서 이런 생각도 했다. ‘대만 타이베이까지 비행기로 2시간30분 걸리는데 매일 출퇴근 시간이 더 길어.’

생로병사도 희로애락도 출퇴근길과 무관하지 않았다. ‘요즘 왜 버스만 타면 졸고, 속이 뒤틀리고, 내리면 비틀거리지?’ 40대 후반 한동안 어디가 아픈가 했는데, 어느 저녁 집 앞 정류장에 내려 비틀거리다 깨달았다. 나는 매일 출퇴근길에서 멀미했던 것이다. 그날 적막한 길을 걷다가 ‘아, 날마다 유배를 가네’ 탄식했다. 내 친구들은 내가 퇴근길에 멀어진 그곳에 있었다. 날마다 어머니만 계시는 경기도로 고립을 반복하고 있었다. 역시 인생은 방향이 중요해, 진리였다.

경기도 1기 신도시의 세입자 생활을 벗어나 2기 신도시의 유주택자가 되자 서울과 경기도 경계엔 거대한 성벽이 쳐졌다. 2010년대 후반과 2020년대 초반에 걸쳐 수도권 특히 서울의 집값이 폭등하면서 ‘한번 경기도민은 영원한 경기도민’인 눈에 보이지 않는, 그러나 넘지 못할 장벽이 생겼다. 서울은 정말로 ‘특별시’가 됐다.

좌파도 우파도 아닌 ‘경기도민’ 정체성

그렇게 경기도민은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정체성이 됐다. 아시다시피 한 인간 안에서 다양한 정체성이 경쟁한다. 내게도 혈기 왕성한 시절 성별 정체성, 성적 지향, 정치 성향 등등 다양한 정체성이 있었으나 마지막 남은 정체성은 뜻밖에 경기도민이 되고 있다. 남자도 여자도 아닌 좌파도 우파도 아닌 오직 장거리 출퇴근으로 몸이 시들어가는 인생이 됐다. 주말이면 ‘이태원 밤구두’가 되던 시절은 멀어지고 주말이면 동네에 방콕하는 때가 왔다. 그렇게 서서히 경기도에 갇혔다.

아니 어쩌면 모르지, 살림살이가 나아지고 운이 좋으면 혹시 은퇴하고 서울에 살 수 있을지도 몰라, ‘짱구’를 굴린다. 비로소 출퇴근하지 않아도 되는 때 회사와 가까워지는 아이러니라니, 이것이 우리가 사는 자본주의 아닌가. 왜 경기도에 살았냐고 묻거든 그냥 웃지요.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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