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지(45·가명)씨를 만난 건 1년여 전이었다. 제1420호 표지이야기 ‘치솟는 물가 깊어진 빈곤’ 취재를 위해 빈곤사회연대와 기초생활수급 25가구 가계부를 분석하고 인터뷰할 때였다. 그는 인터뷰이 가운데 한 명이었다. 정씨는 노년에 장애가 생긴 어머니, 청소년인 두 아이를 기초생활수급비를 받아 돌보고 있었다. 정씨의 가계부일기는 유난히 긍정적이었다. ‘노력하면서 기다리면 기회는 온다.’ ‘꿈을 포기하지 말자.’ ‘간호조무사 공부를 하는 건 안정적 삶을 살기 위한 부분이다.’ <한겨레21>은 1년이 지난 지금 그에게 안부를 물었다.
1년이 지나 다시 이야기를 듣고 싶어 연락드렸다. “6월에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어지럽다고 하셔서 영양제를 놔드리려고 병원에 갔는데 코로나19였고 폐렴이 왔다. 실감이 안 난다. 살아계신 것만 같다. 멍해 있다.”
어머니가 몸이 많이 안 좋아지셨던 건가. “검사했는데 어머니가 폐암도 안고 계셨더라. 작년에 파킨슨 진단을 받으시고 그 뒤 병원에 다니면서 큰 이상이 없는 줄 알았는데 폐암 4기였다.”
그는 오래전, 남편의 가정폭력을 피해 어린 두 아이를 데리고 시골집에서 도망쳐 나왔다. 대도시 지하 단칸방에 살면서 붕어빵 장사, 보험 영업, 치킨 장사 등을 했다. 그래도 삶이 나아질 수 없었던 건 신분증 사본 유출 때문이었다. 사본이 휴대전화 명의도용에 사용돼 수천만원의 빚이 쌓였다. 어디서 유출됐는지도 확인이 안 돼 통신사를 상대로 소송을 벌였지만 패소했다. 지상파 뉴스에까지 나왔지만 해결된 건 없었다. 그즈음 수술받은 어머니를 돌봐야 했던 그는 일하러 나갈 수도 없었다.
본인이 열이 41도까지 올라갔을 때도 돈 때문에 응급실 안 가고, 손가락뼈 다쳤을 때도 병원에 안 가지 않았나. 이번에 어머니 병원비는 어떻게 했나. “직접적 사인은 코로나19여서 나라에서 지원받았다. 입원비 삼십몇만원은 냈다. 장례 치를 때 돈이 많이 나가니 걱정했는데, 다행히 부의금이 들어와서 그걸로 냈다.”
고1, 고3 아이들한테 한창 돈이 많이 들어가지 않나. “(학원이나 인터넷 강의는) 돈이 많이 들어가니까 아이들이 안 한다고 한다.”
재정적으론 1년 전보다 나아진 점이 있나. “더 안 좋아졌다. 내가 또 심장이 안 좋아져서. 자꾸 피곤해서 병원에 갔더니 심장판막에 문제가 생겼다고 했다. 원래 준비하던 간호조무사는 힘들 것 같다. 어머니 앞으로 체납된 건강보험비 380만원도 사망신고 끝나면 감당해야 한다고 들었다. 구청에 남은 세금도 있고, 명의도용 건 때문에 내년 5월30일까지 내 이름으로 신용거래는 못한다.”
반지하 집에 계속 살고 있나. “월세 45만원짜리 반지하 임대주택을 고른 이유는 아이들과 어머니 방이 필요해서였다. 싼 이유가 있었다. 겨울엔 너무 추워서 뽁뽁이와 비닐을 붙여도 견디기 힘들었고, 화장실 문턱이 비정상적으로 높아 어머니가 드나드실 수 없었다. 어머니가 거동이 불편하신데 화장실이 열악하니 그냥 몸을 닦아드렸다. 어머니가 ‘목욕 제대로 한번 하고 싶다’고 하시곤 했다. 화장실에 봉을 설치해주는 서비스가 주민센터에 있다고 해서 문의한 적이 있다. 몇 개월이 지났는데 아직 답이 없다. 결국 어머니는 돌아가셨다.”
답답해서 개선됐으면 하는 일이 있나. “주인집에서 수도세를 한 달에 5만∼6만원을 내라고 한다. 우리는 항상 아껴 써서 수도세가 예전 집에선 1만∼2만원 나왔다. 이 집으로 이사 왔더니 수도세가 여러 가구 합쳐서 나오는데, 우리 집이 제일 많이 쓰는 것 같다며 수치를 보여주는 것도 없이 5만∼6만원을 내라고 한다. 억울해 다른 집을 알아봤지만 이 돈으로 아이들에게 방을 줄 수 있는 집을 찾기 어려웠다.”
건강관리 잘하셔야겠다. “항상 좋게 생각하려고 노력한다. 안 그러면 내가 더 아프니까. 어머니가 살아계실 때 기도를 많이 해주셔서 내가 힘든 고비를 다 넘긴 것 같다.”
손고운 기자 songon1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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