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마디는 “몸이 이렇게 됐습니다”였다. 팔다리에 살이 빠지고 얼굴색이 어두웠다. 그날로부터 3주 동안 집에 틀어박혀 술만 마셨다고 했다. 건넬 수 있는 말이 많지 않았다. 양회동씨와 나눴던 소소한 추억과 그의 올곧은 성격에 대해 들었다. 기사에 다 적지 못하는 양회동씨와 그 가족의 시시콜콜한 일상도 그는 다 알고 있었다. 그러다 ‘그날’을 설명하는 순간에 이르러 폭발했다. 깡마른 몸에서 분노와 슬픔이 둑 터지듯 쏟아져 나왔다.
양회동씨는 2023년 5월1일 경찰의 표적수사에 반발해 분신한 전국건설노동조합 강원지부 지대장이다. 앞에 소개된 이는 양회동씨의 친한 동료이자 사고의 목격자인 강원지부 부지부장 홍성헌씨다. 고향 선배인 성헌씨와 유달리 가까웠다는 회동씨는 마지막 순간에도 그를 불러내 죽음의 대언자로 세우려 했다. <조선일보>와 <조선닷컴>은 그 관계를 완전히 다르게 해석했다. 성헌씨가 회동씨 죽음을 방조했을 수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신뢰의 관계가 착취의 관계로 뒤바뀌었다.
자살방조죄는 1년 이상 10년 이하 징역형에 처하는 중범죄다. 그러나 그만한 무게의 의혹을 뒷받침할 핵심 근거는 조선 계열의 보도엔 없었다. △CCTV 화면 속 성헌씨가 ‘말리려는 몸짓’을 보이지 않았다 △ 불이 치솟자 소화기를 찾는 대신 휴대전화를 꺼냈 다 △휴대전화를 꺼낼 시점에 경찰과 119에 들어온 신고전화가 없다 등 지엽적인 정황 취재로만 가득 채워져 있었다.
성헌씨는 현장에 도착해 상황을 알게 되자 회동씨를 계속 설득하고 말렸다고 했다. 같이 있던 와이티엔(YTN) 기자들도 동일하게 진술한다. 휴대전화를 꺼낸 것은 현장으로 달려오던 건설노조 간부들에게 알리기 위해서라고 했다. 경찰은 성헌씨가 섣불리 움직였다가는 회동씨를 자극하거나 함께 불길에 휩싸일 수 있었다며 자살방조죄로 그를 입건할 계획이 없다고 했 다 .
색안경을 끼고 보면 모든 것이 수상해 보인다. 건설노동자가 목적을 위해 동료를 죽음까지 몰아넣는 거짓말쟁이 투쟁 기계라고 간주하면 의심할 것이 차고 넘칠 테다. 그렇다면 의심을 뒷받침할 만한 핵심 근거라도 확보했어야 한다. 1991년 ‘유서 대필자’로 누명을 쓴 강기훈씨는 무죄판결을 받기 전 24년간 온갖 사회의 멸시를 받았다. 펜으로 한 번 쓴 자국은 여간해선 지워지지 않는다.
<조선일보>의 자살 방조 의혹 보도에 이어 양회동씨 유서 대필 의혹을 보도한 <월간조선>은 5월30일 “필적감정 결과 동일한 필체였다”며 사과문을 냈다. 필적감정조차 하지 않고 특정 집단을 자살 기획 집단으로 몰고 가려는 이들이 21세기에도 버젓이 있다.
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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