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소설을 읽었습니다. 권여선의 <각각의 계절>인데, 첫 번째 단편인 ‘사슴벌레식 문답’의 제목은 이런 의미가 있습니다.
같은 하숙집에 머물던 4명은 30년 전 강촌으로 1박2일 여행을 떠납니다. 그 여행에서 화자는 동행에게 낮에 있었던 일을 전해 듣습니다.
동행이 방에서 ‘무지하게 큰 벌레’가 나와 난처해하며 소리를 내는데, 주인이 지나가다가 그 소리를 들은 것입니다. 소설의 대화만 발췌하면 이렇습니다.
“방에 벌레가 많아? 약을 쳤는데.” “많진 않고요, 무지하게 큰 벌레 한 마리가 있더라고요.”
“음, 사슴벌레네. 그럴 땐 비밀봉다리 있지? 봉다리에 쌀쌀 기어들어오게 유인해서 바깥에 떨궈주면 돼.”
“아, 그런 방법이 있었네요. 그런데 방충망도 있는데 도대체 그렇게 커다란 사슴벌레가 어디로 들어오는 거예요?”
“어디로든 들어와.”
주인이 내뱉고 나간 이 일곱 글자는 화자와 동행의 끝없는 말장난이 됩니다. 응용력이 아주 높은 말이어서요.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 “인간은 무엇으로든 살아.” “너는 왜 연극이 하고 싶어?” “나는 왜든 연극이 하고 싶어.” “너는 어떤 소설을 쓸 거야?” “나는 어떤 소설이든 쓸 거야.”
어떻게든 잘 풀릴 것이라는 무한한 긍정과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의지로 느껴지던 이 말이, 어느 순간 손바닥 뒤집듯 의미가 변합니다. 그 사이에는 30년의 세월이 가로지르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들었던 동행은 명확하지 않은 이유로 극단적 선택을 하고, 화자가 기억을 되새김질해보니 장난으로 주고받던 ‘사슴벌레식 문답’에는 “무서운 뉘앙스”가 숨어 있었습니다. (호러소설은 아닙니다.)
“우리는 어떻게 이렇게 됐을까?” “우리는 어떻게든 이렇게 됐어.”
어떻게든 이렇게 되겠지, 하는 운명적이고 체념적인 답으로의 전환. 긍정과 의지의 체념이 되는 극적인 변화. 1462호에서 윤석열 1주년의 말을 고르고, 1463호에서 그 말에 대한 논리학자의 ‘말의 오류’ 설명을 들었습니다(70쪽 ‘21토크’ 참조). 논리학자는 윤석열 대통령 쪽이 방어 전략을 취했다고 합니다. 말을 분석하여 논점 일탈의 오류나 허수아비 논증, 모호한 문자 오류, 우연의 오류 등도 발견된다고 합니다. 2022년에서 2023년은 긍정에서 체념으로 극적으로 변한 1년이었습니다. 이렇게 되고 보니,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다고 체념에 빠지게 됩니다.
‘사슴벌레식 문답’에서 대통령의 말이라니, 논점 일탈의 오류를 저지른 것 같습니다. 어떻게든 끝내려니, 두리뭉실하게 이렇게 끝내겠습니다. 말이 어려운 시대입니다. 진심을 다해 해석해도 여러 갈래로 나뉘는 말을, 자기대로 가져와 해석하는 일이 많은 세상에서, 도저히 화합할 수 없는 말이 그냥 이해되지 못한 채 난무합니다. 말해야 하는 사람은 ‘누구든’ 말의 압력에 눌려야 하고 해석의 불가능성에 옷깃을 여며야 합니다, 할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소설에서 표시해놓은 문장 하나를 옮깁니다.
“직시하지 않는 자는 과녁을 놓치는 벌을 받는다.”
구둘래 편집장 anyone@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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