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배스천이 초콜릿을 토했어.”
카펫에는 초콜릿 구토물이 가득합니다. 아빠 조지는 그것을 닦으면서 “우리 집 나무도 많으니 거기다 토했어야지”라고 하는데 엄마 에이미는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듭니다. 서배스천이 아니라 딸 주니가 토하고는 남 탓을 하는 것이겠지요. 아이가 초콜릿을 많이 먹은 것부터 이상합니다. “손님방에 초콜릿 봉지가 너무 많던데.”
아이는 불안한지 소파에서 웅크리고 있습니다. 에이미가 사업이 잘 안 풀려 ‘로드 레이지’(난폭 운전)를 하며 화를 딴 곳에 쏟는 사이, 예술가로서의 자존심에 금이 간 아빠 역시 우울해하고 있습니다. 할머니는 슬쩍 두 사람이 이혼할 수도 있다는 말을 흘렸습니다.
“우리 같이 살자.”
웅크린 아이가 울상을 지으며 이렇게 내뱉었습니다. 이번호 레드기획에서 오수경 드라마 평론가가 해석한 넷플릭스 드라마 <성난 사람들>의 한 장면(6회 ‘마법의 동그라미를 그리며’)입니다. 어린이날이라고 1년에 하루 있는 날, 생색을 이번에도 내봤습니다. 듣고 싶은 말과 듣기 싫은 말을 어린이 처지에서 들어봤습니다. 시선을 뒤집어보는 일은 새롭고, 참여한 아이들 지민·지아·두나·예준·준영의 말이 귀여워서 한참 웃었지만, 웃고 있을 수만은 없습니다. “말랐어” “이것도 못 풀면 어떡하니” 무심코 내뱉은 말들이 가슴에 남았습니다. 어른은 어린이가 못 알아듣는다고 생각하겠지요.
이혼가정의 자녀가 감정적 상처를 싸안고 사는 비극은, 아이가 큰 다음에야 드러납니다(<나는 이혼가정의 자녀입니다>). 아이는 이미 상처받을 대로 상처받았는지 모릅니다. 초콜릿 형태로 나타나지 않았다면 아이의 불안은 감지되지 않았을지 모릅니다. 이런 사례가 많아서 용어도 있습니다. 손고운 기자는 ‘부모따돌림’을 소개합니다. 부모가 아이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상대방을 욕합니다. 한마디 흘린 ‘이혼’ 가능성에도 식이장애가 생기는데, 이혼가정의 불화와 비난이 가득한 세계를 아이는 어떻게 견뎌갈까요.
“엄마 에이미는 정말 날 많이 도와줬단다. 그런 세월이 쌓여서 우리를 강하게 하는 거야.” “아빠는 아빠가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우리에게 줬어. 많은 것을 희생했어.”
그래도 에이미와 조지는 당장 어떻게 대처할지 알고 있습니다. 주니의 양쪽에 앉아 조곤조곤 상대방을 칭찬해줍니다. 물론 그것으로 문제가 다 해결되지는 않겠지요. 아이의 눈높이를 하루만이라도 맞춰보아요. 364일 그걸 잊지 않고 지내면 더 좋고요. 김소영 작가의 말로는 “확실한 건 어린이에 대해 생각할수록 우리 세계가 넓어진다”고 합니다(<어린이라는 세계>).
구둘래 편집장 any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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