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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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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인 하숙생

등록 2023-03-31 13:47 수정 2023-04-07 08:56
<스위머스>의 한 장면. 넷플릭스 제공

<스위머스>의 한 장면. 넷플릭스 제공

버스를 탔다가 도착해보니 독일 베를린이었습니다. 내전 중인 시리아의 수영경기장, 올림픽 대표선수 유스라 마디니는 경기 중 폭격을 당하는 일을 겪은 뒤, 역시 수영선수인 언니 사라와 유럽으로 탈출을 단행합니다. 정원을 초과한 인원이 배에 타자 물이 들어옵니다. 그렇게 에게해를 건넙니다. 엔진이 고장 난 보트를 끌기 위해 유스라와 언니는 물로 뛰어듭니다. 위험한 바다를 넘어 유럽으로 들어왔지만, 갈 곳이 없습니다. 텔레비전에서는 “이민을 받아달라”며 베를린을 향해 걷는 난민 시위 뉴스가 나오고 있습니다. 베를린은 과연 응답할까요. 그런데 난민 집결지에 독일에서 보냈다는 베를린행 버스가 도착합니다. 설마 하면서 유스라는 버스를 탑니다. 노곤함에 잠을 자고 일어나니 개선문이 저기 보입니다. 실존 인물을 바탕으로 한 영화 <더 스위머스>에서 개선문이 나오자 나도 모르게 박수가 나왔습니다. 정말 그 정도일까, 싶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그 정도입니다. 2020년 독일에서는 이민자를 더 받으라고 시민들이 시위를 벌이기도 했습니다.

얼마 전 같이 지내던 독일인 하숙생 타마라가 8개월간의 하숙을 마치고 돌아갔습니다. 4년 전 ‘갭이어’를 우리 집에서 머문 뒤로 두 번째 하숙이었습니다. ‘갭이어’는 고등학교 졸업 뒤 외국에서 지내는 1년을 말합니다. 이스라엘, 타이, 오스트레일리아 등이 인기 많은 국가입니다. 한국에서 타마라를 만났을 때, 당시 만으로 스물이 안 되는 학생의 성숙함에 많이 놀랐습니다. 언제나 “도와줄 게 없나요”라는 말을 입에 달고 지냈습니다. 실제로 이불보와 이불속의 모서리를 맞잡고 휙 돌려 이불을 정리하는 등 ‘이것이 청소 선진국의 모습이구나’ 싶을 만큼 ‘기술’이 뛰어나 살림에 도움이 많이 됐습니다. 방 청소는 물론 화장실도 빨간 고무장갑을 끼고 박박 문질렀습니다. 고등학생을 하숙생으로 받으면서 전혀 예상하지 못한 ‘편리함’이었습니다. 두 번째는 건축학도가 되어 대학교 교환학생으로 왔습니다. 좀더 성숙했지만 집안일을 그냥 버려두는 일이 없는 것은 똑같았습니다. 타마라를 보며 다른 사람, 타인, 남, 이타심 이런 것을 떠올렸습니다.

낯선 것은 이것만이 아닙니다. 타마라 전공인 건축학과는 새로 짓는 일을 공부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타마라는 독일에서 100년이 넘은 집에서 삽니다. 재건축은 생각도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토대는 그대로 두고 설치물을 조금씩 바꿔가며 살고 있습니다. 한국에서의 프로젝트도 옛 건물을 남겨서 어떻게 조화롭게 구성할까였습니다. 새롭게 올라가는 건축물을 구경 다니지만, 나뭇결이 살아 있는 한옥을 제일 좋아합니다. 서울에 숲이 너무 없다고 이상해합니다. 서울숲, 서울식물원, 여의도공원 등 박물관보다 공원을 많이 다녔습니다. 뒷산의 산책로를 걷는 걸 좋아합니다. 날마다 날씨를 살피고 단풍과 눈, 계절의 기쁨을 만끽합니다.

타마라에게 묻고 싶습니다. 나무를 베고 동물에게 위협을 가해서 건축물을 세우는 것이 지자체의 숙원사업이 되고, 대통령의 공약이 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요.

구둘래 편집장 any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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