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서울 세운상가에 있던 작업실을 어머니 옆집으로 옮겼다. 청계천을 산책하고 세운상가에 서 있는 로봇을 내 남자친구라고 자랑하던 시절을 끝내야 했다. 어머니는 점점 눈이 흐려지고 다리도 아파 매일 주간보호센터를 다녀오신 뒤에도 여러 도움이 필요했다. 내가 이사한 뒤로는 그때그때 필요한 걸 사다드리고, 쓰레기봉투도 내다버리고, 일주일에 두세 번 같이 저녁을 먹는다. 그때마다 반찬처럼 어머니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듣는다. 경기도 파주 임진강가 장단이 고향인 어머니는 어느 날은 임진강 참게 이야기를 하셨다.
“참게를 잡아다가 독 안에 넣고 쇠고기를 잘게 다져서 넣어.”
“쇠고기를 아깝게 왜 참게한테 줘요?”
“참게들이 그 고기를 먹고 살이 통통하게 오르거든. 그걸로 게장을 담그면 아주 맛나지.”
참게에게는 최후의 만찬이었다. 어머니는 지금 어떤 유명한 음식점 게장도 그 맛이 안 난다고 하신다. 그러면 나는 그때는 먹을 게 귀하니 더 맛나게 느껴졌을 테고 지금은 맛난 게 많은 세상이니 그만큼 우리가 뭘 먹어도 감동을 못 받는 거라고 우긴다. 그렇지만 속으로는 진짜 맛나겠다고 생각한다. 그 맑은 물에서 자란 참게가 쇠고기까지 먹고 살이 올랐고, 농약 따위 없으니 어쩔 수 없이 유기농으로 기른 콩으로 담근 묵은 간장에 절였으니 어찌 맛이 없을 텐가. 부세를 구운 날은 조기 이야기를 하신다.
“조기배가 들어오면 나가서 조기를 한 바구니 사와. 그걸 말려서 소금독에 묻어두고 하나하나 꺼내서 구워 먹지. 머리가 남으면 불돌에 바싹 구워. 그러면 하얀 개이빨 같은 딱딱한 뼈만 못 먹고 다 먹어.”
어느 날 어머니 친구분이 가자미를 보내주셨다.
“가자미도 살을 다 먹고 난 다음 불돌에 올려 더 구우면 가자미 가시는 약한 편이라 가시까지 다 먹을 수 있는데.”
불돌이라니 대체 그게 무언지 알 수가 없었다. 아궁이 안에 넣는 돌인가?
“불돌이 뭐예요?”
“불돌을 몰라? 화로에 얹는 납작한 돌이야.”
“화로 쓰는 걸 본 적이 없으니까 모르죠.”
“아, 화로를 못 봤구나. 나 어릴 적 우리 집에 화로가 두 개 있었어. 안방에는 놋화로고 하나는 질화로였어.”
“난 어릴 적 외할머니 집에서 요강은 봤어요. 화로는 못 보고.”
“그때는 놋그릇을 일본 사람들이 다 뺏어갔잖아. 그래서 우리 집은 놋그릇은 바구니에 담아서 우물 속에 숨겨뒀지. 우리 노할머니가 바구니 엮는 거를 잘하셔서 바구니가 많았어. 놋화로는 추운데 안 쓸 수도 없고 해서 우리 노할머니가 놋화로에 흙을 발라 질화로처럼 보이게 하고 썼어.”
“요즘 골동품가게에서 놋화로 되게 비싼데 그거 어디로 갔어요?”
“한국전쟁 나서 피란 나올 때 놋제기며 놋화로며 우물에 다 던져뒀지.”
“아깝다.”
“소랑 소달구지도 피란길에 버려두고 갔는데, 뭐.”
한국전쟁 이후 어머니는 다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지금은 비무장지대가 되어 그 우물은 다 메워지고 풀밭이 됐을 거라 하셨다. 우물을 메우기 전에 누군가 그 제기와 놋화로를 꺼내 갔을까? 아직도 땅속에서 놋제기들과 놋화로가 녹슬어가고 있을까? 언젠가 비무장지대 유적 탐사를 하는 날, 우물 자리 땅속도 파보아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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