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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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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맛

등록 2023.02.01 14:10 수정 2023.02.02 03:44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아침에 눈떠서 본 뉴스에서 ‘확전’이라는 낯선 단어가 보였다. 2022년 12월 말, 북한 무인기가 영공을 침범했고 대통령은 “확전을 각오한 상황 관리”를 지시했다는 소식이었다. 어마무시한 단어가 이렇게 쉽게 내뱉어지는 것이 몸서리쳐졌다.

전쟁의 한복판을 온몸으로 살아낸 한 여성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전쟁 같은 맛>(Tastes Like War)을 쓴 작가 그레이스 조가 자신이 쓴 책을 소개하는 자리에 참석한 적이 있다. 책은 저자의 엄마에 대한 내용이다. 엄마는 일제강점기에 일본에서 태어나 한국전쟁 이후 황폐해진 한국으로 건너왔고, 미군부대에서 일하다가 백인 미군을 만나 결혼해 미국으로 건너갔다.

가족이 다 아는 걸 왜 나만 몰랐지

1970년대, 백인만 있는 중산층의 보수적인 동네에 이사 왔다. 그 동네에 이질적 존재인 엄마는 누군가를 초대해 요리해주는 것이 이웃과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엄마는 이웃을 초대해 한국 음식을 만들어주곤 했다. 엄마는 요리로 자기 존재를 증명해내는 작은 투쟁가였다. 그러던 엄마가 어느 순간 점점 이상해졌다. 요리 창고는 텅텅 비어갔고 엄마에게 ‘정신분열증’이라는 진단이 내려졌다.

저자가 23살일 때, 새언니는 이렇게 말했다. “그레이스, 당신 엄마가 기지촌 여성이었어요.” 그 이야기를 듣자 저자는 부끄러운 감정이 확 몰려왔다고 고백했다. 가족이 다 아는 사실을 왜 자신만 모르고 있었지? 이 부끄러운 감정은 어디서 오는가? 이런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저자는 박사과정에 들어갔다.

1945년 9월, 미군이 주둔하면서 한국 최초의 ‘위안부’ 시설이 만들어졌다. 일본 제국주의 군대가 운영한 일본군 위안소를 미군이 가져가 활용했다. 미군은 기지 주변에 주한미군을 상대로 성매매하는 여성들과 ‘위안부’ 시설을 조직적으로 관리했다. 1960년대에는 한국 정부도 불법인 성매매를 기지촌 내에선 용인했다. ‘양공주’로 불리던 이들은 외화벌이한다며 칭송됐다가 어느 순간 사라져 유령이 돼버렸다.

엄마의 상태는 점점 나빠졌다. 2001년 9월11일, 저자는 미국 뉴욕에 있는 직장에 가기 위해 엄마에게 인사했다. 엄마는 고개를 숙인 채 뉴스를 들으며 바닥만 내려다봤다. 이미 첫 번째 비행기가 충돌했을 시각이다. 저자는 몇 시간 지나서야 9·11 테러가 일어났음을 알았다. 저자는 엄마가 그 뉴스를 봤으면서도 왜 자신에게 직장에 가지 말라고 하지 않았는지 잔뜩 화가 나 있었다. 집에 돌아와 엄마에게 따져 묻다가 울음을 터뜨리는 저자에게 엄마는 말했다.

“왜 그렇게 우는 거지? 세상에서 네가 특별한 것 같아? 이런 일을 겪는 건 세상에 너뿐만은 아니야.” 테러, 전쟁과 같은 일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으며 무수히 많은 사람이 겪고 있었다. 저자는 엄마가 한국전쟁에서 얼마나 많은 가족을 잃었는지, 전쟁의 상처가 있는 엄마에게 9·11 테러가 어떤 의미로 다가왔을지 그 마음에 닿아보고 싶었다.

밀크파우더는 전쟁 같은 맛이 나

음식을 거의 먹지 않는 엄마에게 밀크파우더(우유분말)를 먹고 단백질 좀 보충하라는 저자의 말에 엄마는 코웃음 치며 이런 말을 한다. “난 이 맛을 참을 수가 없어. 전쟁과 같은 맛이 나.” 일제 제국주의, 한국전쟁, 미군 기지촌, 미국에서 겪는 인종차별, 혐오와 냉대의 시선을 온몸으로 겪어냈던 한 여성의 이야기가 이 책에 담겨 있다. 이 책은 2023년 초 한국어로 번역돼 나올 예정이다. 휴전 상태인 국가에서 ‘확전’ ‘전쟁’ 같은 단어가 난무하는 시대를 또다시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 책은 어떻게 다가올까?

우춘희 <깻잎 투쟁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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