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남양주시 ‘위스테이별내’에서는 아파트 관리사무소장을 ‘동네지기’, 경비원을 ‘동네보안관’, 미화원을 ‘동네벼리’라고 부른다. 2022년 8월30일 ‘동네지기’ 김동신(55·사진) 소장을 만났다. 그는 아파트에 사는 조합원이자 주민이다. 20년 넘게 기독교 비영리단체의 출판부에서 일하다가 2020년 6월 아파트에 입주한 뒤 관리소장이 됐다.
“2017년 조합의 발기인으로 사업 기획 단계부터 함께했습니다. 초기 회의 때 우리 아파트 관리소장은 공동체를 경험해보고 협동조합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는 논의가 있었어요. 그때부터 주택관리사 시험을 준비해 합격했습니다.”
아파트 입주 초반엔 주민 불만이 많았다. 40일 이상 많은 비가 내려 누수가 생겼고 곳곳에 하자도 많이 발견됐다. 코로나19 때문에 사용할 수도 없는 커뮤니티센터 이용료로 월 5만원씩 내야 하는 것에 불만도 터져나왔다. “이대로는 우리가 꿈꾸는 공동체는 물 건너가겠다 싶던 차에 주민 공청회가 열렸습니다. 하자 보수는 관리사무소가 아니라 시공사에서 하는 것인데 주민들이 그 부분을 잘 몰랐던 거죠. 시설 이용료는 임대계약 때 명시됐던 부분이고요.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누니 주민들의 오해가 풀리고 문제도 원활히 해결됐습니다. 주민들도 하자가 보수될 때까지 끈기를 갖고 기다려줬고 이용료도 불만 없이 냈습니다. 그때 소통이 얼마나 중요한지 느꼈어요.”
주민공청회 직후인 2020년 8월부터 김 소장은 주민들이 가입한 온라인카페에 ‘동네지기 브리핑’을 매주 또는 격주로 올리고 있다. 관리소장으로 어떤 업무를 했고, 그 업무의 의미는 무엇인지 브리핑한 뒤 공동체 이야기로 마무리하는 형식의 글이다. “아파트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몰랐던 주민들이 그 글을 읽고 아파트 관리 업무를 이해하게 됐다고 해서 기쁩니다.”
주민들로 구성된 ‘갈등조정위원회’는 층간소음, 반려동물, 흡연 등 이웃 간에 문제가 생기면 관리소장을 찾아와 위원회가 이 문제를 안건으로 올릴지 동의 여부를 물어본다. “위원들을 배정하고 (갈등) 쌍방의 이야기를 먼저 충분히 듣습니다. 이후 쌍방이 함께 만나 이야기를 나눕니다. 관리소장 입장에선 문제가 더 커지기 전에 도움을 받을 위원회가 있어 든든하죠.”
주민 스스로 좋은 문화를 만들어갈 수 있게 돕는 것이 김 소장의 철칙이다. 입주 초기에 주차 규칙을 위반하는 주민이 있었는데, 김 소장은 ‘주차 규칙을 위반했습니다. 이동 주차 부탁드립니다. 당신의 이웃으로부터’라는 문구가 적힌 인쇄물을 만들어서 주민들에게 나눠줬다. 경차 전용 자리에 중형차를 주차하는 등 규칙을 위반하는 차량에는 누구나 인쇄물을 붙일 수 있도록 했다. “일주일 만에 주차 문화가 잘 자리잡았어요.”
공동체가 오래도록 잘 유지되려면 무엇이 중요할까. 김 소장은 “공동체가 사회적 안전망으로서 작동해야 한다”고 했다. “아파트 근처에 물류센터가 들어선다고 해서 주민들이 반대했습니다. 초등학교 앞이라 주민들이 이틀 동안 등교 거부를 하기로 뜻을 모았습니다. 60% 가까이 동참했는데 맞벌이 부부는 등교 거부를 하면 아이를 돌볼 수 없잖아요. 주민들이 나서서 아이들에게 수어를 가르치고, 노인회에서는 아이들에게 두 끼 식사를 만들어서 먹였어요.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아프리카 속담이 생각났어요.”
더 길게 내다보면, 주택이 투기 목적이 아니라 주거 공간이 돼야 한다는 점에 모든 주민이 동의해야 이 공동체가 유지될 수 있다. 위스테이별내는 6년 뒤 아파트의 소유 구조를 전환하는 결정을 앞두고 있다. “지금으로선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지만, 저는 조합이 아파트를 인수하길 바랍니다. 아파트 가격 상승에 따른 자산 효과는 누리지 못하지만 저렴한 임대료를 내며 계속 여기서 살 수 있는 방식이거든요. 좋은 이웃과 함께하는 좋은 공동체, 여길 떠나지 않고 계속 살고 싶습니다.”
신지민 기자 godji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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