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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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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상 위 쓰레이닌씨의 달걀

등록 2022-08-30 11:40 수정 2022-08-30 23:46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명절 때 깨는 크는데, 일할 사람을 못 구하면 속이 타들어가. 깻잎을 제때 따줘야 하는데, 한국 아지매들은 아들 며느리 온다고 안 와, 어디 아프다고 안 와, 병원 간다고 안 와. 근데 얘네들(이주노동자들)은 하루만 딱 쉬고 와서 일해.”

국내 일꾼 쓰는 데 지쳤어

경상도의 깻잎밭 사업주인 60대 박숙자(가명)씨는 깻잎이 한창 잘 자라는 추석 무렵에 일할 사람을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굴러야 했다. 모두들 가족과 함께 명절을 쇠고 싶어 했다. 명절에는 깻잎이 잠시 쉬었다가 자라주면 좋으련만 애석하게도 깻잎은 쉬지 않고 자랐다. 깻잎은 제때 따지 못해 잎이 무성하게 자라면 상품 가치가 떨어졌고, 이는 곧 농가소득 하락을 의미했다. 그 때문에 박숙자씨는 명절과 가을에 인력을 구하느라 속이 타들어갔다.

옆에 있던 남편 이호식씨도 한마디 거들었다. “한국 아지매들한테는 추석 명절은 말할 것도 없고 내년에 재계약하려면 보너스 줘야 하지, 이러니까 국내 일꾼 쓰는 데 지쳤어. 나 같은 경우는 사람 한두 명 쓰는 것도 아니고 가을에는 20~30명씩 쓰는데 스트레스라니까…. 외국인 쓰니까 진짜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야.”

10여 년 전부터 농촌 풍경이 달라졌다. 깻잎밭 사업주들은 고용허가제로 우리나라에 온 이주노동자를 고용하기 시작했다. 이주노동자는 하루에 9~10시간 일했고, 한 달에 고작 두 번 쉬었다. 이들에게 할당된 깻잎 양은 하루에 깻잎 1만5천 장이었다. 할당된 깻잎을 따지 못하면 월급이 깎였다. 법적으로는 최저임금을 보장받지만, 모두들 최저임금보다 더 낮은 임금을 받으며 일했다. 사업주들이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을 느끼는 동안, 어떤 이주노동자들은 명절 대목을 앞두고 “이렇게 일하다가 정말 죽을 것 같아서 도망쳤어요”라고 말했다.

추석 명절 밥상에 오르는 많은 먹거리 뒤에는 어김없이 이주노동자의 손길이 닿아 있다. 부침개를 하기 위해 달걀물을 푼다면, 그 달걀은 어쩌면 경기도 여주의 어느 동물복지 친환경 농장에서 캄보디아 이주노동자인 쓰레이닌씨가 수거하고 분류해 포장 상자에 담은 달걀일지도 모른다. 그의 팔에는 달걀을 수거하면서 닭에게 쪼여 상처가 가득했다.

추석 차례 음식으로 돼지고기 산적을 만든다면, 그 돼지는 경기도 이천에서 일하는 피룬씨가 돌봤을 수도 있다. 깻잎에 당면을 넣어 깻잎전을 만든다면 그 깻잎은 어쩌면 충남 금산에서 화장실 가는 시간도 아껴가며 깻잎을 따야 하는 쏘리야씨의 손을 거쳐왔을 수 있다.

먹거리 너머 이주노동자의 눈물

수박 윗부분을 잘라 차례상에 올렸다면 충남 부여에서 몇 달치 임금을 받지 못하면서 일해야 하는 찬뚜씨가 수확했을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배를 정성스레 깎아 차례상에 올렸다면 충남 아산의 한 배밭에서 배꽃이 한창 피었을 때, 장대 끝에 솜털을 달아 여기에 꽃가루를 찍어 인공수분을 한 타이 출신 이주노동자 쏨차이씨의 땀이 배어 있을 수도 있다.

온 가족이 둘러앉아 텔레비전을 보면서 만두를 빚는다면, 만두소 부추는 경남 김해의 한 비닐하우스 안에서 온종일 쭈그려 앉아서 왼손에 부추를 한 줌 쥐고, 오른손에 낫을 들고 힘차게 쓱싹 베어내는 네팔 출신 빈싸씨 덕분일지도 모른다.

추석날 풍성하게 가득 차려진 밥상 곳곳에는 이주노동자들의 손길이 닿아 있다. 그리고 그 먹거리 너머에 이주노동자들의 눈물로 얼룩지지 않았는지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동료시민, 사회구성원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일 것이다.

우춘희 <깻잎 투쟁기> 저자

*이주노동자 인권운동가이자 <깻잎 투쟁기>의 저자인 우춘희씨가 ‘노 땡큐!’ 새로운 필자로 합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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