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2022년 2월 온라인으로 열린 재팬필름페스티벌에서 영화 <썸머 필름을 타고!>를 봤다. 아름다운 강이 흐르는 시골 마을에서 사무라이 영화를 만들고 싶어 하는 영화부 여고생 ‘맨발’과 친구들의 이야기다. (영화든 사람이든) 사랑하는 상대를 향해 전속력으로 달려가 안기고 싶어지는 영화였다.
‘맨발’ 감독이 친구들을 불러놓고 이번 여름에 너희의 청춘을 좀 쓰겠다며 설렘 가득한 얼굴로 부탁, 아니 선언함으로써 영화 만들기는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좌절도 희열도 함께 느끼며 어느새 한 팀이 되어가는 과정이 귀엽고 애틋하며 무엇보다 치열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라스트신 촬영을 남겨둔 시점, 감독이 슬럼프에 빠져버린다. 언젠가 영화가 사라진 미래가 존재한다는 얘기를 듣고 충격받은 것이다.
그 모습에 최근 몇 년간의 내가 겹쳐졌다. 그간 기본소득 운동과 녹색당 활동에 참여하면서, 단기간에 큰 성취를 해내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니 좌절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멀리 보고 내 생애 동안 최선을 다해 꾸준히 가보자는 마음으로 살았다. 그러고 나서 뒤에 올 사람들과 바통터치를 해야지, 끊기지 않을 이야기를 남겨야지, 싶었다.
그러다 서서히 기후위기를 감각하면서, 머지않은 미래에 인간과 인간이 만든 세상이 없어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맞닥뜨렸다. 나는 많은 사람이 공감하는 이야기가 인류의 향방을 결정한다고 믿기에, 사회운동이 일종의 대안적 스토리텔링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야기야말로 인간과 운명을 함께하는 것 아닌가. 사회운동처럼 벌써 인기도 없는데다 사라질지도 모를 이야기를 어떤 마음으로 만들어야 하는 걸까.
또래 친구들은 관심도 없고, 영화부 시나리오 투표에서 로맨틱코미디에 압도적으로 지고 마는 사무라이 영화를 사랑하는 ‘맨발’. 그런 ‘맨발’이 친구들과 영화를 만들려고 애쓰는 게 미래에 사라질지 모르는 가치를 지키는 행위처럼 느껴졌다. 서럽고 고단해도 다른 목소리를 내고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려는 사람들이 떠올랐다. 리베카 솔닛이 ‘공적인 사랑’이라고 표현한 감정을 보여주는 사람들. 생존 이상의 꿈을 꾸기 힘들수록 더 지키기 어려운 귀한 마음 말이다.
2005년 한국전력 밀양지사 앞 집회를 시작으로 2022년 현재까지 송전탑 반대 투쟁을 이어오는 경남 밀양의 할매, 할배도 그런 사람들이다. 사랑하는 앞산과 논밭을 파헤치고 들어선 송전선로를 따라갔더니, 그 끝에 핵발전소가 있고 부정의한 에너지 시스템이 존재하더라는 진실을 폭로한 싸움에 우리는 크게 빚졌다. 기후위기에 대응하려면 전기를 만들고 쓰는 방식을 신속히 전환해야 하는 길목에서, 밀양 어르신들이 던진 질문은 더욱 중요해졌다.
“말없이 싸워도 싸우는 건 싸우는 거지. 눈물을 타고 흐르는 전기를 끊어내는 그날까지.”
이들을 보며 결심한다. 떳떳한 희망의 이야기로 지속되는 세계를 사라지게 두지 않겠다는 결심, 이야기로 연결되고 강해지는 마음을 잊지 않겠다는 결심. 언젠가 물리적 기록이 사라지는 때가 오더라도, 소중한 장면이 탄생했고 그 ‘걸작’을 함께 만든 사람들이 존재했음을 똑똑히 목격한 사람이 되겠다는 결심.
*추신. 마침 그런 마음으로 가기 좋은 전시가 있다. ‘밀양에서-마포까지: 이 전기 괜찮은 걸까요’. 2022년 6월 밀양에서 열린 탈핵·탈송전탑 투쟁 16년 아카이브 전시를 서울의 활동가들이 이어받았다. 8월22~29일 마포 당인리교회에서 진행된다.
김주온 BIYN(기본소득청‘소’년네트워크)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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