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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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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지로는 안 멋져

등록 2022-07-06 15:04 수정 2022-07-07 01:36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을지면옥의 마지막 영업일, 가게 앞으로 100m 넘는 줄이 이어졌다고 한다. 비싼 가격으로 문턱이 높아졌대도 맛있는 한 끼를 떠올릴 때면 냉면을 자주 선택한다. 을지면옥은 추억의 음식인지라 더운 날씨에 100m 줄의 끝에 선 사람들의 마음을 십분 이해했다. 대중음식점은 맛도 맛이지만 공간의 체험이기 때문이다. 아는 맛을 먹기 위해 예전 그대로의 풍경에 들어서는 것, 시간을 넘어 도시와 동네에 소속되는 감각은 일상에서 그렇게 만들어진다.

테이블과 함께 철거된 추억

빠르게 변하는 도시에서 그런 감각은 귀하다. 을지면옥 건너편 노가리 골목에서는 42년간 한자리를 지켜온 을지오비(OB)베어가 쫓겨난 문제로 두 달 넘게 저녁 문화제가 이어지고 있다. 을지OB베어를 쫓아낸 것은 이웃 가게 만선호프다. 만선호프는 노가리 골목의 가게를 하나하나 없애며 10개의 가게를 차렸다. 이제 노가리 골목에 들어서면 노가리 골목이 아니라 ‘만선 골목’인가 착각할 지경이다.

얼마 전 을지OB베어를 찾은 박찬일 셰프는 “노포는 공공재”라고 말했다. 오래된 가게는 단지 가게 주인 자신만의 소유가 아니라 그 공간을 오간 사람들의 경험과 기억의 총합이라고 말이다. 6평 을지OB베어에는 여러 사람이 모여 앉을 수 있는 가운데 테이블과 가게 벽을 빙 둘러 짜인 나무 선반이 있었다. 수많은 사람의 팔꿈치를 받쳐줬을 약간 기우뚱하던 그 선반이 어디로 사라졌는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강제집행으로 실려간 테이블, 을지OB베어 간판과 함께 시민들의 기억이 뿌리 뽑혔다.

더불어 모욕당한 것은 가게를 채워온 42년의 노동이다. 손님과 약속한 시간에 맞춰 가게 문을 열고 닫았던 1대 사장 강효근에게서 이어진 매일의 노동, 직접 방망이로 두들겨 한결같이 연탄불에 구워낸 노가리와 저온에서 천천히 숙성한 맥주를 건네던 일과가 건물을 소유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빼앗아도 괜찮은 일이 됐다.

혹자는 을지OB베어는 꼭 노가리 골목에 있지 않아도 을지OB베어일 것이라고 말한다. 그 말도 맞는다. 그런데 반만 맞는다. 을지OB베어와 뮌헨호프가 사라지고 11번째, 12번째 만선호프만 생긴다면 그곳이 노가리 골목일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차량 통행을 막아가며 야장영업(영업장 이외의 장소에서 하는 영업)을 허가해줬던 중구청의 조례는, 노가리 골목의 다양한 가게가 어울려 만들어낸 문화에 대한 인정이었다. 부산 자갈치 곰장어골목, 서울 공덕동 족발골목, 전남 나주 영산포 홍어거리에 있는 모든 가게를 한 가게가 독점할 때도 ‘골목’ 이름을 유지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법과 제도가 미비했더라도 애초에 사회적 합의가 없는 문제는 아니다. 만선호프의 욕심이 망치는 건 을지OB베어가 아니라 시민들이 일궈온 문화다.

사라지기 전 을지OB베어는 자주 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기다리는 손님에 견줘 가게가 워낙 작기도 하고, 밤 11시면 영업을 종료해 일과가 늦게 끝나는 나의 ‘술시’에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면 나는 어디로 갔나? 아뿔싸, 눈앞에 보이는 만선호프를 뻔질나게 다녔다. 만선호프가 9개, 10개가 되면서 만선호프는 더 이상 내가 갈 수 없는 도시 유해종이 됐다. 을지OB베어뿐만 아니라 만선호프도 잃은 셈이다.

만선의 꿈도 사라질라

노가리 골목이 ‘만선 골목’으로 타락하는 걸 어떻게 막을 수 있나. 지금으로서는 매일 노가리 골목에서 문화제를 열고 노래하는 시민들의 환호가 만선호프의 욕심을 이기는 길밖에 없다. 만선호프는 이들의 ‘상생하라’는 구호가 ‘나도 살자’가 아니라 ‘서로 살자’임을 명심하라. ‘제 꾀에 제가 넘어간다’는 속담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니 말이다.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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