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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의치 않은 송해

등록 2022-06-18 13:28 수정 2022-06-20 01:44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누군가 그가 속한 공동체에서 어떤 존재였는지는 떠난 뒤에 더욱 선명해진다. 34년 동안 KBS <전국노래자랑>을 진행해온 전설적 방송인 송해가 향년 95로 2022년 6월8일 세상을 떠났다. 추모 방송과 유명인들의 조문이 이어지고, 그와 정든 시청자가 슬퍼하는 동안 서울 종로구 ‘송해길’ 앞에 펼침막이 하나 걸렸다. 한쪽 끝에는 성소수자를 상징하는 여섯 빛깔 무지개가, 다른 끝에는 흰 국화가 그려진 펼침막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송해 선생님, 안녕히 가십시오. 함께여서 즐거웠습니다. –종로 이웃 성소수자 일동”

성소수자 포용 입장을 밝힌 ‘원로’

황해도 재령에서 태어나 스물셋에 한국전쟁을 맞이해 홀몸으로 피란 온 송해에게 종로는 제2의 고향이었다. 50년 넘게 낙원동을 근거지로 활동한 그의 업적을 기려, 2016년 종로2가 육의전빌딩부터 낙원상가에 이르는 240m 구간인 수표로가 ‘송해길’로 지정됐다. 그리고 2018년 KBS <대화의 희열>에 출연한 송해는 종로의 “새로운 문화”로 퀴어문화축제를 언급하며 “옛날 같으면 어른들한테 혼나지만, 이제는 어르신들이 막 박수를 친다. 거기 가서 배울 게 많다. 이런 변화를 우리가 체험하는구나 싶어 아주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한국 사회 ‘원로’ 가운데 성소수자에게 포용적인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힌 인물은 흔치 않다. 추모 펼침막 게시를 제안한 권순부 공공운수노조 희망연대본부 사회연대국장은 “1970년대 이래로 많은 남성 동성애자들이 극장과 주점 등 낙원동 일대 다양한 공간으로 모여 명실공히 게이들의 해방구로 자리잡은”(<한겨레>) 종로는 한국 성소수자에게 남다른 의미가 있는 공간이라고 설명한다.

송해가 <전국노래자랑> 사회를 맡은 지 4년째 되던 1991년, 군복무 중이던 한 청년이 충남 청양 편 무대에 올랐다. 선글라스와 모자를 눌러쓰고 현진영 노래를 열창하던 끼 많은 청년에게 송해는 “나중에 연예인 해도 되겠다. 뭐든 열심히 해라”라며 격려했다. 몇 년 뒤 그는 진짜 연예인이 됐다. 뭐든 열심히 했다. 그러나 2000년,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세상에 알리고 나서 모든 일이 끊겼다. 3년간 방송에 출연하지 못했다. 거센 반대를 무릅쓰고 그를 드라마에 캐스팅한 사람은 작가 김수현이었다. 그 뒤 홍석천은 ‘커밍아웃 1호 연예인’으로 온갖 풍파를 맞으면서도 연기자, 방송인, 요식사업가로 활발히 활동했다. 종로와 함께 성소수자에게 특별한 의미를 지닌 공간인 이태원의 부흥을 이끌기도 했다.

송해가 “퀴어~문화축제!”라 말한다면

송해가 떠난 다음날, 홍석천은 ‘탑지’(Top G)라는 예명으로 <케이탑스타>(K TOP STAR, 퀸와사비 피처링)라는 제목의 음원을 발표했다. 경쾌한 디스코풍의 노래, 그가 즐겨 하는 말장난 “개의(gay)치 말고” 같은 가사에 미소짓다보면 문득 눈물이 핑 도는 순간이 찾아온다. “모두가 너를 비난해도 걱정 마 일어설 수 있어/ 서로가 다를 수 있어도 모두 일어나 함께 춤추자” 커밍아웃 22년차, 청소년을 비롯해 사회로부터 고립되거나 공격받는 동료 성소수자에게 꾸준한 위로와 응원을 보내온 그가 가장 전하고 싶을 메시지가 인장처럼 노래에 담겨 있다.

송해가 “전국~노래자랑!” 대신 “퀴어~문화축제!”라고 쩌렁쩌렁 외치며 막을 올리는 무대를 상상해본 적이 있다. 이제는 꿈꿀 수 없는 순간이다. 하지만 7월16일로 예정된 서울퀴어문화축제에서는 “모두 일어나 함께 춤추자”는 노래가 울려퍼질 것이다. 축제를 마치고 헤어질 때는 모두 세상에서 가장 다정한 작별 인사를 나누면 좋겠다. “함께여서 즐거웠습니다.”

최지은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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