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을 200만원으로 잡으면 150만원 받고 일하겠다는 사람은 일을 못해야 합니까?”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2022년 3월7일 경기도 안양 유세에서 했다는 발언을 들었다. 그는 “(인상된 최저임금) 지불능력이 없는 자영업자는 다 나자빠지고 최저임금보다 조금 적더라도 일하겠다는 근로자들은 일자리를 다 잃게 된다”고도 주장했다. 그가 제20대 대통령이 됐다.
3월2일 대선 후보 TV토론에서 심상정 정의당 대선 후보는 화력발전소에서 산업재해로 숨진 김용균 노동자와 관련한 1심 재판 결과를 언급하며 “공약집에 건설사 쪽에 대한 의견만 있고 수많은 김용균에게 보내는 메시지는 왜 없냐”고 물었다. 윤석열은 “검찰총장으로서 서산지청에 지휘해 13명이 기소됐다. 재판 결과는 안타깝다. 현직에 있을 때도 산재 사건은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고 말했다. 원청인 한국서부발전 대표이사 등은 불구속 기소됐다. 자신이 검찰을 나온 뒤, 재판에서 문제가 있는 것처럼 비치길 바랐는지 모르겠다.
윤석열 당선자는 노동 관련 규제의 경제사회적 배경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고 김용균 사건에서 수사해야 하는 것은 한국서부발전의 원·하청 구조, 하청업체로의 비용 전가 등이 비정규직 노동자의 죽음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 였다.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해 그는 무리한 법 적용을 우려한다고 말했다. 이는 노동자가 숨져도 근본적 원인을 싸매고 덮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왜냐하면 2022년 1월27일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은 기업의 책임, 특히 원청 기업의 책임을 다루기 때문이다. 책임을 묻기 위해 기업 내부를 들여다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 등 기업 관련 단체들이 이 법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도 그래서다. 중대재해처벌법 이전에는 노동자 사망 사고에서 기술적·공학적 원인만을 스케치하듯이 다룰 뿐, 사고의 책임자도 책임질 조직도 희미하게 처리했다. 그것이 이전 법과 행정의 방식이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제정되기 전에는 의미를 명확히 하고자 ‘기업살인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그 뒤 이름이 순화돼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되고, 최종적으로 법이 제정될 때는 ‘중대재해처벌법’이 됐다. ‘법’ 이름에서 기업이 삭제됐지만, 기업들은 처벌 대상이 되지 않기 위해 물샐틈없이 준비하고 있다. 그 심부름꾼인 로펌 등에 대한 소문이 파다하다.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한 기업의 불만에 관심이 쏠린 사이에도, 기업에서 숨진 노동자들을 찾아 틈을 채워나가는 이가 있다. 박한솔 활동가는 노동건강연대가 매달 발표하는 ‘이달의 기업살인’ 담당자다.
“아침에 출근하면 ‘인부, 노동자, 사망, 숨져’ 같은 키워드로 검색해요.” 포털 사이트와 고용노동부 산하기관인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누리집에서 전날 숨진 노동자를 찾는다. “한 달에 몇 명의 사망자가 나오는지 대략 보이잖아요. 그 숫자가 안 되면 돌아가신 분을 다 못 찾은 것 같아서 다시 확인해요.” 사망자가 적으면 다행이어야 하는데, 그는 기록에도 남지 않는 죽음이 있을까봐 불안하다.
다달이 60~70명의 노동자가 출근한 일터에서 또는 응급실로 실려 가는 차 안에서 숨져, 집에 돌아가지 못한다. “작업자, 협력업체 직원, 근로자, 신아무개씨, 박아무개씨… 간혹 사고가 알려지고 유가족이 공개되면 본명이 나오기도 해요.”
날마다 정리해도 산재 사망자가 구체적인 한 사람이 아니라 두루뭉술하게 불리는 이름 없는 존재로, 단신 기사 처리되는 것에 익숙해지지 않는다. “어딘가에서 자기 시간을 살아내던 사람의 시간이 끊겼다, 이 사람은 어떻게 살다가 이런 죽음을 맞았을까, 생각하죠.”
처음에 안전보건공단은 산재로 숨지는 노동자들의 소식을 찾기 어렵게 숨기듯 누리집 구석진 곳에 올렸다. 사회적 관심이 커지면서 누리집 초기화면에 ‘사고사망속보’라는 제목을 달고 올라온다. ‘사고사망속보’는 대도시 한복판의 뉴스전광판 기사처럼 빠르게 흘러간다. “딱 사고 자체만 올라와요. 언제 어디서 왜 일어났는지 ‘6하 원칙’만큼의 정보도 아니고, 기업 이름을 알려주지 않아요. 납득이 가지 않아요.”
‘3/2 당진, 금속제품 제조업 공장, 작업 중 도금 포트에 빠짐.’ 2022년 3월2일 충남 당진 현대제철, 난간도 없는 도금 설비(포트)에서 일하다 485℃의 쇳물에 추락한 하청노동자의 소식을 안전보건공단은 이렇게 전한다. 정부 기관이 전하는 속보에는 노동자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구조가 소거돼 있다.
박 활동가는 매달 이런 산재 사망 소식을 모아서 ‘이달의 기업살인’이라는 제목의 글(사진)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인터넷언론 <오마이뉴스>에 올린다. “원청이 하청에 위험을 떠맡기고, 위험한 일을 계약직·비정규직에 떠맡겨서 일어나는 구조를 보라고 ‘기업살인’이라고 부르는 거예요.”
2020년 노동건강연대 활동을 하기 전까지 박 활동가도 숨지는 노동자가 숫자로 얘기될 만큼 많다는 걸 알기는 했지만 그 규모는 생각보다 훨씬 컸다. “흩어져 있으면 안 보이던 게 모여 있으면 보여요. 매달 이렇게 숨질 수 있나, 그 사람의 순간을 상상하고 민감하게 반응하는 시민들이 있어요.” 반복되는 단어를 정리하다가 혼돈에 빠지기도 한다. “떨어져 사망, 깔려서 사망, 한 줄씩 쓰다보면 내가 아는 단어가 맞나, 생각해요. 2022년 대한민국에서? 사람이 죽는데 왜 이렇게 평온하지? 낯설어요.”
이런 평온에 낯섦을 느낀 ‘오늘 일하다 죽은 노동자들’ 트위터 계정 운영자 이현(가명)과 출판사 온다프레스가 노동건강연대에 제안해 <2146, 529>란 책이 만들어졌다. ‘2146’은 산재로 숨진 모든 노동자의 수, ‘529’는 그중 떨어지고 끼이는 등의 사고로 숨진 노동자의 수를 뜻한다. 2021년 한 해에만 말이다. 2022년 1월27일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는 첫날에 책을 펴냈다.
노동건강연대 SNS를 살펴보던 박 활동가는 최근 잊을 수 없는 댓글을 보았다. <2146, 529>를 해시태그(#)로 단 글에는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노동자의 죽음, 이라는 책의 부제처럼, 우리 아빠도 그 수많은 사람 중 하나’라고 적혀 있었다. 박 활동가가 최근 정리한 ‘이달의 기업살인’ 가운데 그 ‘아빠’의 사고가 있었다.
곧 대통령이 바뀔 것이다. 박 활동가는 말한다. “요즘 산재 사망 기사마다 한 줄이 추가됐어요.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대상이다, 아니다라는 문장이요. (중대재해처벌법 대상인지를 따질 게 아니라) 기계가 안 멈춰서 노동자가 죽었는데, 왜 그 전에 자동멈춤 센서를 안 고쳤나를 물어야죠.” 이름없는 노동자들의 죽음에 대해서, 이제 무엇을 해야 할까. “타인이 힘든 걸 신경 쓸 여력이 없는 세상에서 그 너머를 보려고 하면서, 왜 그러지? 무얼 해야 하지? 상상할 수 있느냐에 따라 세상은 달라지지 않을까요?”
전수경 노동건강연대 활동가
* 노회찬 재단 × <한겨레21> 공동기획 ‘내 곁에 산재’: 일터에서 다치고 아픈 이들을 만난 이야기를 전하는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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