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69시간 노동이 온다…. 온 나라가 쑥대밭이 된 지 20일이 지나고 있다. 정부가 노동시간 개편안을 내놓고는 거둬들이지 않는 것을 보면 그냥 찔러본 것은 아닌가 보다. 정부가 개편안을 철회한다 해도 이 소동으로부터 영감을 받은 어딘가에서는 노동시간이 선을 넘고 있을지 모른다.
일하는 직장이 명색이 ‘노동’과 ‘건강’을 다루는 곳이지만 활동을 시작할 때만 해도 ‘건강’은 정말 몰랐다. 1990년대 중반까지도 건강에 좋은 녹즙이나 홍삼 파는 곳으로 알고 문의전화가 오던 시절이었다고 하니 ‘노동’과 ‘건강’을 연결하지 못한 것이 그렇게 별난 일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나 ‘과로사상담센터’를 따로 운영할 만큼 ‘과로사’ 문의가 폭주하던 때이기도 했다. 바야흐로 21세기. 노동을 둘러싼 거의 모든 것이 건강에 영향을 미치며 직업뿐 아니라 소득과 교육수준, 사는 지역에 따라서도 건강상태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은 동시대 시민들의 상식이 됐다. 하지만 상식이니 시대적 흐름이니 하는 것이 이리도 가볍게 뒤집힌다. 호떡집에 불이 나면 이런 모습일까. 우리 사무실은 다시 노동시간과 건강 영향에 대해 부산스럽게 자료를 찾고, 전문가 인터뷰를 기획하고, 다달이 산재로 사망한 노동자들의 ‘사망 이유’에서 ‘과로’를 분류하고 있다.
2023년 3월23일, 서울에서 인천으로 향한다. 대기는 제법 푸근한데 미세먼지로 부연 경인고속도로는 봄이 오는 기운 같은 건 느낄 수 없다. 아주 가끔 지나는데도 도로는 여전히 공사 중이다. 고속도로와 나란한 각진 공장들 안에서는 무엇이 생산되고 있을까. 새순이 돋아나는 나무 같은 건 보이지 않는다. 공공운수노조 공항항만운송본부 이경호 사무국장에게 노동시간이 불규칙하면서도 노동시간을 다 채워 일해야 하는 노동자를 소개해달라고 했더니, 인천 송도신도시로 실어다 주는 길이다. 신도시의 카페는 서울에서는 보기 어려운 스케일이다. 앉은 자리 창밖으로 인천신항이 보인다.
갑자기 24시간 근무가 잡히는 바람에 다시 잡은 자리였다. 김영재(51·가명)는 인천신항에서 컨테이너 하역 크레인을 운전한다. 고공 45m의 캐빈(운전석)에 앉아 지상을 보며 크레인을 작동할 때의 벅찰 것 같은 기분, 40t 컨테이너를 초당 4m로 옮기는 아득한 무게와 속도에 대해서는 묻지 못했다. 일하다 아름다워서 찍었다는 항구의 야경 사진도 보여주었지만 막상 이야기는 온통 노동시간 문제다. 근로기준법 제59조에 육상, 수상, 항공 운수업은 노동시간과 휴게시간에 특례를 뒀는데 김영재의 일이 이 특례에 해당한다. 근로기준법에 12시간까지만 가능한 연장근무보다 더 연장할 수 있고, 4시간마다 30분, 8시간에 1시간의 휴식을 생략하고 연장근무를 필요한 만큼 한 뒤 11시간 이상을 쉴 수 있다는, 그러니까 김영재는 지금 정부가 내놓은, 몰아서 일하고 몰아서 쉴 수 있다는 노동의 미래를 미리 실현하는 중이다.
김영재는 27년 전 대기업 물류회사 항만사업부에서 크레인 업무를 시작했다. 9년 전 회사가 항만·물류 사업을 접으면서 부서가 없어졌다. 물동량도 늘어나지만 국내 항만 사이의 경쟁도 치열해지는 때였다. 회사를 옮겨 일을 계속해야 했지만 월급은 반으로 줄었다. “컨테이너 하역 요금이 낮아져서요?” 물류 전문용어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한마디를 물었다. “(하역료가 낮아지니) 노동자의 노동조건이 우선 하락하겠죠.” 김영재가 고개를 끄덕인다. 임금은, 기본급을 최저임금 수준으로 확 낮추고 연장근무를 하는 만큼 임금이 더해지게 짜여 있었다. 인력은 약간의 여유도 없이 운영되니 쉬는 줄 알고 있다가도 나오라는 연락을 받는 일이 다반사가 되었다. 화물을 선적한 배들은 예정된 시간이 있긴 하지만 기상 상황으로 당겨질 때가 있고 밀릴 때가 있으니 근무시간표도 밀었다 당겼다 엿장수 맘대로가 되어갔다.
2월1일에서 28일까지 김영재의 한 달은 평일과 주말까지 연속 6일을 낮에 일한 뒤 하루 쉬고는 밤샘근무를 3일 연속 한다. 다시 하루 쉬고는 밤샘근무. 밤밤낮낮…. 근무시간표 옆에는 연장근무 3시간, 야간근무 7시간… 초과 노동시간이 계산되고 있다. 3월 첫 주에도 김영재는 저녁 7시부터 다음날 아침 7시까지 밤샘근무를 3일 연속 하더니 3일째 되는 날은 새벽 근무 후 퇴근하지 못하고 아침 8시부터 저녁 6시까지 근무를 한다.
회사가 작성해서 주는 ‘근태 현황’에 김영재의 2023년 1월 총 노동시간은 239시간, 2월 총 노동시간은 233시간이다. 주 40시간씩의 기본 노동 외에 1월에 연장근로 92시간, 야간근로 91시간. 2월에 연장근로 74시간, 야간근로 77시간. 여기에 주말 근무들. 이렇게 해서 기본급보다 연장수당이 더 많은 임금구조가 만들어진다.
연장근무를 덜 하면? 4인 가족 생활이 팍팍하다. 밤샘근무 때는 동료들과 하역할 배를 나누면서 대기실에서 틈틈이 자고 쉰다. 그러나 몸은 적응하지 못한다. 30분만 더 근무가 늘어나도 신경이 팽팽해진다. “야간 했는데 바로 주간이야.” 오가는 말에 대기실 공기가 차가워진다. 밤샘근무가 계속 잡히다가 집에 가는 일은 ‘출옥’이 됐다. 기이한 근무시간표와 날 선 동료들. 서로 참는다. 가장이니까.
연속해서 쉬는 날은 어떻게 해서든 사이클을 탄다. 회사를 옮기기 전 아마추어 철인3종경기 선수였던 김영재는 1종이라도 건지려고 애쓴다. “사람이 태어나서 유년 시절을 보내고 사회 나와서 직장을 다녀요. 오로지 회사만 생각하고 회사 동료만 본다고요. 돌아버리겠어요.”
노동시간은 노동자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시간의 감옥에 갇혀 ‘돌아버린다’.
전수경 노동건강연대 활동가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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