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은 밝고 공기는 맑은 2022년 5월7일. 건설현장을 찾아간다는 건, 봄날의 토요일과 어울리지 않는 일처럼 생각됐다. 서울에서 대중교통으로 인천시 송도 건설현장까지 가는 것은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 서울 마포구 합정역에서 탄 광역버스가 경기도 부천을 거쳐 인천으로 가는 동안 경유한 정류장의 이름은 온통 아파트 브랜드였다. 버스는 갈 수 있는 아파트는 다 들르는 듯했다.
수많은 아파트를 지나쳐 공장과 산업설비를 짓는 플랜트 건설현장에 도착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4공장을 짓는 현장 앞에서 거대한 사각의 구조물과 타워크레인들을 올려다보았다. 차가운 철의 질감 어디에 사람 손길이 닿는지 알 수 없었다. 이곳에서 용접사로 일하는 최현(45)씨를 점심시간을 이용해 만나기로 약속했는데, 건설현장은 가늠이 안 될 정도로 넓었다. 알려준 곳을 찾지 못하고 헤맨 덕분에 대형 공사현장의 점심시간 풍경을 처음 보았다.
공사장 밖 조경을 위해 조성해놓은 녹지에 사람이 누워 있었다. 안전화에 작업복을 입고 땅에 누워 낮잠을 자는 첫 번째 사람을 발견했을 때, 놀라움에 멀리서 사진을 찍었다. 약속 장소를 찾아 발을 옮기니 이내 나무 아래마다 누워 있는 사람 수가 늘어나더니 밀집도가 높아졌다. 자연 다큐멘터리에서 본 적 있는, 물개나 바다사자가 모여 있는 장면과 비슷했다.
최현씨를 만나자마자 낮잠 풍경을 말하며 웃음 반 탄식 반 인사를 건넸다. “오늘은 (사람이) 적은 거예요. 토요일이라 덜 나왔거든요.” 우리는 나무 아래에 앉을 자리를 선점하지 못했기에, 녹지 가장자리 인도 맨바닥에 앉았다. “웃기고 속상하죠. (이곳에서 일하는) 3천, 4천 명이 있는데 휴게실이 멀고 다 수용을 못해요. 식당 옆에 의자가 있길래 세어봤는데 200개 정도 되더라고요.”
최씨는 이곳 현장에 온 지 한 달 남짓 됐다. 4공장은 2022년 말 완공을 목표로 공사가 한창이다. 벗어놓은 안전모에 ‘최현’이라는 이름이 크게 쓰인 초록 스티커가 보인다. “이름 잘 보이라고 크게 붙여요.” 최씨가 속한 하청업체에는 300여 명이 고용돼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4공장 건설현장에만 하청업체가 수십 개 있다. 이들이 따라야 하는 여기 현장의 룰이 있다.
“다른 현장은 8시간 단위로 일하는데, 여긴 9시간 노동에 일당은 낮아요. 그런데 왜 사람이 많냐? 아침 7시부터 오후 5시까지가 한 공수(일당을 주는 표준 노동시간)인데, 저녁 7시30분까지 잔업을 하면 반 공수, 밤 10시까지 야간작업을 하면 한 공수가 더 붙어요.” 일당이 낮은 대신 하루에 두 공수만큼 일해서 더 많이 벌 수 있다. 노동환경이 좋지는 않다. “해양 쪽에서 일할 때는 노동조합이 있어서 환경이 좋았어요. 휴식시설도 다 있었죠. (이곳은) 생명을 구하는 제약회사에서 공장을 짓는데 노동자가 쉴 수 있는 공간이 없어요.“
전국에 용접일을 다니던 최씨는 집이 있는 인천과 가까워 이곳에 일을 잡았다. 16년 전 건설현장에서 일을 시작해 플랜트 용접으로 옮긴 지는 9년 됐다. 조선소의 해양플랜트에서 일하다가 육지의 플랜트 현장으로 왔다. “건설에서 바닥을 해주면 플랜트 노동자들이 들어가서 물탱크, 가스탱크, 배관, 기계설비를 해요. 거제, 울산, 여수, 포항, 충남 같은 곳은 플랜트 현장이 커요. 수도권 현장들은 해양보다는 작죠.”
용접사의 일은 어떤 것일까. “용접은 이물질이나 공기가 들어가면 안 되는 정교한 작업이에요. 배관사가 도면을 보면서 배관하면 용접사가 용접해요. 5천℃, 6천℃의 불빛을 보면 눈이 타기 때문에 흑유리로 된 보안면을 쓰죠. 토치의 불과 용접봉을 조절해요. 반도체나 바이오 공장 작업으로 기량이 늘기는 어려워요. 석유화학처럼 고압의 두꺼운 파이프나 발전소의 카본파이프처럼 어려운 용접이 있어요. ‘용접하면 카본은 해야지’ 하죠. 에쓰(S)오일, 케이씨씨(KCC) 공장 보면서 내가 지었는데, 예쁘잖아, 행복해하고요.” 글과 말로는 알 수 없는 것이 있다.
“용접기를 잡으면 움직이지 못해요. 파이프가 있는 구조물 틈새에 들어가서 매달리고 쪼그리고, 큰 관을 떨어지지 않게 여러 번 돌리면서. (돌린다?) 내가 (몸을) 돌린다는 뜻이에요. 고열에 땀을 쏟으며 하니까 2시간 일하고 30분 쉬어요. 안 쉬면 쓰러져요.” 일의 강도를 조금은 알 것 같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돼서인지 관련 교육이 늘었다. 정확히는 교육이 아니라 ‘사인’(서명)이 늘었다. “다달이 안전교육을 한다고 교육장에 가요. 사인지를 줘요. 한 장에 4시간짜리예요. 6장에 서명하고 자리를 바꿔가면서 사진을 찍어요. 사고 나면 교육했다, 노동자가 잘못한 거다, 이 말 하려는 거겠죠.”
“몇 년 전 다른 현장에서 조공(용접일을 돕는 조수) 형님이 추락했어요. 조공 형님이 잘못했다면서 회사가 산업재해를 안 해주는데 아무도 신경을 안 써줬어요. 노동조합 친구에게 도움을 받았죠.” 그 후 노동조합에 가입했다. ‘전국플랜트건설노동조합’이다. “사고는 계속 일어나요. 크레인이 움직이면서 손이 끼이고, 케이블 리프트가 움직이면서 목이 끼이고, 체인 블록이 풀려서 찍히고, 골절되고.” 이런 사고는 산재로 집계되지 않는 ‘공상’으로 치료한다.
“아침 7시 일을 시작하려면 새벽 5시에는 집에서 나와야 해요. 4~5시에 출근해야 주차장에 자리도 있고, 아침도 먹을 수 있고, 6시40분에 조회도 할 수 있죠.” 수천 명이 일하는 현장인데 모든 것이 부족하다. 화장실은 부족하고 휴게실은 좁다. 물을 마시려면 20분을 걸어가야 한다. 그래서일까. 들어오는 사람도 많지만 절반은 나가는 것 같다. 불법이지만 ‘보따리’라고 하는 소사장들과 조공(조수)들의 일당에서 일부를 돌려받는 ‘똥띠기’도 여전하다.
화기 감시, 고소작업대 유도 같은 일을 하는 여성노동자가 이곳 현장에만 800명은 되는 것 같다. “화장실 가도 줄은 길고 다 부족한데, 여성은 말할 것도 없죠.”
공사를 발주한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이런 현장의 아우성을 들으면서도 개선하지 않는다. “돈 주잖아, 노동강도 세지 않잖아, 원청은 이런 말을 하는 것 같아요.” 돈을 더 달라는 것이 아니라 휴게실과 화장실을 더 지으라는 건데 기업은 해줄 생각이 없어 보인다. 인터뷰가 끝날 무렵 점심시간이 끝나가고 있었다. 봄날의 토요일, 나무 아래 누워 있던 노동자들이 공사현장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글·사진 전수경 노동건강연대 활동가
*노회찬 재단 × <한겨레21> 공동기획 ‘내 곁에 산재’: 일터에서 다치고 아픈 이들을 만난 이야기를 전하는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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