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월급이 해마다 1만원도 안 올라…이상해서 공무원에게 물었다

[[노회찬재단X노동건강연대]
용인시청 민원여권과 공무직 노동자 박은정씨의 여권 만드는 보람
행정사무직군 첫 노동조합원 “즐거운 여행처럼, 즐거운 일터를…”
등록 2023-06-02 08:50 수정 2023-06-08 05:07
경기도 용인시청 민원여권과에서 일하는 공무직 노동자 박은정씨.

경기도 용인시청 민원여권과에서 일하는 공무직 노동자 박은정씨.

장마철인 듯 큰비가 온 연휴, 티브이(TV) 앞에 앉아 리모컨 버튼을 누르는데 온통 여행프로그램이다. 노르웨이의 빙하동굴에서 포르투갈 어느 언덕의 석양까지 TV 속 사람들은 다 유럽에 있다. 코로나19 봉쇄가 해제된 지 그리 오래된 것 같지 않은데 언제 다들 나간 거지? 빗소리를 들으며 부지런한 사람들의 여행기를 구경하는 기분도 괜찮다.

여행에 들뜬 이들이 찾는 사람

“인생의 텐션이 ‘업’된 분들이 오시는 거죠. 여행은 준비할 때부터 기쁘잖아요.” 여권 접수 업무를 직업으로 가진 사람에게도 여권을 만드는 일은 특별하고 낭만적인 일이다. 2023년 5월25일 오후 연휴가 시작되기 전 찾아간 경기도 용인시청의 민원여권과. 유리 칸막이마다 번호표시기가 세워진 접수창구들, 대기하는 이들의 좌석이 가득 찬 넓은 공간이 어딘가 들떠 보인다. 여행객들이 한바탕 모였다가 막 출국한 공항이 떠오르기도 한다.

용인시청 민원여권과 박은정, 10년차 여권 접수 전담 직원이다. 외교부의 여권 업무를 각 지방자치단체가 대행한다. 군더더기 없는 말투, 또박또박한 발음, 단정한 매무새가 딱 베테랑 공무원이다. 공무원 하면 연상되는 이미지를 다 갖춘 그는 2013년 용인시청이 여권 접수를 전담하는 무기계약직 노동자를 뽑을 때 채용됐다. 지금은 공무직 노동자라 부른다. 용인시청 민원여권과에는 공무원과 공무직이 함께 일한다. 주민센터나 구청에 갔을 때 내 일을 처리해주는 어떤 이는 공무원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업무는 다르지 않다.

인구 100만 명이 넘는 용인시는 여권 수요도 많다. 여권 신청은 사이클이 있다. 곧 6월, 여름휴가와 방학을 앞두고 바빠질 것이다. 추석 연휴를 앞둔 8월 다시 바빠진다. 겨울방학과 연말 시즌을 앞둔 10월에도 줄이 길어진다. 외국 학교에 가는 사람이 많다. 새 학기를 앞둔 1월과 2월도 북적인다. 여권 신청에는 준비할 서류가 많다. “여권은 국제신분증을 만드는 일이니 정확해야 해요.” 영문 이름의 알파벳 한 자만 달라도 출국을 못할 수 있고 항공권, 여행비 등 줄줄이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자주 있지는 않지만 간간이 일어난다. 신청서와 서류를 1차, 2차, 3차 확인한다. 여권 사진은 규정이 중요하기에 잘 챙길 것 같지만 안 되는 사진을 들고 와서 해달라고 큰소리치는 이도 있다.

“바쁨의 극을 칠 때가 있어요.” 2010년 시작된 전자여권 제도, 5년 뒤 갱신 기간이 다가온 2015년이 그랬다. 2020년에는 코로나19 봉쇄가 있어서 넘어갔다. 2023년이 됐다. 코로나19 봉인이 해제되면서 대기실 의자가 모자라기 시작했다. “봇물 터지듯이 밀려드는 거예요.” 오후 6시까지 번호표를 뽑은 사람들의 접수를 마치면 저녁 7시30분, 8시가 됐다. 셔터 내리고 밤 10시까지 서류 검토 업무를 했다.

“여행을 다녀본 분들은 느낌을 아니까요.” 다른 나라로 향하는 그 느낌의 시작, 코로나19 이후의 여권 접수 창구는 설렘과 조급함으로 붐볐다. 나라마다 다른 입국절차를 묻는 이, 대사관 위치를 묻는 이, 분쟁국의 여권정책을 묻는 이. 접수와 함께 질문도 터져나온다.

근골격계 검진에서 ‘집중주의대상’

긴급여권 신청도 많아졌다. 긴급여권은 5~10일 걸리는 발급 기간을 거치지 않고 당일에 받는 임시여권이다. 가족이나 친인척의 사고, 사업상 긴급한 출국 등에만 발급하는데, 코로나19 봉쇄가 풀려 급히 나가야 하는 이가 많아졌음을 실감한다. 긴급 발급이니까 더 긴장한다. “급한 여권이군요. 빨리 만들어드릴게요.” 안심시키기도 한다. 가족 장례로 급히 출국했다가 돌아와 ‘덕분에 잘 다녀왔습니다’ 감사 인사를 전한 이도 있다.

떠나는 자의 들뜬 마음은 때로 레이저를 쏘기도 한다. 창구에 앉은 박은정의 앞에 번호표를 손에 쥔 사람들이 매의 눈으로 창구를 노려본다. 물 한 모금 안 마시고 다음 번호를 누른다. 업무용 컴퓨터 오른쪽에는 스캐너, 천공기, 수수료를 위한 카드결제기가 있다. 스캐너 뚜껑을 열고 서류를 올리고 뚜껑을 덮고 스캔 버튼을 누른다. 천공기로 팡! 팡! 서류에 구멍을 뚫는다. 사진에 이물질은 없는지, 알파벳 이름은 정확한지 체크한다. 모니터를 보는 눈이 시큰하다. 몸은 항상 오른쪽으로 틀어져 있다. 어깨, 허리, 다리가 저리다. 시큰시큰하다. 허리도 손목도 보호하기 위해 애쓴다.

2022년 용인시청 공무직 노동자들이 근골격계 직업병 건강검진을 했다. 검진 결과는 ‘관심대상’보다 높은 ‘집중주의대상’. 많이 아프면 약물 주사를 맞으라고 의사는 말하지만 박은정은 용인시가 업무환경을 개선하고 노동자의 건강에 책임 의식을 갖기 바란다. 후배 공무직 노동자가 있기 때문이다.

박은정은 용인시청 행정사무직군 가운데 처음으로 노동조합에 가입한 조합원, 지금은 전국민주연합노조 용인지부 부지부장이다. 2017년, 월급이 해마다 8천~9천원 오르는데 이걸 임금인상이라 할 수 있나? 이상해서 공무원들에게 물었다. 같이 일하는 공무원들도 놀란 액수였다. 노동조합에 가입한 현장직 조합원들은 시청과 임금 교섭을 계속했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은 임금이 제자리였음을 그때 알았다. 현장직 노동자가 시작한 노동조합이 사무직 노동자에게로 확대되는 순간이었다.

후배에게 나은 일터를 물려주기 위해

박은정은 공무원 동료들과 공존하며 일하고 싶다. 임금체계도 복지도 공무원과 다르다는 것은 수긍한다. 그러나 부모님 돌아가실 때, 아이 학교에 가야 할 때, 병났을 때 휴가일수에 차이를 두는 건 너무하다. 박은정의 아이들은 다 컸지만 후배들은 자녀돌봄 휴가를 쓰면 좋겠다. 남편이 든든하게 응원했다. 박은정을 시작으로 200명 넘는 여성 행정사무원이 조합원이 됐다.

여권 접수를 마치고 돌아서는 이를 보면서, 지금이 인생의 좋은 순간이구나! 알 수 있다. “즐거운 여행 되세요.” 인사하는 기분이 좋다. 자기 일을 사랑하는 그는 노동조합도 사랑한다.

글·사진 전수경 노동건강연대 활동가

*내 곁에 산재: 모든 노동자가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날을 꿈꾸며, 일터에서 다치고 아픈 이들의 이야기를 기록합니다. 3주마다 연재.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