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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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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2만 보 걸어야 겨우 출퇴근한다

[노회찬재단X노동건강연대]
도시인은 출근시간 지키느라 관심 없는 장애인 활동지원사의 분투기
지하철 4~5대 보내야 탈 기회 얻고 저상버스는 성급히 떠나버려
등록 2023-02-03 16:11 수정 2023-02-10 07:25
2022년 4월 서울 시내에서 휠체어에 탄 장애인이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 택시에 오르고 있다. 김진수 선임기자 jsk@hani.co.kr

2022년 4월 서울 시내에서 휠체어에 탄 장애인이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 택시에 오르고 있다. 김진수 선임기자 jsk@hani.co.kr

장애인 활동지원사는 보건복지부의 위탁을 받은 교육기관에서 정해진 기간의 교육을 이수하고, 지원을 신청한 장애인 이용자와 지원사가 매칭되는 방식으로 일한다. 위탁기관과 근로계약을 맺고, 위탁기관 명의로 4대보험에 가입하고, 급여 역시 기관을 통해 지급된다. 국가재정으로 운영되지만 민간기관에 위임하는 식이다. 장애인 활동지원사에 응하는 이들은 50~60대 여성이 가장 많다. 아주 드물게 20~30대 지원사를 볼 수 있다. 장애인 활동 지원은 신체활동·가사활동·사회활동 지원으로 구분하는데,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일을 지원하는 것이다.

활동지원사 무릎이 ‘나가는’ 이유

이번에 만난 이는 서울에서 휠체어로 출퇴근하는 장애인을 지원하는 활동지원사다. 모든 일의 시작은 이렇다. 먼저 직장에 가야 하는 장애인이 집을 구한다. 지하철역에서 가까운 아파트며 오피스텔은 전세로 해도 큰돈이 필요하고, 월세를 많이 낼 만큼의 급여는 되지 않는다. 엘리베이터가 있는 지하철역에 점을 찍고 방값이 싸면서 역까지 닿을 수 있는 지점에 선을 긋는다. 산일까 언덕일까. 높은 곳에 있는 빌라에 선이 멈춘다. 장애인이 활동지원을 신청하고 출퇴근을 함께 할 지원사를 만난다.

지도로 그은 선은 직선이지만 현실은 구불구불하다. 휠체어와 두 사람의 도시여행이 시작된다. 언덕을 내려와 지하철역 엘리베이터, 환승 통로, 환승 엘리베이터, 지상으로 올라와 인도·차도·횡단보도를 건너 직장이 있는 건물 입구까지 이어진다. 퇴근길의 여정도 같다. 언덕이 오르막길이 되는 것만 빼면.

출퇴근 지원 6개월이 지났을 때 20대 활동지원사인 그는 스마트폰에 날마다 2만 보를 찍고 ‘무릎이 나갔다’. 도시의 생활인들은 옆을 볼 여유가 없다. 지하철 안에서 꿈쩍도 하지 않는 앞사람을 밀고 나갈 힘이 없어 다음 정거장까지 가본 적이 있는 한 사람으로서 말하자면 그렇다. 물리적 힘이 약한 나는 무선 이어폰을 끼고 앞만 보고 서 있는 승객이 바위처럼 보이지만, 그는 바위가 될 의지가 있어서라기보다는 그냥 자신의 출근시간을 지키려 그 자리에 서 있을 뿐이다. 나의 지하철 풍경이 출퇴근을 지원하는 활동지원사에게는 노동조건이다.

2만 보의 시간을 휠체어에 앉아 헤쳐나가는 장애인 이용자와 2만 걸음을 걸어야 출근 지원을 마치는 활동지원사. 장애인의 출근길이 덜 고되어지면 활동지원사의 무릎 통증도 나아지지 않을까.

엘리베이터 고장나 연락하니 “다음 역 가서 타라”

나는 휠체어와 두 사람을 따라 도시를 둘러본다. 인도는 울퉁불퉁하다. 오래된 동네라면 그러려니 할 수 있다. 거친 느낌으로 멋내서 인도를 꾸미느라 덜컹거리는 길이 많아진다. 휠체어를 미는 활동지원사의 신경이 곤두선다. 어깨도 팔도 후들거린다. 폭이 좁은 인도가 이렇게 많았나, 가로수는 좋은데 길 폭이 좁아서 걷는 이들도 가로수 기둥을 끌어안다시피 지나는 길이 있다. 차도로 내려간다. 활동지원사도 휠체어도 아슬아슬하다. 차가 빵빵거리거나 교통경찰을 만나 핀잔을 들은 적이 있다. 위험한 것을 몰라서 차도로 가는 게 아니다. 별수가 없다.

사방으로 나 있는 지하철 출구 중 엘리베이터가 설치된 한 출구로만 오갈 수 있다는 건, 그 시설이 고장나거나 점검이라도 하면 역으로 내려갈 수 없다는 얘기다. 역으로 전화하니 기다리거나 다음 역으로 가서 열차를 타라고 한다. 활동지원사는 휠체어를 밀고 다음 역까지 걷는다. 승강장에서 열차 문이 열리기를 기다린다. 출근하는 사람들은 뚝심 있게 밀고 들어간다. 활동지원사는 휠체어와 함께 비집고 들어갈 엄두가 안 난다. 지하철 네댓 대를 보내면서 기회를 잡는다.

버스를 타야 할 때는, 탈 기회가 좀처럼 안 온다. 서울에 다니는 버스의 반은 저상버스라고 하는데 , 사람이 조금만 많으면 버스 문은 성급히 닫힌다 . 휠체어를 탄 이용자와 활동지원사는 버스 정류장에 그대로 남겨진다 . 버스 기사가 경사로를 내려주겠다고 하더니 그냥 가버리는 건 무언가 . 두 사람은 자주 정류장에 남겨진다 .

수동 휠체어일 때는 장애인 콜택시를 부를 수 있다. 언제는 10분 만에 오던 택시가 3시간이 지나도 안 올 때가 있는데 그 원리를 모르겠다. 활동지원사는 근무시간이 끝났지만 외딴곳에 이용자를 두고 퇴근할 수 없다. 약속에, 출근에 너무 늦을 때는 휠체어를 밀면서 걷고 전동 휠체어일 때는 옆에서 걷는다.

약속 장소도 사전 답사 한 뒤 잡아야

생각보다 그렇게 가끔 있는 일은 아니다. 식당에서 약속을 잡아야 할 일이 생기면 활동지원사는 사전 답사를 한다. 경사로가 있고, 식탁 사이 공간이 있고, 장애인용 화장실이 잠겨 있지 않거나, 청소도구가 들어 있지 않거나, 옆 건물에라도 장애인용 화장실이 있어야 식당을 잡을 수 있다.

앞의 일들이 한번에 일어나면 활동 지원 이용자와 활동지원사는 매연과 미세먼지로 호흡기가 먼저 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호흡기를 걱정할 만큼 출근과 외출과 식당에서의 약속을 과감히 자주 잡을 수 있으면 좋겠다. 걸어도 걸어도 활동지원사는 더 많이 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 아비치의 음악 <헤이 브러더>(Hey Brother)가 자꾸 생각난다. 네가 부르면 옆에 있어주겠다고 담담하게 노래하다가, ‘다시 찾아내야 할 끝없는 길이 있어’(There’s an endless road to rediscover)라고 말해준다 . 참 단순하다는 걸 인정하면서 이 노래가 오늘 만난 두 사람의 이야기처럼 생각된다 .

전수경 노동건강연대 활동가

* 모든 노동자가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날을 꿈꾸며, 일터에서 다치고 아픈 이들의 이야기를 기록합니다. 3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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