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의 비라기엔 세차게 내린 12일 토요일. 가을 분위기를 제법 내던 가로수 잎들이 맹렬하게 떨어져 거리에 쌓인다. 인도에 떨어진 잎들을 밟으니 발이 미끌, 엇나간다. 골목에 사람은 안 보이고 온통 배달 오토바이다. 비 오는 주말 저녁, 도시 사람들은 배달앱을 누르고 음식을 기다린다.
배달노동자 김민지(가명)씨를 처음 봤을 때, 부탁했다. 여성 라이더는 드물기에, 언젠가 일하는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몇 달이 지났다. 약속을 잡으려 연락하니 배달일을 그만뒀다고 한다. 건설현장 안전요원으로 일을 막 시작한 민지씨를 만났다. 배달노동자일 때는 경기도의 한 도시에서 만났는데, 건설일을 시작하더니 충남으로 오라고 한다.
스물한 살에 시작해 스물네 살이 된 지금까지 민지씨는 3년 넘게 배달노동자로 달렸다. “자취하는데 월세가 55만원, 병원비도 다달이 들어가야 하는데 방법이 없는 거예요. 오토바이 타보니까 잘 타지더라고요.” 스무 살에 대형 쇼핑센터 보안요원으로 일을 시작했지만 갑상샘 질환이 발견돼 치료를 시작했다. 병원 갈 일이 잦아지면서 근무시간을 조절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싶었다.
배달노동은 사장에게 “병원에 들렀다가 출근할게요”라고 말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좀 지난 뒤, 배달노동자가 생각처럼 자유로운 직업이 아니며 어쩌면 돌이킬 수 없는 길로 들어선 것과 같음을 알았다. 오전 9시부터 밤 10시까지 일하고 일주일에 하루, 평일에 쉬었다. 병원에 가는 등 사정이 있어서 쉬어야 할 때는 1~2주 전에 미리 말해야 했다. 4대 보험은 없었다. 아, 의무 가입해야 하는 고용보험만 배달 한 건당 받는 돈의 0.7%를 뗐다.
“무서워요. 사고도 크게는 아니지만 몇 번 났고.”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는 배달노동자들이 “뭘 그거 가지고 무서워해?” 한마디씩 하고는 했다. “신호 ‘째기’가 무서워요. 작은 신호는 째요. 인도 타고 가도 돼요. 그런데 큰 도로에서도 무서운데 해야 돼요.” ‘째기’는 빨간불일 때 신호를 무시하고 달린다는 뜻이다. 만약 교통법규 지키며, 인도를 타지 않고 도로에서 신호를 기다리면 어떻게 될까. 사무실로 불려간다. 민지씨 말로는 ‘개혼난다’. “너는 배달을 나온 거야, 드라이브를 나온 거야?” 정말 무서운 말은 이제부터다. “그런 식으로 탈 거면 처음에 빌린 돈 싹 다 갚고 나가.”
민지씨 말로는 배달대행회사에 ‘가불’ 제도가 있다. 오토바이를 타고 배달하는 노동자에게 일을 시작하기 전에 돈을 빌려준다. 사람에 따라 ‘가불’ 금액이 몇백만원도 있고 더 큰 돈도 있다. 돈이 필요해도 은행대출이 쉽지 않은 배달노동자에게 회사가 대부업을 하는 것이다. 하루에 얼마씩 갚아야 할 이자가 생긴다. 회사는 그날의 배달수입에서 이자를 차감한다. 일을 시작하면서 빌리는 오토바이 대여비에 기름값, 타이어와 소모품 사는 비용, 수리비까지 라이더가 이미 기본으로 빚지면서 시작하는 셈인데 비싼 이자까지 물어가며 회사에서 대출도 받는다. 민지씨가 일하던 같은 구역의 사무실 라이더 30여 명 중 회사에 빚이 없는 사람은 3명 정도였던 것 같다. “젊은 애들이 목숨 걸고 타는 이유가 그거예요.” 스물네 살의 배달노동자가 ‘젊은 배달노동자들’의 위험한 운전의 비밀을 말해준다. “자기 가져갈 돈은 있어야 하니까.”
산업재해보험은 생각할 겨를이 없다. 교통사고가 나도 회사는 당연한 듯 출근하라고 하지만, 대출금 이자를 생각해서도 누워 있을 수 없다. “강제 배차를 해요. 코스가 안 맞으면 진짜 힘들어요. 이쪽 가는 음식을 들고 있는데 저쪽도 가라.” 너무 늦어질 것 같아서 마음이 급한 날이었다. 달려야 하는데 오토바이 기름도 떨어졌다. 기름이 없으면 ‘꿀렁꿀렁하면서’ 속도가 20㎞가 안 나온다. 겨우 움직이는데 불법 주차한 차가 깜빡이도 라이트도 켜지 않은 채 민지씨의 오토바이를 박았다. 오토바이가 넘어지고 민지씨는 바닥에 굴렀다. 가벼운 뇌진탕에 다리뼈를 다쳤지만 수술할 정도는 아니었다. “사람 없으니까 출근해.” 민지씨가 들은 말이었다. 일을 시작하고 이틀째 되는 날에 승용차와 부딪쳐 119에 실려갔다가 걸어나온 적이 있다. 병원에서는 배가 오토바이에 깔려서 사진을 찍어봐야 한다고 했지만 본인 과실이라 돈을 내야 했는데 돈이 없었다. 앞바퀴가 비닐을 밟고 넘어져 화단에 손을 짚은 적이 있다. “사람 손이 이렇게 붓나” 싶을 정도였지만 비닐에게 화낼 수도 없다.
하루에 몇 건 배달할까? “죽어라 콜을 잡는 사람들이 있어요, 내일이 없는 것처럼.” 신호 다 제치고, 오는 차 무시하면서 ‘미친 사람’처럼 달려서 하루 60~80건, 100건까지도 하는 사람이 있다. 민지씨는 하루 25~30건을 했다. 평균 세 개의 콜을 동시에 잡는다. 가맹점(음식점)마다 표시한 시간이 있지만 빨리 나오는 곳, 늦게 나오는 곳이 있다. 여기에 맞춰서 들른다.
코로나19 유행 시기에 배달을 했으니 일은 많았지만 좋지만은 않았다. “‘병균’ 취급해요.” 배달 왔다고 문 열어달라고 하면 마스크에 비닐장갑을 끼고 나와서 카드를 손끝으로 꼬집어서 준다. 뒤돌아서면 바로 소독제를 뿌린다. “엘리베이터 타는데 유리로 다 보여요. 기분이 더럽죠.” 내가 가고 나서 그러면 몰라도, 이 집 다신 안 오고 싶다. 속으로만 생각한다.
여자 라이더라서 더 힘든 게 있는지 묻는 순간 큰 웃음과 함께 답이 날아온다. “장마철이야, 생리가 터졌어, 우비를 입어도 다 젖어요. 핏물이 종아리를 타고 흘러내려요. 죽을 맛이에요.” 생리대는 물을 먹어서 묵직해지고 오토바이 균형이 틀어질 때마다 생리가 쏟아진다.
라이더 일은 이제 안 할 거예요? 표정이 어두워진다. “라이더 체계는 쓰레기예요. 한번 엮이잖아요? 음식물 쓰레기통에 내 발을 담그는 것과 같은 거예요.” 한 달에 300만원을 벌었지만 돈은 모으지 못했다. 배달대행회사는 아직 빚을 갚으라고 연락한다.
“출근해야지. 오토바이 앉아서 시동을 켜요, 예열해요, 날씨 좋네.” 그러다가 민지씨 머리에 이런 느낌이 문득 박히는 날이 있다. “뭐지? 오늘따라 사고 날 것 같지?” 내게 음식을 갖다준 라이더도 이런 생각을 하며 일을 나온 것은 아닐까. 배달앱은 얼굴이 없고 인공지능(AI)은 마음이 없을지 몰라도 음식을 들고 온 라이더는 사람이니까.
전수경 노동건강연대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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