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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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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세종, 경쟁에서 공유로 가자

9년 만에 10만 명 이상이 세종시로 빠져나간 대전시, 다시 원도심 살리는 개발 계획… “넓은 단위로 계획 세우고, 서로 보완하는 것이 바람직”
등록 2021-12-08 01:17 수정 2022-01-26 11:30
2012년부터 2020년까지 9년 동안 11만 명의 대전 시민이 세종으로 이주했다. 세종으로 많이 빠져나간 지역 가운데 하나인 대전시 서구 월평동의 모습. 류우종 기자

2012년부터 2020년까지 9년 동안 11만 명의 대전 시민이 세종으로 이주했다. 세종으로 많이 빠져나간 지역 가운데 하나인 대전시 서구 월평동의 모습. 류우종 기자

지방이 쇠퇴한다, 소멸한다는 이야기는 나온 지 오래됐다. 2002년 노무현 새천년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제1공약으로 내세운 것은 ‘지역 간 균형 발전’이었다. 당시에도 이미 수도권-지방 사이 불균형 발전이 심각한 상황이었다.
지역 쇠퇴는 농촌에서 시작해 중소도시로 확산돼왔다. 농촌은 이제 쇠퇴 수준을 넘어 소멸할 것으로 우려된다. 어떤 농촌에선 더 이상 사람이 살지 않게 되는 것이다. 농촌의 소멸은 농업이란 보편적인 산업이 소멸함을 보여준다. 농촌의 소멸은 다시 중소도시의 극심한 쇠퇴로 이어졌다. 중소도시의 쇠퇴는 더 이상 농촌에서 유입할 인구가 없고 중소도시가 대도시와의 경쟁에서 완패했음을 보여준다.
지방의 쇠퇴는 최근 들어 더 극단적 상황으로 갔다. 농촌과 중소도시의 쇠퇴를 넘어 지방 대도시의 쇠퇴로까지 번지고 있다. 대도시는 이제껏 수도권 집중이라는 거대한 파도에 맞서는 ‘지방의 방파제’ 같은 존재였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부산을 시작으로 대구, 대전, 광주, 울산까지 모든 대도시에서 인구가 줄고 활력이 떨어지고 있다.
대도시 쇠퇴의 원인은 외적으로는 노무현 정부 이후 다시 수도권 집중이 가속됐기 때문이다. 2017년 지역내총생산(GRDP), 2019년 인구 통계에서 수도권의 비중이 모두 50%를 돌파했다. 대구, 광주, 울산은 수도권으로의 유출이 심각한 상황이다. 대도시 내적으로는 정부가 신도심과 신도시를 무분별하게 건설해 원도심이 공동화하고, 인구가 주변 지역으로 흩어졌다. 부산과 대전이 이 문제를 겪고 있다.
대도시 쇠퇴의 현실을 들여다보기 위해 2021년 10월18~22일, 11월23~25일 두 차례에 걸쳐 대전의 구도심과 신도심, 세종시를 찾아갔다. 대전시는 일제강점기부터 1990년대까지 정부의 집중 투자에 따라 건실하게 발전해온 대도시다. 그런 대전시가 어떻게 원도심 쇠퇴와 인구 유출의 양대 어려움에 빠졌는지 살펴봤다. 원인은 정부의 정책 실패에 있었다. ‘균형 발전’의 실패와 ‘신도시 개발’의 실패였다._편집자주

구도심과 신도시 사이에 낀 샌드위치. 현재 대전광역시의 어려움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이렇다. 대전의 어려움은 대한민국의 주요 지방 대도시들이 공통으로 겪는 어려움이기도 하다. 신도심이나 신도시 건설이 모두 중앙·지방 정부의 정책에서 나왔다는 점을 생각하면 ‘정부의 실패’라고도 볼 수 있다.

한국의 모든 대도시 인구 감소세

대전은 1905년 경부선 철도역이 들어섰고, 1932년 충남도청 소재가 됐다. 1973년 대덕연구단지가 건설됐고, 1977년엔 행정수도 후보지로도 거론됐다. 1985년 국립대전현충원, 1989년 대전권인 계룡시에 계룡대가 들어섰다. 1993년엔 세계박람회(대전 엑스포)가 열렸고, 1997년 정부대전청사가 들어섰다.

이런 정부의 대규모 투자에 따라 인구도 빠르게 늘어났다. 1935년 3만9천 명이던 대전 인구는 1949년 13만 명, 1960년 23만 명, 1970년 41만 명, 1980년 65만 명, 1990년 105만 명, 2000년 139만 명, 2010년 150만 명으로 급속히 늘어났다. 그러나 2013년 153만 명으로 정점을 찍은 뒤 오름세가 꺾여 2021년 10월 145만 명으로 줄었다.

인구 감소는 현재 한국의 모든 대도시가 겪는 일이다. 서울은 1992년, 부산은 1995년, 대구는 2003년, 광주는 2014년, 울산은 2015년부터 인구가 줄고 있다. 유일하게 인구가 계속 늘어난 인천도 2020년 인구가 줄기 시작했다. 지역 산업이 쇠퇴한 대구와 광주, 울산은 수도권으로의 유출이 인구 감소의 주요 원인이다. 반면 부산과 대전은 주변 도시로의 유출이 수도권 유출보다 더 많다.

대전의 경우, 인구가 감소세로 돌아선 것은 세종시의 영향 때문이다. 2012~2020년 전국에서 세종시로 순유입된 인구가 모두 24만5377명인데, 이 가운데 10만8638명(44.2%)이 대전시에서 이주했다. 세종시로 순유입된 인구 중 대전시 출신 비중은 2012년 37.4%에서 2014년 33.9%, 2016년 43.4%, 2018년 50.3%, 2020년 55.1%로 계속 늘어나고 있다. 이 추세면 머지않아 세종 시민의 절반 이상이 대전 출신이 될 것이다. 반면 수도권에서 순유입된 세종시 인구 비중은 2012년 35.5%, 2014년 33.9%, 2016년 25.8%, 2018년 16.9%, 2020년 8.1%로 급히 떨어지고 있다. 균형발전이란 세종시의 애초 건설 취지가 무색해졌다.

이렇게 9년 만에 10만 명 이상이 세종시로 빠져나가자 대전시는 여러 대책을 내놓았다. 2021년 1월엔 세종시로의 인구 유출을 줄이고 집값을 안정시키기 위해 대규모 주택 공급을 발표했다. 2023년까지 5만6천 채, 2030년까지 12만 채를 분양할 계획이다. 2021년 3월엔 대전 소재 대학을 다니는 다른 지역 학생들의 주민등록 이전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인구, 지역내총생산이 모두 뒤바뀐 28년

극약 처방도 내놓았다. 2020년 7월 허태정 대전시장은 행정수도 완성과 자족 도시 건설 등의 이유로 대전-세종 통합을 제안했다. 그러나 행정도시특별법 개정과 행정구역 개편 등 현실적으로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이 연장선 위에 있는 또 다른 정책은 대전-세종-충남-충북을 통합하는 ‘충청권 메가시티’ 건설 방안이다. 대전세종연구원은 이 방안을 담은 연구 결과를 2021년 11월29일 발표했다.

정해교 대전시 도시주택국장은 “이미 대전과 세종이 하나의 생활권인데, 현재의 행정구역은 너무 세분돼 있다. 좀더 넓은 지역을 두고 계획을 세우고 서로 보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단기적으로는 대전의 주거와 교육 환경을 개선해 유출을 줄여나가겠다”고 말했다.

대전세종연구원의 주혜진 책임연구위원은 “그동안 인구를 자원으로 보고 경쟁해왔는데, 이제는 서울-수도권처럼 생활·활동 인구 개념으로 바꿔야 한다. 그러면 대전-세종 간 인구 경쟁보다는 교통, 문화, 환경을 공유하는 관계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세종시가 대외적 고민이라면 구도심은 대내적 고민거리다. 대전시의 중심이 구도시(동구·중구) 쪽에서 신도시(서구·유성구) 쪽으로 옮겨가면서 구도심 쪽이 급속히 쇠퇴했기 때문이다. 서구 둔산동으로는 기존 도심에 있던 시청과 법원, 검찰청, 경찰청 등 20여 개 공공기관과 공기업, 언론사, 대기업 지사·본부, 문화예술시설, 대학 등이 옮겨갔다. 유성구로는 노은·관평·도안 등 새 주거지가 대규모로 개발됐고 충남대·한밭대, 언론사 등이 역시 구도심에서 이전했다.

이 점은 인구와 생산 측면에서 명확히 나타난다. 인구 규모는 1992년 동구 31만 명-중구 29만 명-서구 27만 명-대덕구 19만 명-유성구 7만 명 순서였으나, 2020년 서구 48만 명-유성구 35만 명-중구 23만 명-동구 22만 명-대덕구 18만 명 순서로 바뀌었다. 1992년 3위이던 서구가 1위, 5위이던 유성구가 2위로 뛰어올랐고, 1위이던 동구가 4위, 2위이던 중구가 3위로 내려앉았다. 동구·중구·대덕구에서 인구가 줄어든 반면, 서구는 2배 가까이, 유성구는 5배가량으로 늘어났다.

5개 구별 지역내총생산(GRDP)은 통계가 처음 조사된 2000년엔 대덕구 3조6천억원, 서구 3조3천억원, 유성구 2조9천억원, 중구 2조5천억원, 동구 1조7천억원으로 구별로 최대 2.1배 차이가 났다. 통계는 없지만, 1980~1990년대에는 동구와 중구의 지역내총생산이 최상위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2018년 유성구 13조6천억원, 서구 12조원, 대덕구 7조3천억원, 중구 4조9천억원, 동구 3조5천억원으로 그 격차가 최대 3.9배로 벌어졌다. 특히 1980년대까지 조용한 시골이었던 유성구는 인구와 지역내총생산의 급증으로 서구와 함께 대전의 중심 지역으로 급성장했다.

“대전역 쪽 혁신도시 지정, 공공기관 유치”

이런 원도심 지역과 신도심 지역의 격차를 줄이기 위해 대전시와 중앙정부는 대규모 원도심 재생 사업을 계획, 추진 중이다. 대전역 민자 역사, 대전역 동쪽에 마이스(회의·전시) 허브, 옛 충남도청에 컬처 허브, 대전역 서북쪽에 인쇄·웹툰·미용 등 도심 산업 플랫폼, 대전역 북쪽에 주택·상업·업무 복합 지역, 북은행동(은행1구역) 주상복합 재개발, 남은행동(으능정이) 대전극장 거리 활성화 등이 대표적 사업들이다. 그러나 아직 시작 단계여서 그 효과를 가늠하긴 어렵다.

대전광역시도시재생지원센터의 윤용석 팀장은 “장기간 원도심을 방치했기 때문에 이를 되살리는 데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든다. 그러나 다양한 사람들이 꾸준히 원도심을 살리려 노력해서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도시재생을 문재인 정부의 일로만 생각지 말고 긴 안목으로 추진하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대전시 박민범 정책기획관은 “그동안 원도심 공동화가 나타났고, 활성화 계획도 많이 나왔다. 특히 대전역 쪽을 혁신도시로 지정해 앞으로 국가 공공기관들을 유치하고 도심 쪽에 기업이나 산업, 주택이 들어올 수 있게 노력 중이다. 앞으로는 새로운 지역 개발보다는 원도심을 살리는 쪽에 더 집중하려 한다”고 말했다.

김규원 선임기자 che@hani.co.kr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정부광고 수수료를 지원받아 제작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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