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글을 쓰는 것도, 지면을 가진 것도 부끄러울 때가 있다. 별 재주도 없는데 분에 넘치는 자리를 차지한 건 아닐까 막막한 기분이 들 때 그렇고, 어떤 이야기를 전하는 사람이 나인 것 자체가 적당하지 않다고 느껴질 때 그렇다. 지금 하려는 이야기도 그렇다. 서울 노량진수산시장에서 회를 썰던 상인, 나세균의 부고다.
노량진수산시장 현대화 사업에 반대하던 상인들은 철거되는 옛 시장과 함께 쫓겨났다. 시장이 완전히 철거된 것은 2019년 9월이지만 퇴거 폭력은 신시장 완공을 앞둔 2015년부터 조용하고 꾸준히 일어났다. 가판대와 고무대야를 걷어차고 아무렇게나 사람을 때리는 하루 두 차례의 ‘공실 관리’와 10여 차례의 대규모 철거를 거치며 수십 년 장사하던 시장은 이미 지옥이 됐다.
쫓겨난 상인들은 노량진역 육교에서 농성을 이어갔다. 2020년 6월 수협은 이 육교의 한쪽 다리를 무너뜨렸고, 10월에는 강풍기와 고압의 물대포를 동원해 농성장을 공격했다. 국가인권위원회, 국민권익위원회, 서울시, 국회. 손을 뻗을 수 있는 모든 곳을 향해 도움을 요청했지만 어디도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은 채 6년의 시간이 흘렀다.
나세균. 그의 사인은 식도정맥류였다. 간경화 합병증이었다는 병명을 들은 동료들은 “수협이 죽였다”며 울었다. 수산시장에서 당한 폭력 이후 나세균은 술 없이는 잠들지 못했다. 착하고 수줍음 많던 그의 간이 까맣게 문드러진 것은 수협 때문이라고, 이 모든 문제를 방치한 서울시 때문이라며 사람들이 울었다. 우는 사람들의 속도 새까맣게 타버린 지 오래다. 2019년 조사에 따르면 싸우는 수산시장 상인의 79.1%가 우울증 위험군이었다.
상인들과 연대하는 시민대책위원회 활동가는 철거가 예고될 때마다 언론으로부터 “몇 시쯤 철거할 것 같냐” “몇 명이 동원되냐”는 질문을 반복해서 듣는 게 힘들다고 했다. 아비규환 뒤에는 “연행자나 부상자는 없냐”는 질문이 돌아왔다. 하루하루를 견뎌온 시간은 ‘부상자와 연행자 몇 명’이라는 속보로 짧게 보도됐으므로 그만큼 세상과의 연결도 짧아졌다.
그래서 나는 이 이야기를 내가 하는 것이 적당하지 않다고 느껴진다. 그와 일상을 공유해온 동료들의 목소리가 가장 크게 들려야 하는데 이들이 견뎌온 슬픔이 너무 적게 알려졌기 때문이다. 이들보다 나세균에 대해 잘 말할 사람은 없는데 고작 내가 말한다는 게 미안하고 부끄럽다. 그를 그리워하는 동료들의 말로 남은 글을 대신한다.
나세균은 옛 노량진수산시장에서 20년간 회를 떴다. 상인들 사이에서 55살 막내였던 그는 할매들 다칠까봐 농성장을 밤낮없이 지키던 사람이었다. 숨진 그날도 농성장에 오려다가 피를 토해 응급실로 향했다. 그 길에도 ‘오늘 못 갈 것 같으니 다른 사람이 가주면 좋겠다’는 연락을 남길 만큼 성실하고 책임감 강한 사람이었다. 그와 똑같은 빨간 조끼를 입은 상인들은 우리 중에 제일 젊은 나세균이 장례를 먼저 치를 줄 누가 알았겠냐며 굵은 눈물을 자꾸자꾸 떨궜다. 같이 낚시 가자던 말은 기약할 수 없어졌고, 그가 간식으로 사뒀던 오징어는 한입 먹어보지 못하고 분향소 제단에 올랐다. 동료들은 장지가 잘 구해져서 다행이라 하다가도 세균이가 없는데 다행은 뭐가 다행이냐며 도로 깊게 한숨을 쉬었다.
“임원들이 앞선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고. 세균이가 앞섰더라고.”
과거 사진 속에서 나세균의 모습을 찾던 상인 대책위원장은 그가 늘 집회의 앞 열에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동료들은 또 그의 뒤에 서게 됐다. 든든했던 막내 상인, 나세균이 세상을 떠났으므로.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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