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아픈 아이가 태어난 건, 엄마 탓이 아니에요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는 동안 아팠던 엄마, 태어난 아이의 장은 움직임을 멈췄다
등록 2021-10-07 14:57 수정 2021-10-08 02:07
삼성반도체 공장의 첫 백혈병 피해자인 고 황유미씨를 모티브로 만들어진 연극 <반도체 소녀>. 문화창작집단 날 제공

삼성반도체 공장의 첫 백혈병 피해자인 고 황유미씨를 모티브로 만들어진 연극 <반도체 소녀>. 문화창작집단 날 제공

노회찬재단 × <한겨레21> 공동기획
내 곁에 산재

① 평택항 이선호 친구 이용탁씨

② 태안화력발전소 김용균 동료 이준석 지회장

③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 전 지회장 하창민

④ ‘메탄올 중독’으로 실명한 청년노동자들

⑤ ‘산재노동자 자활공동체’의 강송구·박용식씨

⑥ 학교 밖 청소년 배움터 ‘일하는학교’의 이정현씨

⑦ 아이에게 대물림된 산재, 삼성반도체 노동자

은지(가명)는 초등학교 2학년이다. 아침 첫 일과는 가슴에 연결된 수액줄을 몸에서 떼는 일이다. 은지는 음식을 먹는 일이 어렵다. 먹은 걸 소화해 양분으로 삼는 일은 더더욱 어렵다. 그래서 가슴 아래를 지나는 굵은 정맥으로 농도 짙은 영양제를 밤새 투여한다. 단백질과 탄수화물 등 몸과 일상을 지탱하는 모든 양분을 이렇게 수액으로 얻는다. 학교와 학원을 다녀오고 복작복작한 저녁 일상을 마무리하면 잠자리에 들어 수액줄을 다시 연결한다. 은지의 가슴에는 케모포트(chemoport·혈관으로 통하는 주사관을 연결시키는 기구)가 삽입돼 있다.

가슴에 수액줄을 꽂고 사는 아이

가성 장폐색증(假性 腸閉塞症). 장이 수축 운동을 멈추는 질환이다. 은지는 태어날 때부터 이 질환을 앓았다. 어느 때 어떤 이유로 장이 멈추는지 알 수 없다. 음식을 씹어 넘긴다 해도 장이 움직임을 멈추면 음식은 배 속에 고인 채로 썩는다. 입으로든 항문으로든 넘긴 음식을 꺼내야 한다. 움직임을 멈춰 늘어진 장이 다시 움직일 때까지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한다. 입속에 고이는 침마저 빼낸다. 두 달을 기다려도 늘어진 장이 움직일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 그 부분은 잘라내야 한다. 은지는 장을 잘라내는 수술만 세 번을 겪었다.

황미영(38·가명)씨는 2002년부터 삼성반도체에서 일했다. 20살. 어린 나이였다. 공장은 쉴 새 없이 돌았고 여사원들은 3교대로 근무했다. 아침 6시, 낮 2시, 밤 10시 등 한 주마다 출근 시간이 바뀌었다. 때마다 잠드는 일 자체가 어려웠다. 일은 말 그대로 ‘노가다’였다. 10~15㎏ 나가는 물건을 들어 설비에 넣고 빼는 일을 내내 반복했다. 절차대로 화학물질을 취급하고 내역을 서류에 적어넣었지만 그것들 각각이 어떤 위험을 지닌 것인지 살피고 판단할 여유는 없었다. 몸에 이상이 생기기 시작했다. 수개월 생리하지 못했고 일하다 의식을 잃고 쓰러지기도 했다.

“아기가 안 생겨서 병원을 갔는데 아무 문제 없다고 했어요. 남편도 문제없다 그러고요. 그냥 불임이라고 했어요. 근데 저희만 그런 게 아니라 언니들이 임신이 많이 안 됐어요. 병원 하나가 있었는데 삼성반도체 여사원들이 거기 다 모였어요. 거기서 치료받고 임신하고….”

삼성반도체는 자동화 설비를 늘렸고 황미영씨는 설비 안정화 작업에 투입됐다. 새로 마련한 설비는 사람 손으로 우선 운용했다. 매뉴얼대로 작업하며 오류를 잡아내는 과정이었다. 자동화로 넘어간 설비는 사람 손이 크게 필요하지 않았다. 라인에서 같이 일하던 언니들이 하나둘 라인 밖 현장으로 나갔다. 하지만 황씨는 라인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임신 중이었지만 후임과 신임을 관리할 경력자가 없었다. 황씨는 ‘언니들’ 중 막내였다. 병원에서 배 속 아기의 방광에 물이 찼다고 했다. 서울 큰 병원을 찾았고 은지는 태어나 첫돌이 될 때까지 병원 밖을 나올 수 없었다.

“교수님한테 막 난리를 쳤죠. 집에 보내달라고. 집에서 돌잔치 하고 싶다고. 돌잔치 하고 일주일인가 있다가 다시 입원. 이거를 계속 반복했어요. 다섯 살 때까지는 계속. 한 번 가면 3개월, 4개월, 5개월씩. 장이 움직였다가 안 움직였다가, 계속 반복되니까.”

새우깡 맛을 알게 된 아이는 걷기 시작했다

처음 1년 동안은 병원에서 병명조차 붙여주질 않았다. 결국 가성 장폐색증으로 진단을 내렸지만 그만큼 희귀한 증상이었다. 첫 번째 병원에서만 20번 넘게 수술실에 들어갔다. 장에 구멍을 내어 몸 밖으로 꺼내놓는 장루 수술, 위로 직접 연결된 관을 연결하는 위루관 수술, 그리고 케모포트 삽입 수술 등등. 담당의는 음식을 먹이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황미영씨는 아이가 음식을 씹고 넘기는 구강의 움직임을 익히지 않으면 성장에 문제가 생길 거라는 걱정이 컸다.

“구강이 퇴화한다는 거예요. 그러면 말도 어려워지고, 물 넘기는 것도 힘들어진다고 하더라고요. 병원에서 은지 별명이 쪽쪽이 신동이었어요. 처음에는 뭘 먹어본 적이 없으니까 젖병 빠는 것도 못했죠. 6~7개월 때는 쪽쪽이를 빠는 게 일상이었어요. 나중에는 병실 커튼 치고 아이 입에 얼음 하나를 넣어주고 씹어봐라, 집에서 오징어를 몰래 갖고 와서 한번 씹어봐라, 넣어주고. 교수님하고 많이 싸웠죠. 근데 저는 애를 먹여야겠는 거예요.”

네 살 때 병원을 옮겼다. ‘먹이고 싶은 대로 먹여봐’ ‘먹어봐야 장도 적응하는 거야’. 새로 만난 담당의는 아이를 먹이라고 했다. 어차피 소장을 이식해야 하는 아이이니 먹는 일을 몸에 익혀두는 게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앉혀놓으면 네다섯 시간 그냥 앉아만 있던 아이가 새우깡 맛을 알게 되고는 뒤뚱뒤뚱 걷기 시작했다. 저기 줄에 매단 새우깡을 보고는 “그거 하나를 먹어보겠다”고 뛰기 시작했다. 여섯 살에 장루를 떼어냈다. 배변이 몸에 배는 데 1년 걸렸다. 지난해에는 몸 상태가 좋아 케모포트를 제거하고 음식만으로 생활해보기도 했다. 은지는 두 번째 병원에서도 10번 넘게 수술실에 들어갔다. 3년 전까지만 해도 황미영씨는 은지가 아픈 게 자기 탓 같았다.

“특수건강검진이라는 거 한번쯤 해보세요”

2018년 11월 삼성전자는 반도체와 엘시디(LCD) 사업장에서 건강유해인자를 관리하는 데 소홀했다며 사과문을 발표했다. 삼성전자 기흥공장에서 근무하던 황유미씨가 급성 백혈병으로 사망한 지 11년8개월 만의 일이었다. 이듬해 삼성전자는 피해자 지원보상을 시작했고, 황미영씨는 이 소식을 듣고 자녀 질환을 대상으로 지원보상을 신청했다. 이 과정에서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의 도움을 받았다. 같은 건물에서 동일한 업무를 맡았던 한 언니가 산업재해 인정을 받았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특수건강검진을 통해 유해 성분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했다. 황미영씨는 이때 특수건강검진이란 걸 처음 알았다.

“엄마 배 속에서부터 아픈 애들이 분명히 많이 있을 거거든요. 그치만 다들 자기 탓이라고만 생각하고 안 나오는 사람이 많아요. 제가 얘기해주고 싶은 건 혹시 라인에서 근무를 오래 했다면, 그리고 만일 임신한 상태라면, 저는 진짜 그 특수건강검진이라는 거를 한번쯤 해보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정말 자기 문제인 건지, 아니면 회사 다니면서…(반도체는) 다른 회사하고는 달라요. 특수한 환경이잖아요. 그걸 내 몸이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아무도 모르니까요.”

이철 작가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