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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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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친 말이 어때서

등록 2021-05-16 16:29 수정 2021-06-15 01:17
일러스트레이션 이우만

일러스트레이션 이우만

중학교 3학년 때 사회 선생님이 출산휴가를 가게 되었다. 너무 재미있게 가르치실 뿐만 아니라, 워낙 성품이 따뜻하고 밝은 분이라 전교생이 선생님을 사랑했다. 석 달의 출산휴가를 가시기 전 들어가는 수업마다 학생들이 전달하는 선물이 넘쳐나, 양팔에 다 들지도 못해 따로 교무실까지 들어드려야 할 정도였다. 마지막 수업 날에는 영영 이별도 아닌데 학생들이 빨리 돌아오시라고 교실마다 눈물바다가 될 지경이었다. 그런 인기 만점인 선생님의 뒤를 이어 온 임시교사는 얼마나 부담이 컸겠는가. 학생들도 시큰둥했으니, 갓 사범대학을 졸업한 20대 남자 선생님임에도 여중생들은 하나같이 관심이 없었다.

‘생각을 바꾸면 세상이 바뀐다’는 명언

그러나 커다란 뿔테 안경을 쓰고, 쉬는 시간 종이 치기 직전까지 열변을 토하는 새 선생님의 열정이 너무 대단했다. 그 노력에 우리도 조금씩 마음을 열어가던 때였다. 그날도 어김없이 넥타이가 다 풀어질 정도로 온몸을 던져 수업하고 나가던 선생님이 갑자기 다시 교실 안으로 들어왔다. 그러더니 칠판 옆에 붙은 ‘이주의 명언’을 가리키면서 이렇게 말했다. “생각을 바꾸면 세상이 바뀌는 게 아니야. 세상이 바뀌어야 생각이 바뀌지!” 그러고서는 벌건 얼굴을 하고 후다닥 나가버렸다.

싼 등록금과 선생님이라는 안정적 직업 때문에 전국에서 가난하지만 공부 잘하던 학생들이 국립 사범대학으로 몰려들던 시절, 전국교직원노동조합 해직교사들이 학교 밖에 있던 시절, 아직 정교사가 되지 못한 그 젊은이가 품고 있던 세상을 향한 분노가 터져나온 그 장면이 너무 강렬했다. 세상을 바꿔야 생각이 달라지는지, 생각을 바꿔야 세상이 달라지는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와 같은 논쟁이지만, 그 선생님 같은 입장이 세상을 더 낫게 바꾸겠다는 ‘진보’라는 건 어린 마음에도 분명하게 느껴졌다.

사람들은 대부분 부족하고 실수투성이며 때로 더럽고 사악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주인공이 되기도 한다. 반대로 젠틀하고 깔끔하며 올바른 사람들이라고 하여 그런 이들이 꼭 세상을 더 낫게 만드는 것은 아니다.

몇 년 전 저자와의 만남 행사 자리에 온 한 20대 남성 독자가 이런 질문을 했다. “제가 언젠가부터 글을 못 쓰겠습니다. 제가 가진 편견을 저도 모르게 드러낼까 겁이 납니다. 어떻게 하면 제 편견도 고치고 글도 자유롭게 쓸 수 있을까요?” 자기성찰을 잘하는 훌륭한 청년이라 박수칠 수도 있겠지만, 그의 얼굴에는 칠판 앞에서 침을 튀기며 자기 생각을 거침없이 이야기하던 그 젊은 선생과 같은 분노도 열정도 없었다.

대유행, 생각과 말과 글에 대한 ‘지적질’

요즘 여기저기서 생각과 말과 글에 대한 ‘지적질’이 대유행이다. 특히 정치는 더 그렇다. 어느 행사장에서 한 말이 불과 30분 뒤 다른 정당 정치인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자근자근 밟히고 있다. 남이 한 말에서 문제점을 찾아내는 능력이 곧 정치가 된 느낌마저 든다.

물론 공적 입장에는 책임이 따르고, 잘못된 행동은 바뀌어야 한다. 하지만 타인의 부족한 생각을 비판하고 사과받는 것만으로, 분명 그것만으로는 세상은 실제 바뀌지 않는다. 바른 생각을 하고 고운 말을 써서 세상이 바뀐다고 믿는다면, 그건 귀족들의 세계관과 뭐가 다른가. 공자의 <논어>에는 “덕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훌륭한 말을 하지만, 훌륭한 말을 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반드시 덕이 있는 건 아니다. 어진 사람은 반드시 용기가 있지만, 용기가 있는 사람이라고 해서 반드시 어진 사람인 것은 아니다”라는 말이 있다. 저잣거리의 거친 말을 쓰더라도, 저잣거리의 삶을 더 낫게 만드는 이들이 박수받아야 하는 게 아닌가.

김보경 출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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