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부산대에서 난리가 났다. 부산대와 밀양대가 통합한다는 소식이 들리자 부산대 재학생들이 들고일어난 것이다. 수능 성적 차이부터 졸업장에 따로 출신학교를 표시해야 한다는 등 노골적인 이야기가 학교 커뮤니티에 쏟아졌다. 밀양대 학생이라고 피해가 없는 건 아니었다. 흡수 통합돼서 자신들이 졸업한 대학의 졸업장을 받을 수 없었다. 통합부산대학교의 졸업장을 얻으려면, 밀양대 학생들은 학교에서 지정한 필수수업을 이수해야 했는데 개설된 수업이 몇 개 없었다. 밀양대 총학생회와 학생들은 이 문제를 가지고 부산대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소름 돋게도 15년이 지난 오늘, 글을 쓰기 위해 자료를 찾다가 밀양대 시위를 알았다. 나는 밀양대 학생들이 피해자라고, 부산대 학생들의 위세에 위축됐을 거라고만 생각했다. 내 머리를 치듯, 밀양대 총학생회가 발표한 성명서의 첫 번째 줄에 “왜! 4천 학우들이 통합의 피해자로 낙인찍혀버린 것입니까?”라고 쓰여 있다. 그들이 원하는 건 값싼 연민이나 손쉬운 연대의 말이 아니라, 실질적인 대책이었다.
최근 비슷한 논쟁이 노동자 사이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흔히 수능 성적에 따라 ‘서연고서성한…’으로 부르던 학력 순위는 연봉과 소재지에 따른 직장서열로 반복된다. 이른바 ‘인국공 사태’(인천국제공항공사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논란)를 계기로 세간에 알려진 이 순위는 ‘공기업 서열 랭킹’으로 검색하면 누구나 볼 수 있다. 급기야 공정을 중시하고 능력에 따른 격차를 주장하는 MZ세대(1980~2000년대 출생)가 등장했다는 이야기로 나아간다. 그런데 공정과 능력을 중시하는 것이 젊은 세대만의 특징인가. 이는 경쟁과 각자도생에 익숙한 우리 사회의 보편적 모습일 뿐이다. 다른 게 있다면 20대뿐만 아니라 이미 늙어버린 30대 중년까지 청년 세대로 묶어서 경쟁과 차별을 정당화하는 데 활용한다는 점이다.
실제로 시대마다 호출하는 청년 주인공의 모습은 천지 차이다. 2008년 회자된 ‘88만원 세대’의 주인공들은 반지하방에 살며 삼각김밥을 먹고 비정규직과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는 짠내 나는 청년들이었다. 이를 구원하는 정치인들이 청년 담론의 주인공이었다. 2021년 청년은 대기업 사무직을 중심으로 독자적인 노동조합을 만들고, 노력에 정당한 대가를 바라는 완전히 새로운 세대로 묘사된다. 살아가는 공간과 경제적 환경이 다른 사람들을 필요할 때마다 ‘청년’이라 호출하는 것이다.
학력과 직업, 자산과 소득에 따른 차별을 개인 능력에 따른 차이로 볼지, 사회구조적 불평등의 문제로 볼지를 둘러싼 싸움은 언제나 있었다. 이는 세대 문제가 아니라 세상이 누구 목소리에 더 주목하느냐의 문제다. 당연히도 각자의 처지에 따라 시끄럽게 자기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세상이 알아주지 않아도 꿋꿋하게 자기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도 있다. 누구의 목소리에 더 주목할 것인지는 결국 당파성의 문제이자 정치의 문제다.
연민 말고 경청을‘세대’나 ‘나이’를 걷어내면 더 다양한 청년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묵묵히 평등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자기 할 일을 하는 사람들의 목소리, 차별과 편견에 맞서 당당하게 자기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더 주목받기를 바란다. 섣부른 연민이나 규정보다는 주목받지 못한 존재들의 목소리를 경청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할 때다.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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