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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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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학대, 가해자는 시설 뿐일까… 유족, 정부 상대 소송낸다

소송 맡은 김남희 변호사
등록 2021-02-23 03:03 수정 2021-02-24 12:02
2020년 3월8일 장애인 폭행 사망 사건이 발생한 경기도 평택시 포승읍 홍원리 사랑의집 전경을 2021년 2월9일 바라본 모습. 한 지붕 아래 평강타운(미신고시설)이 함께 운영됐다. 이정우 선임기자

2020년 3월8일 장애인 폭행 사망 사건이 발생한 경기도 평택시 포승읍 홍원리 사랑의집 전경을 2021년 2월9일 바라본 모습. 한 지붕 아래 평강타운(미신고시설)이 함께 운영됐다. 이정우 선임기자

‘지적장애인 때려 숨지게 한 활동지원사 구속.’
2020년 5월11일, 짧은 언론 기사가 하나 떴다. 경기도 평택시 장애인거주시설에서 지적장애인을 때려 숨지게 한 혐의로 중국 동포 정아무개(35)씨가 구속돼 검찰에 넘겨졌다고 했다. 장애인 활동지원사로 근무하던 정씨는 그해 3월8일 아침 6시10분, 지적장애 1급인 김아무개(38)씨가 칭얼대자 그의 머리를 손과 발로 여러 차례 때렸다. 김씨는 충남 천안의 한 대학병원으로 이송됐지만 11일 만인 3월19일 숨졌다. 정씨는 상해치사와 장애인복지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다. 11월 수원지법 평택지원 형사1부(재판장 김세용)가 그에게 징역 5년을 선고했다는 또 다른 짧은 기사가 보도됐다.
짧은 기사는 의문을 남긴다. 시설에 거주하는 장애인은 활동지원 서비스를 받을 수 없다(장애인활동 지원에 관한 법률 제19조). 이미 시설에서 보조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시설에 거주하는 장애인과 장애인 활동지원사는 시설에서 만날 일이 없어야 한다. 그러나 장애인 활동지원사인 정씨는 평택 장애인거주시설에서 근무했고, 그 시설 거주자인 김씨를 돌봤으며, 김씨를 수차례 폭행해 숨지게 했다.
<한겨레21>은 사건 발생 장소인 ‘시설’에 주목했다. 인근 마을로부터 거리가 있는, 송전탑 아래 위치한 이 외진 시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보고자 했다. 피해자 가족과 그들의 변호인에게서 가해자 정씨의 수사·재판 기록 650여 쪽을 입수했다. 이 기록에는 정씨가 수사기관에서 한 진술, 동료 활동지원사, 시설 원장의 진술이 담겨 있었다. 피해자가 폭행당해 병원으로 실려간, 급박했던 그날의 기록도 보였다. 장혜영 정의당 의원에게서 보건복지부, 경기도 평택시·시흥시·안산시, 경기도장애인권익옹호기관에서 조사한 자료도 확보했다.
모두 1천여 쪽에 이르는 이 기록을 살펴보니, 시설에는 사건이 발생한 장소 그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피해자를 숨지게 했던 활동지원사 뒤에는 시설 원장, 지방자치단체, 정부가 숨어 있었다. 현재 원장 부부에 대한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이다. 수집한 기록에 근거해 피해자 죽음과 죽음을 둘러싼 시설, 시설을 둘러싼 국가의 행적을 역추적했다. 기사에 등장하는 인물은 모두 가명으로 처리했다.
_편집자주

피해자 동생 김성택씨는 장애인활동지원사 정민수의 처벌로 이 사건이 종결돼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시민단체 경기장애인차별철폐연대와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의 소개로 만난 서울대 공익법률센터는 그 뜻에 공감해 손해배상 소송을 제안했다. 소송 대상에는 사랑의집 원장뿐 아니라 국가와 평택시까지 포함했다. 시설에 거주하는 장애인이나 그 가족이 시설 운영 주체나 국가, 지자체를 상대로 소송을 내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한겨레21>은 1월18일 서울 종로구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사무실에서 김남희 변호사와 동생 김성택씨를 만났다.

“장애인거주시설에서 발생한 인권침해에 대해 국가의 책임은 없는지 묻고 싶었다. 국가가 신고시설이든 미신고시설이든 시설에서 일어난 인권침해에 관해 손 놓고 방치하면 마땅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법적으로 확인받는 게 목표다.” 김 변호사가 말했다. 유족과 서울대 공익법률센터는 상의 끝에 징역형을 선고받은 장애인활동지원사는 소송 대상에서 제외했다. 이미 자신의 범죄행위로 형사처벌을 받았기 때문에 별도의 손해배상 책임을 묻는 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서다. 활동지원사의 형사재판 기록을 살펴본 뒤 활동지원사가 시설에 고용돼 처음엔 학대 행위에 문제의식을 갖다가 결국 학대에 가담하게 된 것으로 판단했다. 학대를 학습했다고 본 것이다.

장애인거주시설에서 인권침해는 그간 숱하게 반복됐다. 미신고시설에서만 2012년 원주 귀래 사랑의집, 2013년 실로암 연못의집 사건이 잇따라 터졌다. 그러나 피해자나 그 가족이 민사소송을 제기한 적은 없다. “우리나라는 민사소송으로 이런 이슈를 잘 다투지 않는다. 불법행위의 손해배상액은 당사자의 노동시장에서 가치를 중심으로 산정하게 된다. 그래서 피해자와 같은 중증장애인은 다치거나 죽더라도 합당한 보상을 받을 수 없었다”고 김 변호사가 그 이유를 설명했다.

미신고시설의 문제를 파악해 바로잡을 기회가 여러 번 있었지만, 국가와 지자체는 번번이 놓쳤다. 이를 국가배상소송에서 따져보려면, 관리·감독 의무에도 불구하고 부작위(마땅히 해야 할 것을 하지 않은 것)로 위법행위가 발생했다는 점이 입증돼야 한다. 공익법률센터 김남희·오진숙 변호사,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나동환 변호사와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에서 장애인권클리닉 강좌를 수강한 학생 5명이 공익소송으로 이 사건을 맡는다. 어떤 이유에서 불법행위가 장기간 방치됐는지, 국가와 지자체가 관리·감독 의무를 어디까지 외면했는지 소송 과정에서 규명될 것으로 보인다.

고한솔 기자 sol@hani.co.kr

*표지이야기 - 사랑의 집 성진씨의 죽음 그리고
http://h21.hani.co.kr/arti/SERIES/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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