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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방역에 ‘칼퇴’가 필요하다

등록 2020-12-27 05:38 수정 2020-12-28 23:43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이분까지만 검사 진행할게요, 하아…. 여러분도 이 옷(방역복) 입고 하루 종일 일해보세요. 죽겠어요.”

단호한 명령인지 분노인지 호소인지 모를 말을 시민들에게 남기고, 의사는 코로나19 검사를 하는 천막 안으로 들어갔다. 하얀 방역복에 빼꼼하게 나온 이마와 눈썹만 겨우 보였으므로 의사의 표정을 알 길은 없었다.

저까지만 받아주면 안 돼요?

국가는 무증상 감염자를 알아내기 위해 수도권 무료 선별진료소 150곳을 설치했다. 혹시 무증상 감염으로 타인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고 있을지 모른다는 불안함에 검사받기로 했다. 사는 곳과 가까운 임시 선별진료소는 토요일에도 오후 1시까지 검사를 진행했다. 오전 11시40분쯤 도착해 긴 대기줄의 끝에 섰다.

임시 선별진료소의 공무원은 내가 도착하자마자 오후 1시에 검사가 끝나니, 검사를 못 받고 집에 갈 수도 있다고 거듭 안내했다. 대충 1분에 1명씩 검사받고 있으니, 60분에 60명까지 가능했으나 대기자는 그보다 많았다.

‘기다리는 건 자유지만 1시에 종료되는 건 막을 수 없다. 보건소는 저녁 6시까지 하니 거기로 가는 게 낫다.’ 공무원은 거의 5분에 한 번씩 같은 말을 반복했다. 그가 안쓰럽다가도 “떼를 써도 어쩔 수 없습니다”라는 이야기까지 듣고는 시민을 떼쟁이로 보는 것 같아 불쾌했다. 다종다양한 민원인들 때문에 피곤한 건 이해되지만, 본인까지만 검사해달라고 억지를 부리는 사람이 있을까.

그런데 실제 그런 사람이 나타났다. 12시30분쯤 도착한 이가 ‘저까지만 받아주면 안 돼요?’라고 떼쓰기 시작했다. 약 5분간의 실랑이 끝에 담당 공무원은 의사 선생님께 여쭤보겠다고 했다. 공무원은 ‘철밥통’이란 소리를 듣지만, 온갖 민원과 항의로부터 자신의 마음을 보호하기 위해 튼튼한 철방패가 필요해 보였다.

오랜 시간 밖에서 기다리던 국민을 구제하겠다는 공무원의 선의는 의사 선생님에겐 부당한 노동착취였다. “어제도 그랬잖아요. 힘들어서 못해요.” 수많은 시민의 코와 입에 쉴 새 없이 면봉을 집어넣고 그때마다 소독하고 장갑을 꼈다 벗었다를 반복하는 건, 중노동이었다. 게다가 천막 밖으로는 “아픕니다아~, 조금만 참아주세요~. 아이고 잘하셨어요”라는 의사 선생님의 친절한 목소리가 끊임없이 새어나왔다.

환자를 대할 때와 부당한 노동에 항의하는 목소리는 구분됐다. 의사는 자신이 지목한 마지막 환자 진료를 마치고 방역복을 벗어버렸다. 마지막까지 의사의 선의를 바랐던 시민들은 그제야 현실을 받아들이고 천천히 발길을 돌렸다. 12시57분. 내 앞에는 단 두 명만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론상 1분에 1명이니 나까지 검사가 가능한 3분의 시간이었지만 화내고 싶지는 않았다. 그가 옷을 벗지 않았다면, 시민들은 의사의 윤리와 선의에 기대어 그의 희생을 강요했을 것이다. 게다가 유니폼을 갈아입는 시간도 노동시간이다.

언제까지 시민 참여와 노동자 희생으로

날이 너무 추워, 옷을 한 겹 더 껴입고 보건소로 향했다. 눈물이 찔끔 나는 코의 고통을 느끼기까지는 또 2시간이 걸렸다. 검사하다 감기 걸릴 판이다. 야외에서의 3시간은 케이(K)방역의 실상을 목격한 시간이었다. 시민들은 코로나19 방역을 위해 추위 속에 줄을 섰고, 공무원들도 덜덜 떨면서 수백 명에게 같은 말을 반복했다. 공무원들은 간간이 전화기에 대고 사람 좀 충원해달라고 호소했다. 의사들에게도 마스크로 숨겨지지 않는 피로가 보였다. 시민의 참여, 노동자들의 희생과 헌신으로 언제까지 견딜 수 있을까. 3분을 남겨놓고 힘들어서 못하겠다고 선언한 의사의 말을 더 많은 사람이 들어야 한다. 이제 K방역에도 퇴근이 필요하다.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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