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이 늘면서 쓰레기를 둘러싼 크고 작은 다툼이 골목 구석구석에서 벌어지고 있다. 배달하러 들어간 빌라 건물에는 남은 배달음식을 플라스틱 포장째 버린 사진들이 무려 컬러로 인쇄돼 경고 문구와 함께 붙었다. ‘양심 없는 입주민이 있습니다. CCTV로 범인 색출해서 과태료를 물리겠습니다.’ ‘배달음식물은 음식물쓰레기 봉투에 따로 분리해서 배출해주세요.’ 대대적인 수색이 실제 일어나지는 않는다. 감시카메라를 눈이 침침할 정도로 돌려보는 것도 중노동이다.
내가 사는 청년임대아파트의 엘리베이터에도 경고 문구가 붙었다. 창문 밖으로 배달쓰레기와 음료캔을 던졌다는 믿기 힘든 내용이다. 이런 사람과 함께 살고 있다니, 얼굴이 화끈거렸다. 토요일마다 재활용쓰레기를 버리러 지하 분리수거장에 간다. 배달음식물이 남은 용기를 그대로 버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오염된 비닐을 비닐재활용에 버리는 사람, 택배 송장과 상자 테이프를 떼지 않아 경비노동자가 일일이 떼는 등 아수라장이 따로 없다. 쓰레기 자체를 함부로 버리는 사람도 있다. 먹다 버린 음료캔이나 담배꽁초, 일회용 컵 등이 종종 용달차의 짐칸이나 오토바이 등에서 발견된다. 오토바이에 시동을 걸다가 이런 쓰레기를 발견하면, 인간에 대한 애정이 사라진다.
그런데 일회용 커피컵과 햇반 그릇도 재활용이 안 된다는 뉴스를 봤다. 종이, 비닐, 플라스틱, 병 정도로만 쓰레기를 분리하던 무지한 인간이 나였다. 남을 비난하기 전에 나 자신부터 돌아봐야 했다. 일단 내가 버리는 쓰레기가 너무 많다. 일주일마다 버리는 종이와 플라스틱과 비닐의 양이 너무 많아 질질 끌고 다닌다. 늦은 밤 우리 아파트에서 나온 쓰레기를 나르기 위해 경비노동자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는데 사람만 한 쓰레기 뭉텅이가 인도를 가득 채웠다. 인간의 위선일지 모르지만, 형용할 수 없는 ‘죄책감’이 들었다.
이제라도 제대로 분리수거를 하려고 배출요령 안내장을 살펴봤다. 우유와 음료수 종이팩은 일반 종이류와 구분해서 내놓아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다. 물티슈 봉지를 버릴 때는 캡을 따로 분리해야 하고, 과일망과 과일포장재는 재활용이 안 된다. 신선식품에 달려오는 아이스팩도 재활용 표시와 달리 재활용이 안 된다. 플라스틱인 줄 알았던 칫솔도 일반쓰레기다. 페트병 뚜껑 밑의 링도 분리해야 하며, 유색과 투명 페트병도 구분해야 한다. 가장 헷갈리는 게 음식을 담은 플라스틱 용기였는데, 깨끗이 씻어야지만 재활용이 된다. 양념이 묻은 붉은 기는 잘 씻기지 않는데 이런 플라스틱 용기도 재활용되는지 확신이 없다. 비타민음료병에 붙은 라벨은 잘 뜯어지지도 않는다.
세상의 부조리한 구조 탓만 하다가 내가 할 수 있는 실천을 회피하는 게 아닐까라는 반성적 사고로 시작한 공부였지만, 이내 지쳐버렸다. 인내심이 바닥을 치니 익숙한 분노가 올라온다. 국민에게 배출 방법을 공부시킬 게 아니라, 기업에 쉽게 재활용할 수 있도록 제품을 만들라고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쓰레기산’이 보이기 시작하면지금은 보이지 않는 ‘쓰레기산’이 우리 눈에 보이기 시작하면 이미 늦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에 속하지 않은 누군가는 쓰레기더미 옆에서 쓰레기산이 무너지지 않을까 두려워하며 산다. 동남아시아는 한국을 비롯한 유럽 선진국이 보낸 쓰레기로 몸살을 앓고 있다. 쓰레기뿐만이 아니다. 우리 사회에서 많은 문제가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곳에 보내진다. 쓰레기도 사회문제도 은폐할 게 아니라, 줄일 수 있는 근본 방안을 찾아야 한다. 이 문제의 책임은 당연히 자신의 이익을 위해, 끊임없이 쓰레기와 사회문제를 만들어내는 기업과 인간과 이를 방치하는 국가에 있다.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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