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이 디지털성범죄를 정리하고, 앞으로 기록을 꾸준히 저장할 아카이브(stopn.hani.co.kr)를 열었습니다. 11월27일 나온 <한겨레21> 1340호는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 이후 1년동안 일궈온 성과와 성찰, 그리고 여전히 남은 과제로 채웠습니다. 이곳(https://smartstore.naver.com/hankyoreh21/products/5242400774)에서 구입 가능합니다.
2014년 8월, 할리우드 유명 배우들의 노출 사진이 미국의 한 웹사이트에 게시됐다. 클라우드 계정을 해킹한 가해자는 자신이 소유한 여성 배우들의 사진 목록을 올린 뒤 비트코인을 대가로 사진을 교환했다. 이후 피해 사진들은 트위터와 텀블러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유포됐다. 그로부터 약 8개월 뒤인 2015년 4월엔 400명 넘는 남오스트레일리아 여성·소녀의 나체 사진이 그들 동의 없이 미국 웹사이트에 올라왔다. 이 사진을 올린 사람은 피해 여성들의 연인, 전 연인 혹은 해커였다.
“두 사건은 사적인 이미지(intimate image)를 동의 없이 공유하는 것에 대한 오스트레일리아인의 경각심을 높인 대표적인 사건이었다.”(오스트레일리아 범죄학 연구소, ‘범죄 및 형사사법의 동향&이슈’, 2019년 3월)
오스트레일리아는 디지털성범죄에 가장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국가로 꼽힌다. SNS 사용이 증가하면서 디지털성범죄 사건이 빈번하게 발생하자 오스트레일리아 정부는 발 빠르게 움직였다. 그동안 ‘오스트레일리아 통신미디어 위원회’가 온라인에 게시된 불법 콘텐츠를 삭제하는 역할을 했지만, 디지털 범죄 피해자들의 안전망 역할을 하진 못했다. 이에 오스트레일리아 정부는 삭제뿐 아니라 예방, 교육, 피해자 지원, 처벌 등 디지털 범죄에 강력한 권한을 가진 ‘컨트롤타워’를 만들었다. 2015년 설립된 ‘이세이프티 커미셔너’(eSafty Commissioner·인터넷안전위원회, 이하 이세이프티)이다. 디지털 범죄에 맞선 정부 기관으로는 세계 최초다.
애초 이세이프티 설립 목적은 사이버 폭력을 겪는 아동·청소년을 보호하는 것이었으나, 2017년 모든 오스트레일리아인으로 대상을 확대했다. 명칭도 어린이인터넷안전위원회(Children’s eSafety Commissioner)에서 이세이프티로 바꿨다. 이세이프티는 사이버불링(사이버상에서 지속해서 괴롭히는 행위), 불법 게시물 삭제, 그리고 디지털성폭력 등을 관할한다. <한겨레21>은 이세이프티와 몇 차례 전자우편 인터뷰를 했다. 질문에 대한 답은 이세이프티 수석 커뮤니케이션 고문인 도미니크 토마치오와 교육정책 고문 엘라 세리가 했다.
“사적인 이미지를 동의 없이 공유하는 행위를 ‘이미지 기반 학대’(image-based abuse)라고 부른다.”(세리) 오스트레일리아 정부는 ‘리벤지 포르노’(복수심에 전 연인의 성적 이미지를 유포하는 행위)라는 용어 대신 ‘이미지 기반 학대’를 사용한다. ‘이미지 기반 학대’는 이미지에 표현된 사람의 동의 없이 이미지를 공유하는 것을 말한다. 이미지 속 인물이 촬영에 동의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동의 없이 유포될 경우 학대로 여기는 사적인 이미지는 성적인 신체 부위, 샤워하는 모습 등이 찍힌 개인적 사진, 종교적으로 착용하는 복장을 벗은 모습 등을 말한다. 오스트레일리아인 10명 중 1명이 이미지 기반 학대를 경험했다. 18살 이상 여성 피해자 수는 18살 이상 남성 피해자 수보다 2배 이상 많다.(이세이프티, 2017) “우리는 여성들이 여성이기 때문에 성적 학대를 경험할 가능성이 더 크다는 것을 안다.”(토마치오)
오스트레일리아 정부가 ‘이미지 기반 학대’ 용어를 공식화한 것은 2016년 ‘법률 및 헌법 업무 참조위원회’(Legal and Constitutional Affairs References Committee)가 이를 권장한 이후다. ‘리벤지 포르노’라는 말이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에게 초점을 맞추고 범죄의 심각성을 최소화한다는 지적을 받아들였다. 또 ‘이미지 기반 학대’의 상당수가 리벤지나 포르노와 관련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정부가 주도적으로 용어를 바꿈으로써 피해자 잘못이 아니고, 정부가 피해자를 지원하고 피해자 편에 서겠다는 메시지를 사회에 던졌다. 현재 오스트레일리아의 법, 정부 공식 문서 등에는 ‘이미지 기반 학대’라는 용어를 쓴다. 이세이프티도 2017년 누리집에서 ‘이미지 기반 학대’ 용어 사용을 공식화했다. 줄리 인먼 그랜트 이세이프티 위원은 2017년 이세이프티 누리집에서 ‘리벤지 포르노’라는 단어를 지우며 “끔찍한 경험을 한 피해자를 구제하고 지원하는 일을 하는 우리는 어휘를 바꿔야 할 때”라고 밝혔다.
이세이프티는 디지털성범죄의 신고 접수, 게시물 삭제, 피해자 지원까지 원스톱으로 처리한다. ‘이미지 기반 학대’를 경험한 피해자, 대리인, 부모 등이 이세이프티 누리집에서 신고할 수 있다. 신고 페이지에 접속하면 피해자 상태를 가장 먼저 묻는다. 평소보다 더 걱정하거나 긴장한 상태인지, 평소보다 우울하진 않은지, 자살을 생각한 적은 없는지 묻고 즉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상담 서비스 등을 안내한다. 이어 유포된 이미지의 동의 여부, 가해자 특정 여부를 확인하고 이미지가 게시된 사이트 주소(URL)를 입력하도록 한다. 사건이 접수되면 이세이프티는 법적 절차 없이도 각 사이트에 신속하게 삭제 요청을 한다. 이세이프티는 누리집에서 ‘이미지 기반 학대’ 신고 페이지를 쉽게 찾도록 상단에 고정해 노출한다.
위원의 권한은 ‘2015 온라인 안전 강화법’(The Enhancing Online Safety Act 2015 Act.) 제15조에 규정돼 있다. 위원은 동의 없이 사적인 이미지를 게시하거나 게시하겠다고 협박하는 사람에 대한 조사 권한을 가진다. 가해자에게 공식 경고장을 발부하거나 교정 방향을 제시하고 침해 통지서를 발행할 수도 있다. 또 법원에 금지 명령이나 민사처벌 명령을 요청할 수도 있다. ‘이미지 기반 학대’ 가해자는 최대 징역 5년형을 받을 수 있고, 같은 행위로 3번 이상 벌금 명령을 받은 사람은 최대 징역 7년형을 선고받을 수 있다. “우리는 특히 ‘이미지 기반 학대’가 불법이라는 인식을 높이고 가해자의 태도를 바꾸려고 노력한다. 자신의 행동이 불법이라는 것을 아는 가해자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토마치오)
위원은 또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웹사이트, 호스팅 서비스 제공자 등에게 이미지 삭제를 통지할 수 있다. 서비스 제공자는 48시간 이내에 이미지를 삭제해야 한다. 이에 응하지 않으면 개인은 오스트레일리아달러로 최대 10만5천달러(약 8500만원), 법인은 52만5천달러(약 4억2500만원)까지 벌금을 부과받을 수 있다. 사업자 대부분 신속하게 요청에 응하며 몇 시간 내로 콘텐츠를 삭제한다. SNS에 유포하거나 유포를 협박한 계정을 전달하면 문제 계정은 삭제된다. 토마치오가 말했다. “우리는 소셜미디어 회사, 인터넷 서비스 제공업체에 ‘이미지 기반 학대’ 삭제의 중요성을 전달하고 긴밀히 협력한다.”
실제 삭제율은 높다. 이세이프티의 ‘2019-2020년 연간 보고서’를 보면 플랫폼 248곳에 삭제 요청한 사이트 약 4천 개 중 82%가 삭제됐다(2019년 7월~2020년 6월). 그 전해엔 90%가 삭제됐다. 이세이프티는 온라인에서 벌어지는 폭력이나 유해한 콘텐츠 등에 대해서도 다각적으로 대응한다. 누리집에는 유아, 초등생, 중고생으로 나눠 사이버불링이나 사적인 이미지 공유 등에 대한 자료를 교육자들에게 제공한다. 또한 어린이, 청년, 부모, 여성, 노인은 온라인상에서 겪을 수 있는 맞춤 정보를 구할 수 있다. 영어를 잘 못하는 사람도 쉽게 신고할 수 있도록 만든 ‘온라인 안전 가이드’는 10개 이상 언어와 쉬운 영어로 쓰여 있다.
이세이프티에 신고되는 ‘이미지 기반 학대’ 건수는 매년 늘고 있다. 신고 서비스를 시작한 첫해는 259건, 다음해는 950건, 가장 최근 한 해 동안은 2702건이 접수됐다. “올해 초 코로나19 제한과 성적 착취 전자우편 사기가 늘면서 ‘이미지 기반 학대’ 접수가 더 늘었다. 2020년 7~9월엔, 전년 동기보다 신고가 약 110%나 증가했다.”(토마치오) 이에 따라 예산도 커졌다. 오스트레일리아 정부는 10월 “오스트레일리아인을 온라인 피해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이세이프티에 3940만달러를 추가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투자는 6월 100만달러 증액에 추가한 것이다.
“혼자 즐긴다”는 국회의원에게디지털성범죄를 처벌하는 것을 두고 한 국회의원은 “혼자 즐기는 것까지 갈(처벌할) 일이냐”고 했고, “야동 볼 자유”라는 댓글이 달린다. 토마치오는 ‘표현의 자유’를 이유로 성적 학대 이미지를 삭제하는 것에 반발하는 사람이 없냐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이미지 기반 학대는 개인의 사생활과 존엄성, 성적 자율성,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 타인의 사적인 이미지를 공유하는 가해자를 규제하는 것은 피해자의 권리와 명예를 지키는 데 필요하다.”
장수경 기자 flying71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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