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6월24일 경남 김해의 한 고등학교 여자화장실에서 이 학교 교사가 설치한 불법촬영 카메라 발견, 6월26일 경남 창녕 한 중학교 여자화장실에서 이 학교 교사가 설치한 불법촬영 카메라 발견. 수사 과정에서 김해 교사가 전임지인 경남 고성의 한 고등학교 여자화장실과 경남교육청 산하 수련원 샤워실에서도 불법촬영을 한 사실이 추가로 확인됨.
교사마저 불법촬영 범죄를 저지른 참담한 사건에 대한 언론 보도가 이어지자, 7월20일 박종훈 경남교육감은 고개를 숙였다.
“강력한 징계와 빈틈없는 점검, 철저한 예방교육으로 성폭력 없는 안전한 경남교육을 만들겠습니다.”
교육부가 전국 초·중·고 화장실에 불법촬영 카메라가 있는지 긴급점검하는 것을 사전에 예고할 만큼 떠들썩했지만, 정작 범죄가 일어나 학교의 재학생과 졸업생들은 “뉴스를 보고서야” 사건을 알게 됐다. 그중 고성 고교를 졸업한 14명이 모여 ‘불법촬영 교사 대응모임’을 꾸렸다. 학교도, 교육청도, 수사기관도 이들에게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알려주지 않았다. 피해자인지 알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모교 화장실에서 몰래 찍은 불법촬영물엔 사람 얼굴이 나오지 않는다고, 피해자를 특정하지 않은 탓이다. 다니던 학교 화장실에서 내 몸이 찍혔는지 안 찍혔는지조차 알 수 없어 더욱 불안한 이들에게, 사건 경위조차 알려주지 않는 현실에서 과연 ‘성폭력 없는 안전’이 실현될 수 있을까._편집자주
“고등학교 3년간 집보다 학교와 기숙사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냈어요. 행복했던 학창 시절에 대한 추억이 더러워졌어요. 게다가 기숙사 사감이었어요. 하루 세 번 아침, 저녁, 취침 점호를 했으니 가족보다 더 자주 본 사람이에요. 평소 문제가 될 만한 발언이나 행동을 하는 사람은 아니었어요. 이런 두 얼굴을 가진 줄은 몰랐죠.”
2020년 8월27일 오전 10시 창원지방법원 218호 법정, 방청석에서 일어난 21살 여성 유은호(가명)씨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카메라 등 이용 촬영·반포)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피고인은 고교 시절 가족보다 더 자주 보던 선생님이었다. 은호씨는 ‘법적으로’ 피해자는 아니다. 학교 체육관 여자화장실에서 찍은 불법촬영물엔 사람 얼굴이 나오지 않아 피해자를 특정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법촬영 범죄가 일어나던 2017년 9월, 은호씨는 그 학교에 있었다.
발각 뒤 3년 전부터의 행각 드러나
6월24일, 경남 김해시 ㄱ고등학교 여자화장실에서 청소하던 직원이 변기에서 카메라를 발견했다. 현장에 출동한 경찰은 폐회로텔레비전(CCTV) 기록을 통해 이 학교 체육교사 윤아무개(40대)씨가 화장실에 들어가는 모습을 찾아냈다. 윤씨는 이미 자신의 컴퓨터와 휴대전화에서 메모리칩을 뺀 상태였지만, 경찰은 디지털포렌식으로 그의 전임지인 경남 고성군 ㄴ고등학교와 경남 남해군 학생수련원에서 찍은 불법촬영 흔적을 복구해냈다.
<한겨레21>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최기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확보한 윤씨 공소장을 보면 △2017년 9월, 고성 ㄴ고등학교 체육관 여자화장실에 카메라를 설치해 피해자의 발 부분 촬영 △2019년 5월 교육청 산하 남해 수련원 여학생 및 여교사 샤워실에 카메라를 설치해 샤워하는 모습 촬영 △2020년 3~6월 김해 ㄱ고등학교 여자화장실에 카메라를 설치하기 위해 총 23번 들어가 아홉 차례 카메라를 설치해 피해자의 발 부분을 찍었다.
특히 윤씨가 2018년부터 2년간 근무한 남해의 수련원은 피해자를 특정하기 더욱 어렵다. 이 수련원엔 2019년에만 47개교 2568명이 다녀갔다. ‘2019년 남해 수련원 입교 배정 현황’을 보면, 윤씨가 불법촬영을 한 2019년 5월엔 총 7개교가 수련원에 있었고 이 중 여학생은 324명이었다.
은호씨가 이 사건을 알게 된 건 7월9일. 우연히 체육교사가 김해의 한 고등학교 화장실에서 불법촬영을 했다는 언론 보도를 보고서다. 기사에는 이 교사가 자신의 전임지인 고성의 한 고등학교(2017년)와 남해의 한 수련원(2019년)에서도 불법촬영을 했다는 내용이 있었다. 2015년 3월 고성의 한 고등학교에 입학해 3년간 다닌 그는 자신이 ‘피해자’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슴이 조여왔다.
코로나19 걸린 줄 알았던 선생님이
기사를 더 찾아봤다. 불법촬영을 한 교사가 2015년부터 고성의 한 고교에서 근무하다, 2018년 3월 남해의 수련원에 파견근무를 갔다가 2020년 3월 김해의 한 고교로 옮겼다는 내용이 나왔다. 고성 → 남해 → 김해 순서로 전근 간 체육교사… 떠오른 선생님이 한 명 있었다. 기숙사 사감이었던 윤씨. 은호씨는 떨리는 마음으로 경남교육청에서 인사 이동 자료를 훑어봤다. 그가 맞았다. “아무리 졸업생이라지만, 당시에 (범죄가 일어났던) 학교를 다니고 있었고 실제 제가 찍혔을 수도 있는데 왜 이 사실을 뉴스를 보고 알아야 하나요? 이 기사를 우연히 읽지 않았다면 평생 모르고 넘어갔을 것 아니에요? 아찔해요.”
7월10일, 은호씨는 고성 ㄴ고교 졸업생 14명을 모아 단체대화방을 만들고 관련 기사를 공유했다. 이들은 ‘불법촬영 교사 대응모임’을 만들고 재학생에게 연락했다. 학교에서 이 사건에 대한 설명이 있었는지, 어떤 대책을 마련했는지 알고 싶어서였다. 그러나 재학생도 모르고 있긴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대응모임이 만든 인스타그램의 게시물을 보고 뒤늦게 알았다고 했다.
“졸업생 선배들이 인스타그램 계정을 만들어, 우리 학교가 피해 학교라는 사실을 재학생에게 알렸고, 이후 언론 보도를 보고 상황을 체크했어요. 이미 2018년 다른 곳으로 간 선생님이니, 재학생 중에 아는 사람은 없었어요. 하지만 우리 학교에서 그런 일이 일어났다는 것만으로도 충격적이었죠. 얼마 뒤 교장 선생님이 방송으로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다’며 ‘학교에 불법촬영 카메라가 있는지 점검했고, 탐지기도 구비했다’고 공지했어요. 그 뒤론 이 사건에 대해 들은 바 없어요.” 고성 ㄴ고교 2학년 여학생 박예슬(17·가명)의 말이다. 현장에서 범죄가 적발된 김해 ㄱ고교 재학생들도 경찰 수사 때까지 사건 자체를 몰랐다고 했다. 김해 ㄱ고교 재학생 이은비(18·가명)가 말한다. “6월 말, 체육 선생님이 갑자기 안 나와서 코로나19에 걸린 게 아닌가 헛소문까지 돌았어요. 이런 일이 있었다는 건 이후 언론 보도로 알았죠.”
재판 방청 가서야 ‘발만 찍힌 것’ 알아
대응모임은 자신들이 졸업한 학교에 찾아가 교장·교감과 면담했다. 경찰이 방문했는지, 수사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물었지만 아는 것이 없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학교는 대응모임이 7월20일 경남교육청에서 열었던 기자회견 계획을 앞서 만류하기도 했다. “학교 이미지가 실추될 수 있고 범죄 사실 정보도 불확실하므로 기자회견을 하지 않는 게 어떠냐, 교육청이 입장 발표를 한 뒤에 하면 어떠냐고 제안하기도 했어요.”(김우석씨, 20·남성·가명)
이들을 더욱 불안하게 하는 건, 자신이 피해자인지 아닌지도 알 수 없는 ‘깜깜이’ 상황이라는 점이다. 은호씨가 이 사건을 수사한 김해중부경찰서 여성청소년과에 여러 차례 전화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같았다. 수사팀은 “얼굴이 찍히지도 않았지만, 찍혔더라도 피해자를 전부 불러 얼굴을 대조해야 하는데 그게 2차 가해라고 생각한다. 100명 중 99명이 자기가 피해자인지 알고 싶다고 한대도 나머지 1명이 원하지 않는다고 하면 (얼굴 대조를)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공소장에 따르면 고성 ㄴ고교 불법촬영물엔 발 부분만 찍혔다. 그러나 은호씨는 이 내용도 재판 방청을 하고서야 알았다. 만약 수사기관이 피해자들에게 이 부분만 알려줬어도 불안감을 조금은 덜지 않았을까. “교육청, 학교 쪽에 아무리 문의해도 경찰로부터 전달받은 게 없다고만 했어요. 경찰은 수사 중이라 답변할 수 없다고 하고요.”
피해자로 인정받을 수 없기에 이들은 공소장 등 사건 기록을 열람할 권한도, 피해자로서 증언할 기회도 갖지 못했다. “피고인의 목소리는 변호사 입을 통해 정확하게 전달되는데, 우리는 피해자가 아니니까 목소리를 낼 수도 없어요. 선생님이 재판부에 반성문을 제출한 것도 괘씸해요. 반성문은 피해자에게 써야 하는 것 아닌가요? 그런데 반성은 판사에게 하고, 정작 우린 그 반성문을 읽어볼 기회도 없는걸요.”(김우석씨)
피해자 지원을 해주겠다더니… 안내조차 없어
경남교육청 민주시민교육과 성인식개선담당 김은혜 주무관은 “김해 ㄱ고교에 교내 현장긴급상담소를 마련해 피해를 호소하는 학생들에겐 심리 상담도 지원하고, 경남 교권보호지원센터에서는 교사들을 대상으로 상담과 의료비를 지원해주고 있다”고 밝혔다. 이런 지원에서도 고성 ㄴ고교와 남해 수련원은 빠져 있다. 경남교육청은 “7월20일부로 핫라인(055-268-1234)을 설치했으니, 피해를 호소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상담 지원을 받을 수 있다”고 답했지만, 자신이 피해자인지 아닌지 알 수도 없는 고성 ㄴ고교 학생들이나, 남해 수련원을 다녀갔어도 아무런 통보를 받지 못한 학교 학생들이 어떻게 지원을 요구할 수 있을까.
실제 경남교육청은 범죄가 일어난 2019년 5월, 수련원에 다녀간 학교 쪽에 어떤 조처도 하지 않았다. 피해자가 불특정 다수라는 이유에서다. 고성 ㄴ고교 재학생도 피해자 지원 안내를 받은 적조차 없다고 했다.
사건 이후, 김해 ㄱ고교에서는 교직원과 학생들에게 성교육을 했다. 다만 코로나19로 온라인수업을 하던 시기라, 성교육도 그렇게 했다. 김해 ㄱ고교 재학생은 “형식적인 디지털성범죄 예방 교육이었다”고 했다. “오프라인에서 한다고 해도 별다른 건 없을 거예요. 어차피 온라인에서 개인정보를 알려주지 말라거나, 타인의 사진을 전송하지 말라는 등 예방 방법을 배우니까요. 선생님이 학교에 동료 교사와 학생들을 상대로 불법촬영 카메라를 설치했는데, 이 피해를 어떻게 예방할 수 있을까요? 우리 학교에선 발만 찍혔다고 해도, 증거가 발견되지 않았을 뿐 더 찍었을 수도 있잖아요.”(이은비)
학생들이 받은 상처는 단순히 피해 사실 자체가 아니다. 더 이상 선생님을 믿을 수 없다는 것, 학교가 안전하지 않다는 것. 가장 안전한 장소라고 믿었던 곳마저 불법촬영 카메라가 있었다는 걸 확인하면서 공포가 일상이 됐다. 졸업생도 다르지 않다. “법원에 재판 방청을 하러 갔을 때도 화장실에 불법촬영 카메라가 있는지 확인해보는 저 자신을 보고 놀랐어요.”(유은호씨) 고성 ㄴ고교 재학생 박예슬은 학교가 신뢰를 회복할 길을 내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 사건 이후 주기적으로 불법 카메라 탐지 검사를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고, 만약 했더라도 학교를 믿을 수 없는 상황이에요. 학교가 어떤 조처를 했는지 학생들에게 와닿게 설명해줘야 해요. 학생들이 카메라 탐지기로 검사하는 과정을 직접 볼 수 있게 하는 방식 등으로요.”
연 2회 이상 불시 검문 해주세요
대응모임은 교사가 솜방망이 처벌을 받는 건 아닌지, 이후 다시 교직에 돌아오진 않을지 계속 감시할 생각이다. 이들은 7월 교육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1301명의 연서명을 받은 탄원서를 법원에 제출했고, 8월 윤씨의 첫 재판을 함께 봤다. 현재는 2차 탄원서와 졸업생을 대상으로 한 윤씨의 근무 태도 설문 결과를 모아 10월15일 열릴 두 번째 재판 때 제출할 계획이다.
이들은 “처음에는 자신이 피해자일 수도 있겠다는 불안감에 시작한 활동이었지만, 3개월 넘게 대응해보니 불법촬영 적발 이후 학교 안팎의 조처에 얼마나 많은 구멍이 뚫려 있었는지 알게 됐다”고 말했다. “교내 인력이 아닌 지역 경찰서나 외부 전문 기관과 협약해, 의무적으로 연 2회 이상 불법 카메라 불시 검문을 하고 그 결과를 공유할 것을 요구해요.”(김우석씨) “디지털성범죄를 비롯한 성범죄의 피해자나 목격자가 됐을 때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을 성교육 시간에 가르쳐주기 바랍니다. 더 이상 학교에서, 나아가 사회에서 또 다른 형태의 디지털성범죄 사건이 일어나서는 안 되니까요.”(유은호씨)
신지민 기자 godjimin@hani.co.kr
*표지이야기-교사 불법촬영 그 후
http://h21.hani.co.kr/arti/SERIES/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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