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시누이는 끝을 예감했는지 친인척을 병원으로 불렀다. 병실에 들어서니 바싹 마른 몸의 그녀가 누워 있었다. 큰시누이는 가슴팍이 가려웠는지 환자복을 올려 손가락으로 긁었다. 앙상한 맨가슴이 드러나자 눈가가 시뻘겋게 짓무른 작은시누이가 슬쩍 옷자락을 내렸다. 그때 큰시누이가 나를 보며 말했다. “우리 편하게 하자.” 그 순간 눈물이 멈추고 마음이 따뜻해졌다. 그럼요, 그럼요. 그녀다운 말이었다.
인생을 째고 들어오는 능력
나는 큰시누이를 너무 좋아했다. 언제나 그녀가 내게 주는 애정을 충분히 느꼈고, 나 또한 그녀에 대한 애정을 솔직하게 드러냈다. 시가와 사이좋은 이가 많겠지만, 그래도 한국 사회에서 시누이를 이토록 좋아하는 건 흔치 않다. 이 드문 관계는 나에게 좋은 영향을 미쳤다. ‘큰시누이처럼 사람을 대하고 싶다’는 마음은 경계심 많던 나를 점점 더 개방적인 사람으로 만들었다.
큰시누이의 인생은 쉽지 않았다. 부모는 일찍 돌아가셨다. 본인의 삶도 여유롭지 않았다. 두 아이를 데리고 한부모 가정의 가장으로 이곳저곳을 옮겨가며 살았다. 생활은 바빴고 나는 그녀를 1년에 몇 번 보지 못했다. 그런데도 그녀가 왜 그렇게 가깝게 느껴졌을까 생각해보면, 그녀에게는 신기한 재주가 있었다. 그건 자신의 삶으로 사람을 거리낌 없이 들이는 능력이었다.
큰시누이가 갓 이혼했을 때다. 경남 창원으로 거처를 옮겼다며 한번 놀러 오라 했다. 주소만 달랑 들고 찾아간 집은 작은 아파트였는데, 집 안 전체가 비닐로 포장된 아동복으로 가득해 발 디딜 틈조차 없었다. 아동복 쇼핑몰을 운영하는 친구 집에 살고 있는 거였다. 그곳에서 큰시누이가 일을 마치고 올 때까지 기다렸다. 집으로 돌아온 큰시누이는 나를 보고 활짝 웃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두어 번 본 게 전부인 어린 올케에게 자신의 신산한 생활을 다 보여주고도 어떤 면구스러움도 없었다.
이후에도 비슷한 일이 몇 번이나 있었다. 그녀가 일식집 주방장으로 일할 때, 꽃집을 열었을 때, 나는 불쑥불쑥 큰시누이의 생활 한복판 속으로 예고 없이 들어갔다 나오는 일을 겪었다. 그 순간들은 이상하게 즐거웠고, 가족애만으로 설명하기 힘든 유대감을 만들어냈다.
코로나19로 조문객이 뜸한 빈소에서 저마다 큰시누이에 대한 애정을 고백한다. 누군가 말했다. “인생을 째고 들어오는 사람이었지.” 정확히 말하면 그녀는 그저 주눅 들지 않고 자신의 인생을 열었을 뿐인데, 사람들은 그녀가 자신의 삶 속으로 가깝게 들어왔다고 느끼고 있었다.
다른 이의 삶과 붙어 있을 때
에스파냐의 시인 가르시아 로르카의 시 ‘작별’에 큰시누이와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풍경이 있다.
“나 죽거든/ 발코니를 연 채로 두어다오/ 아이가 오렌지를 먹는다/ 내 발코니로 그 모습을 바라본다/ 농부가 밀을 벤다/ 내 발코니로 그것을 느낀다/ 나 죽거든/ 발코니를 연 채로 두어다오”
시인은 방 안 침대에 누워 죽어가지만, 그는 창문을 닫고 커튼을 내리는 대신 자신의 발코니를 활짝 열었다. 창밖에서 오렌지 향기가, 밀 베는 소리가 발코니를 넘어 들어온다. 다른 이의 삶과 나의 삶이 붙어 있음을 알 때, 고통 앞에서도 외롭지 않다는 것을 시인은 안다. 큰시누이도 그걸 알았던 것일까. 그래서 자신을 드러낼 때 거리낌이 없었던 것일까. 그녀의 아이들은 엄마를 닮게 컸다. 엄마의 죽음 앞에 눈물을 흘리면서도 한편으로 사람들과 즐겁게 재잘거린다. 영정 앞에서 조카딸이 불쑥 내 팔을 잡는다. 숙모, 나중에 함께 살아봐도 돼요? 그럼요, 그럼요.
김보경 출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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