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아무몸] 쓰레기 자루 속 레몬 빛깔 병아리

내 윤리는 입맛 앞에서 얼마나 초라한가,
다른 생명의 고통은 내 혀끝의 쾌감보다 얼마나 가볍나
등록 2020-06-17 00:07 수정 2020-06-18 10:21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저 염소들은 오늘 다 잡아먹힐 거야.” 서아프리카 감비아에서 일하는 한 독일인 친구가 염소 대여섯 마리 찍은 사진을 보냈다. 감비아에서 축제를 벌이는 날이란다. 장에서 팔려가는 염소는 카메라를 쳐다보고 있다. “불쌍해.” 그 친구 말에 나도 맞장구쳤다. 그런데, 그렇게 말하기에 우리 너무 많이 먹지 않았나? 영국 방송 가 보도한 2017년 한 해 1인당 육류 소비를 보면, 서아프리카는 10㎏인데 한국은 51㎏, 서유럽은 80~90㎏이다. 적어도 감비아에서 염소를 잡아먹는 사람들은 고기가 염소라는 건 확실히 알 거다. 그 친구가 슈퍼마켓에서 고기를 사며 불쌍하다 말하는 거 들어본 적 없다. 도시 ‘문명’을 누리는 그와 나는 부위별로 잘려 깔끔하게 포장된 고기를 공산품 사듯 산다. 1+1 할인이면 몇 팩 더 챙긴다. 남의 손에만 피 묻히는 폭력은 우아해서 폭력의 소비자는 죄책감마저 느낄 필요가 없다.

살 안 찌는 ‘못난이’, 천형을 사는 암탉

에어컨이 쌩쌩 도는 지하철에서 한승태 작가가 쓴 <고기로 태어나서>(2018)를 읽다 울었다. 질질 흐르는 눈물 때문에 마스크가 눅눅해졌다. 사람들이 더 피하는 거 같다. 작가가 공장식 양계장, 양돈장, 개농장에 취직해 쓴 르포다. 알을 못 낳는 “레몬 빛깔” 수평아리들은 쓰레기다. 이 수평아리를 키워봤자 사룟값이 더 드니 수익이 안 남는다. 키워 잡아먹는 육계는 빨리 살이 찌도록 개량한 품종이다. 수평아리는 쓰레기 자루에 꾹꾹 눌러 담는다. 자루마다 압사당한 사체가 악취를 풍긴다. 깔려도 끝까지 살아남은 놈들이 있다. 자루 아래서 소리가 새나온다. “삐악삐악.” 이 병아리들을 갈아 흙과 섞고 비료로 쓴다.

알을 낳을 수 있다는 건 천형이다. 그가 일한 한 산란계 농장을 보면 그렇다. 가로세로 50㎝, 높이 30㎝ 전자레인지 크기만 한 케이지(우리)에 네 마리씩 들어가 있다. 그냥 한 덩어리다. 털은 다 빠졌다. 부리는 다 잘렸다. 서로 밟아 깔려 죽기도 하는데 사체를 빼내기도 힘들다. 케이지 밖으로 목만 빼고 수백 마리가 비명을 질러댄다.

냉면은 어떻게 할 거야?

육계 농장에서 그가 한 일은 ‘못난이’들 걸러내기다. 사룟값 드는데 빨리 살이 안 찌는 닭들의 목을 비튼다. 매일 죽이다보니 나중엔 별 감정 없이 목을 꺾는다. 끝까지 살아남아봤자, 32일이다. 그날 다 도축된다. 닭의 원래 수명은 7~13년이다. ‘못난이’ 걸러내기는 양돈장에서도 이어진다. 죽인다고 하지 않고 ‘도태시킨다’고 말한다. 빨리 살이 찌지 않는 돼지는 다리를 잡아 바닥에 패대기친다. 그래도 잘 안 죽는다. 분뇨장에 버린다. 거기서도 바로 안 죽는다. 수컷 새끼돼지는 생후 한 달 즈음에 생식기를 떼낸다. 그래야 고기맛이 좋다. 빨리빨리 뜯어야 한다. 손으로 잡아뜯는다. 좁은 공간에 갇혀 사니 돼지끼리 꼬리를 씹는다. 꼬리랑 이를 자른다. 그렇게 살아남아봤자 6개월이다. 돼지의 원래 수명은 9~15년이다. 공장식 양돈장에서 어미돼지는 3년을 산다. 누웠다 일어났다만 할 수 있는 스톨(감금틀)에 갇혀 새끼를 낳는다. 생후 210일부터 임신과 출산을 반복하다 도축된다.

닭과 돼지는 사료를 먹는다. 개는 음식물 쓰레기를 먹는다. 개농장은 음식물 쓰레기를 처리한 대가로 돈을 번다. 개는 땅에서 90㎝ 띄운 뜬장에 갇혀 있다. 똥오줌을 싸면 케이지 아래로 그대로 떨어진다. ‘못난이’를 걸러내진 않는다. 개는 살이 너무 찌면 소비자가 안 좋아한다. 태어난 지 1년 정도 되면 주인이 쉽게 죽일 수 있는 방식으로 개를 죽인다. 그가 일한 두 곳에선 목을 매달거나 감전사시켰다.

이 노동을 감당하는 사람들은 월 150만원을 받고 농장에 마련된 컨테이너에 사는 캄보디아, 중국, 베트남 등에서 온 외국인 노동자다. 돼지를 옮길 때면 자루를 퍼덕이며 몰다 결국 두들겨팬다. 이 돼지들을 다 옮겨야 컨테이너에라도 들어가 잘 수 있다. “병아리의 고통도, 돼지의 고통도, 개의 고통도 그렇게 조금씩 멀어져갔다. 언젠가부터는 왜 내가 이걸 문제 삼았는지조차 기억하기 어려웠다. 그게 정상이고 그게 당연한 거다. 물건은 그렇게 다루는 거다. 작업이 끝나고 내가 신경 썼던 것은 오직 얼얼한 팔의 피로뿐이었다.”

이 잔혹극은 인간이 더 맛있는 고기를 더 싸게 더 많이 먹기 위해 벌어진다. 소고기 1㎏ 생산하는 데 곡물 12㎏이 필요하다. 전세계 곡물 3분의 1을 가축에게 먹이는 동안 인간 8억 명은 굶주린다. 축산업은 지구온난화의 주범인 탄소 배출량의 18%를 차지한다.(김한민, <아무튼, 비건>)

지하철에서 콧물을 훌쩍이며 결심했다. 최소한 채식을 해야지. 나는 백수고 친구도 별로 없다. 코로나19 사태 전부터 거의 사회적 격리 상태였다. 이보다 더 채식을 실천하기 좋은 조건은 없다. 몸만 부지런해지면 된다. 냉장고가 생화학 연구소다. 채소들이 형체가 없다. 형체 있을 때 요리해 먹기만 하면 된다. 돼지, 닭, 소의 고통에 비해 이건 정말 사소한 수고 아닌가.

“냉면은 어떻게 할 거야?” 채식을 해보겠다니 한 친구가 물었다. 맞다, 냉면. 이 여름만 지나고 시작할까? 한 친구는 채식을 시작하기 전날, 육식에 대한 미련을 끊으려 닭튀김 한 상자를 끌어안고 다 먹었다고 했다. 냉면 한 다섯 그릇 먼저 먹고 끊을까? “생선은 어떻게 할 거야?” 맞다, 조기. 생각난 김에 조기를 두 마리 구워 먹었다. “달걀은 어떻게 할 거야?” 혼자 사는 사람에게 달걀은 은총이다. 라면에 넣어 먹고 밥 비벼 먹고 프라이해 먹고 삶아 먹으며 한 끼를 때운다.

강제 임신시킨 젖소, 젖을 빼앗긴 송아지

이것 빼고 저것 뺐다. 공장식 축산이 없어질 때까지 육고기만 끊기로 했다. 3주 됐다. 벌써 몇 번 어겼다. 분식집에서 김말이 고르다 참지 못하고 만두까지 먹었다. 햄버거 앞에서 이 결심은 언제 무너질지 모른다. 그래서 다시 적는다. 육고기라도 끊겠다. 내 윤리는 입맛 앞에서 얼마나 초라한가? 다른 생명의 고통은 내 혀끝의 쾌감보다 얼마나 가볍나? 빵집에서 팥과 버터가 들어간 바게트 맛이 궁금해 샀다. 크림빵도 샀다. 우유를 많이 먹으려고 인간은 젖소를 강제 임신시키고 송아지에게 돌아갈 젖을 가로챈다. 두 빵을 비닐에 따로 담아 다시 봉지에 넣어준다. 겹겹이 비닐이다. 소비자는 왕이니까. 두 빵이 엉켜선 안 된다. 집에 돌아오니 개 몽덕이가 두 발로 서서 기쁘다고 난리다. ‘그 무엇도 착취하지 않는 몽덕아, 너는 세상에 무해한 존재구나.’

김소민 자유기고가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