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에 하는 말 “누구세요?”5월이라니 실화냐? 아직 2020년이라고 날짜를 잘못 쓴다. 뭔가 사기당한 듯해 누구 멱살이라도 잡고 싶다. 나는 10년 전 어느 때를 맴돌고 있는데 거울을 보면 40대 중반 여자가 서 있다. “누구세요? 되도록 만나지 맙시다.”몸속 세균이 달라지면 나도 달라진다단어가...2021-05-02 18:26
할머니가 뜬 수많은 별아넉 달 전 겨울, 할머니가 쓰러졌다. 경기도 용인 20평 빌라에서 홀로 사는 94살 할머니는 목욕하고 나오다 정신을 잃었다. 뇌졸중이었다. 반신마비가 왔다. 비누 냄새가 나던 깔끔한 할머니는 기저귀를 찼다. 할머니가 누리는 공간은 의료용 침대로 좁아졌다. 언어장애로 발...2021-04-05 15:24
44사이즈가 돼야 얻는 사랑이라면“작가 언니, 남편이 교순데 이혼하잔데. 객관적으로 봤을 때 언니가 문제야. 열심히 사는 건 좋은데 여자로서 도통 꾸미지 않아. 쉰 된 여자가 화장도 안 해. 그러니 남편 입장에선 싫증 안 나?” 임성한 작가의 드라마 에서 이 ‘작가 언니’와 함께 일하는 아나운서 부혜...2021-03-04 23:43
전화 한 통보다 절망이 쉽다나는 오래 살지 못하겠구나. 마르타 자라스카의 책 을 보다 생각했다. 이 책에 따르면, 건강을 지키는 데 가장 중요한 건 관계다. 가족, 친구, 이웃의 튼튼한 지원망이 있으면 사망 위험도가 45% 준다. 하루에 채소와 과일을 6인분씩 먹어봤자 사망 위험도는 26%밖에 ...2021-01-25 22:29
고독이 고립이 되기 전에“엄마, 왜 이렇게 통화가 안 돼?” “나 바쁘다.” “아빠는 뭐 하셔?” “몰라.” 엄마(70)는 외롭지 않다. 코로나19 탓에 신발 한 번 안 신고 일주일을 보내지만 답답하지 않단다. 가수 양준일 때문이다. 엄마는 양준일의 신곡 유튜브 동영상을 50개 묶음으로 틀...2021-01-12 21:42
‘땐뽀걸스’의 지현과 현빈이는 아직도 춤을 출까내가 그 아이들이 궁금했던 까닭은 외롭기 때문인 거 같다. 이제 어른이 됐겠구나. ‘집콕’이 전문 분야인 나도 몇 주째 개랑만 지내다보니 사람이 그립다. 40대 중반이 되니, 누가 내 시간을 뭉텅이로 훔쳐간 것 같다. 황당해서 자꾸 뒤돌아보게 된다. 뭔가 ‘중요한 것’...2020-12-27 15:53
갱년기, 분홍색 댄스복을 사다“아줌마!” 이럴 때 돌아보면 십중팔구 기분 나쁜 일이 생긴다. 대개 지적이나 무례가 따라온다. 후줄근한 차림이면 더하다고 나는 느낀다. “아줌마~.” 상냥하게 말하는 사람은 나한테 뭘 팔고 싶은 거다. 개랑 건널목에 서 있는데 뒤에서 불렀다. “아줌마!” 손짓으로 비...2020-12-14 17:52
[아무몸] 아홉 살 여자가 말했다 “여자애라서…”개 몽덕이랑 산책하면 아이들이 말을 건다. 초등학교 2학년 두 소녀는 단짝이다. 이 아이들이 몽덕이 꼬리를 보곤 홀린 듯 공원까지 쫓아왔다. 개는 곁을 잘 안 줬다. 만지려고 하면 꽁무니를 뺐다. “얘 여자예요, 남자예요?” 암컷이라니 한 명이 이렇게 말했다. “여자애...2020-11-22 22:25
[아무몸] 자유는 몸으로 만질 수 있다약골이다. 고등학교 때 100미터를 24초에 달렸다. 내 발만 보고 달릴 때는 땅이 쉭쉭 지나갔다. 너무 열심히 달려서 토할 거 같았는데 결승점을 통과하니 선생님이 그런다. “왜 달려오니? 걸어오지. 20초보다 느리면 점수 다 똑같아.” 점수로 연결되기에 몸의 움직임도...2020-10-05 22:23
[아무몸] 밥하는 일보다 중요한 노동은밥하는 게 괴롭다. 나 혼자 사는데도 그렇다. 코로나19 탓에 삼 주째 집에 처박혀 세끼 밥을 해 먹으려니 내 허기가 ‘웬수’다. 점심은 빵으로 때워야지 하고 식빵 봉지를 열었는데 푸른곰팡이가 피었다. 곰팡이를 떼어내니 빵이 5분의 1도 남지 않았다. 음식물 쓰레기통에...2020-09-12 10:56
[아무몸] 나의 깨끗함을 위해선 남의 더러움이 필요해고등학교 때 ‘화생방’이란 별명이 붙은 아이가 있었다. 어디서 시작됐는지 모르지만 그 애한테 입냄새가 난다고들 했다. 사실 아무도 모른다. 그 친구랑 말을 섞는 사람이 없었으니까. 체육 시간에 홀로 운동장에 서 있던 그 애 얼굴이 2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기억난다. ...2020-08-30 17:45
[아무몸] 더럽게 외로운 나를 구한 ‘개 공동체’휴대전화를 잃어버렸다. 주민등록증, 운전면허증과 카드 2개까지 사라졌다. 슈퍼마켓 갔다 왔더니 모두 없다. 더 황당한 건 내가 나한테 전화할 수 없다는 거다. 집에 전화기가 없다. 동네에서 공중전화를 본 적이 없다. 혼자 사니 부탁할 사람이 없다. 25년 된 아파트로 ...2020-07-25 16:27
[아무몸] 어쩔 수 없는 나여도 괜찮다“뼈 빼고 다 빼드립니다.” 동네 전신주마다 광고 전단이 붙어 있다. 살은 자기 관리 실패의 은유가 됐다. 몸무게뿐만 아니라 존재의 가치까지 재버리는 체중계에서 자유롭기 힘들다. 나는 이곳에서 배척당하지 않을 수 있는 몸인가? 불안은 강력한 통제 수단이다. 미술비평 쪽...2020-07-11 16:50
[아무몸] 누가 나를 돌볼까, 나는 누굴 돌볼까“뭘 이런 걸 사와. 혼자 사니 노후 걱정 많을 텐데.” 동네 개들 모이는 데 오렌지를 사들고 갔더니 웰시코기 풍이 아빠가 이런다. 뭐지? 이 급작스러운 동정의 일격은? 가족이 있으면 노후 걱정 안 하나? 속이 배배 꼬였지만 웃으며 오렌지 껍질을 깠다. 풍이는 내 반려...2020-06-27 15:55
[아무몸] 쓰레기 자루 속 레몬 빛깔 병아리“저 염소들은 오늘 다 잡아먹힐 거야.” 서아프리카 감비아에서 일하는 한 독일인 친구가 염소 대여섯 마리 찍은 사진을 보냈다. 감비아에서 축제를 벌이는 날이란다. 장에서 팔려가는 염소는 카메라를 쳐다보고 있다. “불쌍해.” 그 친구 말에 나도 맞장구쳤다. 그런데, 그렇...2020-06-17 00:07